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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치형, 과학의 언저리] 과학 다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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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과학자들은 자연을 대변하는 동시에 다양한 인간을 고르게 대표하는 역할을 맡을 수 있다. ‘과학 다양성’은 정치적으로 올바를 뿐 아니라 과학적으로도 올바른 일이 된다. 창의성을 원한다면 다양성을 추구해야 한다. 한국 정치와 과학에 공통으로 부여된 과제다.



한겨레
전치형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지난 수요일의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큰 이변 없이 끝났지만, 그래도 기억에 남을 몇몇 후보와 장면이 있었다. 지금껏 충분히 인정받지 못한 존재와 가치와 신념이 드러나는 경우들이었다. 가장 크게 화제가 된 것은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을 표방하고 나선 녹색당 신지예 후보였다. 그는 이른바 ‘개시건방진’ 표정을 지은 선거 포스터 사진 때문에 부당한 모욕을 당하고 선거 운동에 피해를 봤지만, 굽히지 않고 페미니즘과 ‘생태적 지혜’를 결합한 녹색당 후보로서 선명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또 기억에 남는 것은 장애인들이 아침 일찍부터 서울 삼청동 주민센터에서 장애인 참정권 보장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다가, 사전투표를 하고 나오는 문재인 대통령을 만났던 장면이다. 이들은 투표소에 엘리베이터가 없거나 수어통역사가 없어서 장애인 투표가 어려운 상황을 설명하고, 발달장애인도 충분한 선거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형식의 공보물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대통령은 장애인 참정권 문제를 잘 살펴보겠다고 약속한 뒤 시위대와 함께 사진도 찍었다.

선거는 우리가 이 땅에 존재하는 만큼 온전히 대표되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자리다.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생태주의자 등 늘 과소대표되는 존재들이 목소리를 내고 이른바 ‘민의’를 대변할 수 있는 기회를 요구한다. 다양한 존재와 신념이 경합하는 것만으로도 민주주의에 기여하는 바가 있겠지만, 실제로 당선되어 다양한 가치를 실현할 기회를 얻는다면 더 뜻깊은 선거일 것이다. 공직을 맡는 사람들이 획일적으로 구성되는 것은 이제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하기 어려워졌다.

과학계는 어떤가? 6월7일치 <네이처>는 기사와 사설을 통해 과학계의 다양성 문제를 다루었다. “다양성의 힘”이라는 제목의 기사는 연구진의 다양성이 과학 연구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사설도 “과소대표된 집단의 참여를 증진하는 것은 더 공정한 일일 뿐만 아니라 더 좋은 연구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논문 저자들이 젠더나 인종 면에서 더 다양할수록 그 논문이 더 많이 인용되어 더 큰 영향력을 얻게 된다는 연구 결과도 언급했다. 즉 남들에게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보이기 위해 구색을 맞추듯이 다양성을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할수록 더 좋은 과학적 성과를 낼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과학은 ‘민의’를 대변하는 활동이 아니며, 굳이 무언가를 대변한다면 과학자는 오직 ‘자연’을 대변할 뿐이므로, 인간의 다양성을 과학계에 반영할 필요는 없다는 반론도 가능하다. 어떤 사람이 자연을 잘 이해할 수 있다면, 그 과학자가 인간으로서 가진 정체성을 그가 하는 과학과 연결시켜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과학 연구가 팀을 꾸려서 함께 문제를 정의하고 실험을 설계하고 결과를 해석하고 토론하고 반박하는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점을 생각하면, 연구진의 다양성이 좋은 연구 결과에 기여한다는 주장을 쉽게 무시할 수는 없다. <네이처>가 인터뷰한 미국 밴더빌트대학의 우주물리학 교수는 자신의 연구팀이 2013년에 중요한 발견을 하는 데에는 “같은 데이터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매우 다른 사람들의 집단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관점이 섞일 때 ‘아하’ 하는 깨달음의 순간이 더 자주 찾아온다는 것이다. 그 실험실에는 자폐스펙트럼장애가 있는 대학원생을 포함하여 다양한 인종과 젠더의 연구진이 일하고 있었다.

과학은 인간의 호기심에서 출발하는 활동이므로 호기심만 충분하다면 그가 사회적으로 어떤 집단에 속하든 상관없다는 생각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 호기심도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것이다.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다른 환경에서 다르게 교육받고 살아온 사람은 다른 것을 궁금해한다. 다양한 사람들을 실험실로 불러들일 때 새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가능성이 더 열리는 것이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자연을 대변하는 동시에 다양한 인간을 고르게 대표하는 역할을 맡을 수 있다. ‘과학 다양성’은 정치적으로 올바를 뿐 아니라 과학적으로도 올바른 일이 된다. 한국 과학계가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는 창의성이란 결국 남과 다르게 보고 다르게 생각하는 능력이며, 이는 서로 다른 사람들끼리 협력하면서 길러진다. 창의성을 원한다면 다양성을 추구해야 한다. 한국 정치와 과학에 공통으로 부여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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