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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춘추] 정성평가는 聖杯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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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정성평가가 정말 어렵다. 명확한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성평가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다. 학생들의 과제 보고서를 평가할 때 꼼꼼히 읽고 부족한 부분을 일일이 지적해 돌려주어야 한다. 안 그러면 이의가 쏟아진다.

글로 평가의견을 달아주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이번 학기에 강의하는 두 과목의 수강생 140여 명의 보고서를 평가하려면 하루 이상 꼬박 걸린다.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평가기준을 세분화해 상세한 채점표를 첨부해주고 있다. 그래도 이의 제기는 피할 수 없다.

대체로 학생들의 불만은 자기 노력에 비하여 점수가 낮게 나온다는 것이다. 개별적으로 평가 내용을 설명해주고 점수를 잘 받은 다른 학생의 보고서를 예로 들어 주어야 마지못해 수긍해 돌아간다.

학점 관리로 성적에 민감한 학생들을 탓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열의에 넘쳐 매주 숙제를 내주게 된 것이 후회스러울 따름이다. 그냥 시험 몇 번 보고 문제도 객관식으로 출제하면 다들 편할 텐데 사서 고생하고 있지 않나 싶다.

학생들도 스스로 답을 찾아 나가는 공부의 어려움을 호소한다. 교과서와 강의 내용을 착실히 숙지하고 거기서 시험문제가 나오면 정답을 쓰는 것에 익숙해 있다가 독창성과 논리력을 요구하는 과제에 부딪치니 혼란스럽다고 한다.

그만큼 우리 학생들이 주입식 교육에 익숙해져 있는 것이다. 정형화되지 않은 문제를 다각도로 접근하고 창의적으로 사고하는 훈련이 약하다.

이런 학생들을 대상으로 신입 사원을 선발하는 채용제도에서 '정성평가 방식'을 도입한다는 것이 무척 어려울 것이다. 원칙적으로 지원자 개개인의 자질, 학업, 경험, 사회적 배경과 같이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평가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하지만 경쟁률이 100대1이 넘는 인기 직장의 경우 그 많은 지원자 각자의 잠재력을 정성평가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어설프게 하면 공정성과 투명성 논란에 시달려 불신을 초래한다. 그렇다고 학점이나 시험 성적과 같은 획일적인 '숫자'로만 정량평가하는 것은 발전이 없다. 효율적이면서 신뢰성 있게 정성평가할 수 있는 방법을 '성배(聖杯)' 찾듯이 지혜를 모아 치열하게 찾아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전 중진공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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