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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보이 지제크 칼럼] 트럼프에게 노벨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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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노벨평화상에 최소한의 정의가 존재한다면, 노벨평화상을 현역 정치인들에게, 그것도 그들이 단지 생각했던 것만큼 미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또는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한 격려로 주어서는 안 될 것이다. 아르히포프나 카르파이 같은 이름 없이 잊힌 영웅들이야말로 사후에라도 노벨평화상을 받아야 할 이들이다.

한겨레
슬라보이 지제크
슬로베니아 류블랴나대·경희대 ES 교수


물론 도널드 트럼프가 노벨상을 받아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트럼프는 노벨상을 받게 될 것인가? 프랑스어에는 ‘부아용 부아르’(voyons voir)라는 아름다운 표현이 있다. ‘어디 한번 지켜봅시다’라는 뜻이다.

이미 시어도어 루스벨트, 우드로 윌슨, 지미 카터, 버락 오바마 등 네 명의 미국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이 중 오바마는 “국제 외교와 인류의 협력을 강화하려는 비상한 노력”을 이유로 2009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우리는 이것이 진짜 이유가 아니라, 오바마가 남은 임기 동안 세계 평화를 위해 노력하라는 격려에 불과했음을 알고 있다.

트럼프가 노벨평화상을 받아야 한다는 제안만큼이나 그럴듯하게 들리지는 않겠지만, 우리는 이 제안에 다음 세 가지 방식으로 반응해야 할 것이다.

첫째, 한반도 위기를 평화롭게 해결할 수 있는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타협안을 제시한 이는 트럼프가 아니라 김정은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중요한 양보를 한 이가 김정은인 만큼, 어떤 상이든 김정은과 트럼프가 공동 수상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이 견해의 허점은 분명하다. 노벨평화상을 지구상에서 가장 억압적인 체제의 지도자에게 줘야 한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둘째, 몇달 전까지만 해도 트럼프와 김정은이 경쟁적으로 핵 단추 발언을 쏟아냈고, 트럼프는 미국 핵 단추가 북한 것보다 크다고 했던 것을 기억해보자. 이처럼 한반도 위기에 대해 우리가 갖는 인식은 극단적으로 동요한다.

우리는 세계가 핵전쟁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다음 주에는 이 위기설이 잠잠해진다. 그리고 또다시 전쟁 위협설이 폭발한다. 2017년 8월 서울을 방문했을 때, 한국 친구들은 북한 정권이 전쟁을 일으킬 경우 자신들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알기 때문에 심각한 전쟁 위협은 없다고 말했다.

얼마 전까지 미디어는 김정은과 트럼프의 막말 교환에 대해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두 명의 미성숙한 이들이 멋대로 분노를 내지르고 서로를 모욕할 때,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어떤 제도적 제약요인이 존재하여 이들의 분노가 폭발하여 전면전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막아주길 바라는 것뿐이라는 사실이다.

보통 우리는 오늘날의 관료화된 정치 환경에서는 제도적 압력과 제약요인 때문에 정치인이 개인적 비전을 표현하지 못한다고 불평하곤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어떤 제도적 제약요인이 광기 어린 개인적 비전의 표현을 막아주기를 희망한다. 그럼, 트럼프와 김정은이 단지 갑자기 유턴해 우리가 생각했던 것만큼 미친 짓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노벨상을 탈 자격이 있는 것일까?

셋째, (좌파 자유주의자에게) 불편한 진실은 트럼프가 단순히 호전적이기만 한 미친 지도자가 아닐뿐더러, 힐러리 클린턴에 비해 그렇게 나쁜 지도자도 아니라는 점이다.

<가디언>이 배우 수전 서랜던에게 정말로 힐러리 클린턴이 트럼프보다 더 위험하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서랜던은 이렇게 대답한다. “저는 힐러리가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힐러리가 대통령이 됐다면 우리는 지금 이미 전쟁을 벌이고 있을 것입니다. 힐러리가 대통령이 되었다고 트럼프보다 딱히 더 부드럽지는 않았을 거예요. 우리가 모르는 사이 오바마 정권이 무슨 일을 벌였는지 보세요. 힐러리도 오바마처럼 교묘하게 일을 벌였을 겁니다. 오바마는 지금보다 더 많은 이들을 강제로 추방했어요. 오바마가 노벨평화상을 탄 이유를 전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트럼프가 기껏해야 전임 대통령들이 하던 일을 이어가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렇다면 정말로 노벨평화상을 받아야 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정말 노벨상을 받아야 하는 이에게 상이 돌아갈 일은 없겠지만 말이다.

