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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가 뭐예요?] ‘수공예 덕후’인 당신, 아직도 직접 만든 책이 없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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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가 뭐예요?” 상대방을 좀 더 알고 싶을 때 흔히 던지는 질문이지만 의외로 답은 어렵다. ‘나’를 표현하는 키워드로 취미를 즐기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 보기’ ‘음악 감상’ ‘독서’로 대표되는 국민 취미 3대장 외에 최근에는 ‘맛집 탐방’ 정도가 추가됐을 뿐이다.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워라밸’이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는 요즘, 취미는 여가의 질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다. 다들 어떤 방법으로 각자의 워라밸을 지키고 있을까. 특별할 것 없는 보통 사람들의 조금 특별한 취미생활들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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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재료와 바인딩 법을 활용해 만들어진 수제본 책들. 전유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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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공예’ 또는 ‘공작’은 취미 활동의 대표적인 갈래 중 하나다. 간단한 종이접기부터 천과 가죽을 이용한 인형·옷·가방, 흙을 빚어 만드는 그릇과 컵, 나아가 목공 가구까지. 3D프린터로 무엇이든 뽑아낼 수 있는 세상이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전통적인 방법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그 과정을 즐긴다.

다양한 수공예나 디자인 문구류에 열광하는 ‘덕후’라면 한 번쯤 거쳐 가는 취미가 바로 ‘북바인딩(book binding)’이다. 말 그대로 ‘책을 엮어내는 일’, 우리말로는 ‘수제본’이다. 내지부터 표지 디자인, 바인딩 방법까지 모두 직접 선택해 나만의 책을 만드는 과정을 말한다. 빈 종이를 엮어 노트를 만들고 나중에 내용을 채워나갈 수도 있고, 직접 쓴 글이나 그림을 엮어 간직할 수도 있다. 오래된 책의 표지를 바꿔 새롭게 제본하는 ‘복원’ 목적으로도 쓰인다. 내지로 어떤 종이를 사용하든, 공통점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책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독립출판·자가출판 붐과 함께 북바인딩을 배우는 사람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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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아트 공방 '끌북'에서 북바인딩 클래스가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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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오전, 송파구에 위치한 작은 공방 ‘끌북’에는 20대부터 40대 후반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수강생이 모였다. 가죽 공예 공방을 운영하는 홍승화(49)씨는 쉰을 앞둔 나이에 새로운 취미를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용인에서 서울까지 1시간 넘는 거리를 달려와 북바인딩 클래스를 들은 지 석 달째다. 홍씨는 “가죽 공예는 매우 복잡하고 무거운 작업이고, 일로 하다 보니 부담도 생긴다”며 “죽을 때까지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작업을 찾다가 북바인딩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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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홍씨가 만든 수제노트의 샘플들. 만드는 방식은 같아도 재료를 선택하고 재단하는 과정까지 같을 수는 없기 때문에 세상에 하나뿐인 책이 만들어진다. 전유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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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을 만드느냐에 따라 난이도는 천차만별이지만, 일반적인 북바인딩 과정은 크게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내지와 표지의 종류를 고르고 디자인을 정하는 과정, 바늘이 통과할 수 있도록 내지와 표지에 구멍을 뚫는 과정, 그리고 바느질하는 과정이다. 홍씨는 이날 가죽 표지의 무지 노트를 만들었다. 표지를 겹쳐 여민 뒤 가느다란 가죽끈을 휘감아 고정하는 디자인이다. 가죽을 재단한 뒤 종이와 엮어 꿰매고 이니셜 각인을 남기기까지 꼬박 3시간이 넘게 걸렸다. 이렇게 수업을 통해 만든 책이 어느새 8권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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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화씨가 북바인딩 클래스를 통해 만든 수제 노트들. [사진 홍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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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에서 제본법을 익히면 집에서는 보다 자유롭게 응용작을 만들 수 있다. 홍씨는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부터 다 못 쓰고 버린 노트, 커피 캐리어 등 재료는 사방에 널려 있다”며 “이젠 쓸만한 종이가 보이면 가만히 못 두겠다”며 웃었다. 두꺼운 재질의 커피 캐리어는 결국 수제 미니 노트의 표지가 되었다고 했다.

“어릴 때 아버지가 달력 종이로 수첩을 만들어주곤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게 다 북바인딩이고 업사이클링이잖아요. 항상 내 주변에 있었던 친숙한 작업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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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화씨가 완성한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전유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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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중등 미술학원 강사로 일하고 있는 정예슬(28)씨는 북바인딩 클래스 수강 한 달 차다. 그는 이날 수업에서 하드보드지에 색지를 씌워 앞뒤 표지를 만들고, 바인딩 부분에만 가죽을 대 바느질했다. 이처럼 하드커버로 만든 책은 일주일간 북프레스(압축기)를 이용해 눌러놔야 한다. 풀칠한 종이가 뒤틀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정씨의 작품은 공방의 대형 북프레스 나무판 사이로 들어갔다. 대신 지난주에 만들어 압축해뒀던 책을 받았다. 정씨는 “아이들에게 만들기 수업을 하면서 나도 뭔가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렇게 매주 결과물이 생기니까 성취감이 있어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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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커버에 색지를 씌우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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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죽 표지와 내지를 실로 엮는 과정. 빳빳한 가죽과 여러 장의 종이를 한꺼번에 바느질하는 작업이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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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수가 많지 않은 무지 노트는 3시간이면 만들지만, 수 백 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복원하는 등 난이도가 높은 작업은 2주에서 한 달까지도 걸린다. ‘끌북’의 최수연 대표는 “아무래도 관련 직종에 종사하거나 다른 공예를 해봤던 수강생이 많은 편인데, 수제본 책은 삐뚤빼뚤해도 나름의 매력이 있기 때문에 꼭 손 재주가 좋을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독립출판이 트렌드로 자리 잡으면서 직접 쓴 글의 소장본을 만들기 위해 북바인딩 클래스를 찾는 사람도 많아졌다.

‘끌북’ 외에도 강남의 ‘꼬북스튜디오’, 마포구의 ‘비플랫폼’ 등에서 북바인딩 클래스를 진행한다. 설명서를 보며 혼자 만들 수 있도록 재료를 담아 판매하는 북바인딩 키트도 인기다. 인터넷에 ‘북바인딩 키트’를 검색하면 2만원에서 5만원대까지 다양한 구성의 상품을 구매할 수 있다.

북바인딩, 이런 사람에게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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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디자인의 문구 제품을 곧잘 산다.

☞손으로 뭔가 만드는 일을 좋아한다.

☞빈 종이를 쉽게 버리지 못한다(업사이클링에 관심이 있다).

☞남들에게 선물하기를 즐긴다.

글·사진=백수진 기자 peck.soojin@joongang.co.kr, 영상=전유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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