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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무역·반이민 갈등’ 미국·멕시코·캐나다가 차기 월드컵 개최지 된 배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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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전 멕시코 대사가 첫 제안

트럼프는 편지로 FIFA 설득 나서

북미 국가 관계 개선 이어질지 주목

가시 돋친 말이 오갔던 아메리카 대륙에서 모처럼 ‘훈훈한 소식’이 전해졌다. 미국·멕시코·캐나다로 이루어진 북중미 3개국 연합이 13일(현지시간) 국제축구연맹(FIFA)의 2026년 월드컵 개최지로 선정된 것이다. 미국은 뉴욕에서 열리는 결승전을 포함해 전체 80경기 중 60경기를 주최한다. 멕시코와 캐나다가 나머지 20경기를 반씩 나눠 연다.

개최지 선정 결과는 어느 정도 예상됐다. 월드컵 개최 경험이 있는 미국(1994년), 멕시코(1970년·1986년)는 유일한 경쟁국이었던 모로코를 준비 면에서 압도했다. 앞서 FIFA 실사단은 모로코의 경기장과 숙박, 교통 등에 대해 5점 만점에 2.7점의 박한 평가를 내렸다. 북중미 연합은 4점을 받았다. 2026년 월드컵부터 본선 참가국이 32개국에서 48개국으로 늘어난다는 점도 북중미 공동 개최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발표의 시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일부터 캐나다와 멕시코산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추가 관세를 부과하며 ‘무역 전쟁’의 포문을 열었다. 재협상이 진행 중인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틀을 깨고, 캐나다·멕시코와 별도 협정을 맺을 수 있다는 신호도 보내고 있다. 지난 9일에는 주요 7개국(G7) 공동성명 채택 무산의 책임을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에게 돌리며 “부정직하고 나약하다”고 비난했다. 동맹국 캐나다와의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미국과 멕시코의 갈등은 뿌리가 더 깊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선 당시부터 불법 이민자를 막겠다며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세우겠다”고 공약했고 실제 장벽 설치에 나섰다. 지난 2월에는 엔리케 페나 니에토 대통령에게 ‘멕시코 장벽 예산을 내놓으라’고 전화로 다툰 뒤 예정됐던 정상회담을 취소했다.

3개국의 월드컵 공동 유치는 지난해 4월 공식적으로 발표됐다. 그러나 2010년 공동 개최 아이디어를 처음 제안한 아르투로 사루칸 전 미국 주재 멕시코 대사는 “당시만 해도 미국과 멕시코의 관계가 성숙해가고 있었다”고 로이터통신에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을 기점으로 북미 국가들 간 관계가 급격히 악화됐다는 것이다. 누리꾼들은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을 두고 “멕시코에 축구 보러 가려면 장벽을 뛰어넘어야 하냐 아니면 비밀 땅굴을 이용해야 하냐”는 반응을 보였다.

FIFA도 미국의 반이민 정책이 초래할 상황을 우려했다고 한다. 북중미 공동 개최는 필연적으로 국경 간 이동을 늘릴 수 밖에 없다. 일부 선수단이나 축구팬의 비자 발급 등이 제한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이에 미국 측 유치 담당자들은 정부가 올림픽 개최를 지지한다는 편지를 써서 FIFA와 회원국을 안심시켜달라는 요구를 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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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트럼프 대통령이 월드컵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공동 개최는 급물살을 탔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잔니 인판티노 FIFA 사무총장에게 석 달간 3통의 편지를 보냈다. 지난 3월9일과 12일 ‘모든 나라의 국기 게양을 허용한다’ 등 FIFA 규칙을 존중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가장 최근 편지(5월2일)에서는 “모든 관계자들과 팬들이 어떠한 차별 없이 미국에 입국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해도 월드컵 개막 전인 2025년 임기가 끝난다는 사실도 강조했다.

카를로스 코데이로 미국축구협회 회장 등 3국 관계자들은 지난 두 달간 트럼프 대통령의 서한을 들고 전세계를 돌며 유치전에 나섰다. 회원국들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공을 들였다는 후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실세 사위’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도 캐나다와 멕시코를 오가며 중재 역할을 했다고 한다. 코데이로 회장은 “백악관의 보증이 없었다면 피파는 우리에게 적신호를 보낼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월드컵 개최 소식은 3국 정상이 모처럼 한목소리를 내는 계기가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서 “고된 노력 끝에 얻은 성과”라며 축하했다. 트뤼도 총리와 니에토 대통령도 월드컵 공동 개최를 환영했다. 일각에서는 공동 개최가 북미 국가들의 관계 개선으로 이어질 것을 기대한다. USA투데이는 사설에서 “서로 싸울 때보다 협력할 때 더 많이 성취할 수 있음을 세 국가가 큰 목소리로 선언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사루칸 전 대사도 “‘우리와 그들’의 이분법을 넘어 상처를 치유하고 사람들을 연결하는 특별한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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