쿠바 미사일 위기 때의 무시무시한 사례를 기억해보자. 1962년 10월27일 쿠바 인근 해역에서 미 해군 구축함과 소련 핵잠수함 B-59호 사이에 벌어진 접전은 하마터면 핵전쟁으로 이어질 뻔했다. B-59호를 발견한 미 해군 구축함은 B-59호에 핵 어뢰가 장착되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잠수함을 강제로 부상시키기 위해 연습용 폭뢰를 투하했다. 잠수함에 승선한 장교 바딤 오를로프가 나중에 밝힌 바에 의하면, 교전규칙에 따라 선임 장교 세 명이 전원 합의를 했을 경우에만 핵 어뢰를 발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선임 장교들이 격렬한 토론을 벌였다. 두 명은 발사를 주장했지만, 부함장 한 명만은 반대했다. 어느 역사가는 “바실리 아르히포프라는 부함장 한 개인이 세계를 구한 것”이라고 씁쓸히 논평했다. 우리는 미국과 북한, 미국과 다른 국가 간 대치가 이어질 때도 비슷한 상상을 하는 것이 아닐까? 어느 용감한 개인이 나서서 광기가 반복되는 것을 막아내는 상황 말이다.

쿠바 미사일 위기보다는 훨씬 덜 알려진 사건이지만, 이와 비슷한 사건이 소련에서 일어난 적이 있다. 소피야 카르파이는 1940년대 후반 크렘린 병원의 심전도실 담당 의사였다. 카르파이의 불행은 안드레이 즈다노프(소련 문화정책 지도자)가 심장마비로 사망하기 한달 전인 1948년 7월 두차례에 걸쳐 즈다노프의 심전도를 검사하는 임무를 맡았다는 점이다.

즈다노프가 심장 이상 증세를 보인 후 실시한 첫번째 심전도 검사 결과에서는 특별한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 두번째 검사 결과는 훨씬 양호했다. 내심실의 울혈이 사라져 심장마비의 조짐은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1951년 카르파이는 다른 의사들과 공모하여 즈다노프가 치료를 받지 못하도록, 즈다노프에게 심장마비가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데이터를 조작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었다. 혹독한 고문 끝에 기소된 동료 의사들은 모두 허위로 자백했다.

카르파이의 상관 비노그라도프는 카르파이가 ‘프티 부르주아지의 도덕관념을 지닌 전형적인 인물’이라고 진술했다. 카르파이는 냉동창고에 감금되어 잠도 잘 수 없는 상태에서 자백을 강요받았다. 그러나 카르파이는 끝까지 자백하지 않았다. 카르파이가 보인 인내의 의미가 지니는 중요성은 아무리 높이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다. “의사들의 음모”가 실제 있었다고 카르파이가 자백했다면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심지어 유럽에서 다시 한번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스탈린은 “의사들의 음모”를 서구 정보기관이 소련 고위 지도자들을 암살한 증거로 삼고, 이를 빌미로 서유럽을 공격할 계획이었다.)

카르파이는 스탈린이 마지막 혼수상태에 빠질 때까지 버텼고, 결국 스탈린이 사망하면서 스탈린의 계획은 취소되었다. 카르파이의 영웅적 행동이 갖는 의미는 매우 중요하다. 카르파이의 행위는 소련에서 또 한번 사회·정치적 파국이 일어나는 것을 막았으며, 무고한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구했다.

모든 어려움에 맞서 카르파이가 보여준 단순한 인내야말로 궁극적인 영웅의 특질이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겨우 이따금, 그것도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야 깨닫곤 한다.

노벨평화상에 최소한의 정의가 존재한다면, 노벨평화상을 현역 정치인들에게, 그것도 그들이 단지 생각했던 것만큼 미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또는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한 격려로 주어서는 안 될 것이다. 아르히포프나 카르파이 같은 이름 없이 잊힌 영웅들이야말로 사후에라도 노벨평화상을 받아야 할 이들이다.

번역 김박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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