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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문재인 대통령의 책, 중국에 거절당하다 / 김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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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김외현
베이징 특파원


문재인 대통령의 자서전 <운명>이 중국어로 번역돼 올해 1월1일부터 중국에서 판매되고 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다른 책 <1219 끝이 시작이다>와 <운명에서 희망으로>는 중국어 번역이 지난 1월 마무리되고 표지 디자인까지 마쳤는데도 출판되지 않고 있다. 중국 내 출판사 20곳에 의사를 타진했으나 모두 거절당했다. 이 두 책의 중문판 기획 과정을 잘 아는 인사는 “출판만 결정되면 1주일 안에 책을 내놓을 수 있는데 모두 눈치만 보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이는 앞서 출간된 <운명>이 시장에서 그럭저럭 팔리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출판사 쪽은 지금까지 약 5만권이 팔렸다며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판매량”이라고 말했다. 인터넷서점 ‘당당왕’에서 ‘외국 정치인’ 종합순위 18위를 기록하고 있고, 구매자들은 “영화로 만들어도 좋을 것 같다”거나 “정치에 관심이 없었는데 이 책을 보고 깊이 감동했다”는 등 호평 일색이다.

그럼에도 출판이 미뤄지고 있는 것은 경쟁적인 시장 상황 때문이라는 관측이 있다. 중국 책시장도 세계 어디나처럼 부진해서 출판사들이 책 선정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다른 데선 어떨지 몰라도 중국 책시장에서 ‘보증수표’ 수준은 아니라는 얘기다. 특히 외국인의 자서전은 중국 책시장에서 인기를 끄는 분야가 아니다. ‘당당왕’의 ‘외국 정치인’ 순위 상위권은 벤저민 프랭클린, 나폴레옹, 알렉산더 해밀턴, 히틀러, 처칠, 키신저, 리콴유, 대처 등이 차지하고 있다. 당대 인물로는 트럼프와 박근혜, 문재인 정도가 있다.

한-중 관계의 부침 탓도 있을 것이다. 지난해 말 두 나라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를 당시 수준에서 ‘봉합’했지만, 양국 국민의 상호 인식 악화나 직격탄을 맞은 여행 및 콘텐츠 산업 부진 등을 보면 아직 완전한 ‘완화’로 보기에 미진하기 때문이다. 중국 출판업계 관계자는 “사드 문제가 불거진 이후 한국 책은 잘 팔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조적인 예로, ‘한-중 호시절’의 일부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는 출간 당시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이 책은 지난 5년 동안 50만권이 팔린 스테디셀러로, 지금도 순위가 <운명>보다 여섯 계단 높다.

더 중요한 이유는 책의 내용 탓으로 보이기도 한다. 중국의 한 대학교수는 “<운명>이 출간된 건 기적 같은 일”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인생 역정을 수놓고 있는 인권변호사 활동과 민주화운동 참여는 중국 당국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요소들이다. 중국의 인권변호사들은 본인은 물론 가족들까지 탄압받기 일쑤다.

지난 4일은 1989년 천안문 사건 29돌이었다. 민주화 시위 무력진압으로 몇백명인지 몇천명인지 모를 사람들이 숨졌다. 그러나 중국 내에선 29년 동안 이렇다 할 추모 행사가 열린 적이 없다. 물론 중국 인터넷에서도 광주민주화운동과 6월항쟁 등이 조회된다. 그러나 그런 ‘반체제 투쟁’ 전선에 섰던 사람이 국가 지도자가 된 현실이 중국 당국은 불편할 수 있다.

중국에서 책이 출판되려면 관련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출판사들은 당국이 문 대통령의 책에 과연 오케이 사인을 낼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아 주저하는 분위기다. 책시장 상황이 좋아지면, 또는 한-중 관계가 더 좋아지면 출판이 가능할까? 솔직히 회의적이지만, 알 수 없다. 다만, ‘서로의 발전 모델을 존중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는 중국이,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성취한 한국의 성장 역사를 살펴본다 해서 중국 사회에 나쁠 게 없다는 건 분명하다.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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