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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사수생’ 오거돈, 23년만에 부산 지방권력 갈아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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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04년과 2006년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해 고배

4년 전에 1.3%포인트 차이로 서병수 후보에게 석패

4수 만에 부산시장 꿈 달성하며 지역주의 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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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돈 더불어민주당 당선자가 13일 개표방송에서 당선이 확실하다는 자막이 나오자 손을 들며 기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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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민들의 위대한 선택에 감사드립니다.”

오거돈 더불어민주당 부산시장 당선자는 13일 밤 10시께 개표방송에서 당선이 확실하다는 자막이 나오자 “일할 기회를 주셔서 정말 감격스럽다. 부산시민들의 승리다. 지방권력을 교체해 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그는 승리의 원인을 묻자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다. 도도하게 흘러나오는 역사의 물결을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정치권에 경고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부산을 싱가포르나 홍콩 못지 않게 시민이 행복한 동북아 해양수도로 발전시켜 나가겠다. 관 주도의 행정에서 민간 주도의 행정을 펼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32년 동안 중앙정부와 부산시를 오가며 공직자의 길을 걸었다. 부산시 정무·행정부시장을 지냈다. 2004년 뇌물수수 혐의로 부산구치소에 수감됐던 안상영 부산시장이 목숨을 끊으면서 부산시장 권한대행을 맡았다. 이어 사표를 내고 보궐선거에 열린우리당 부산시장 후보로 출마했으나 37%를 득표해 62%의 허남식 한나라당 후보에게 참패했다.

당시 그가 한나라당의 텃밭인 부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를 결심한 것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는 자서전에서 “2005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를 부산에 유치할 수 있도록 해주면 6월 보궐선거에 출마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밝혔다. 보궐선거 뒤 노무현 대통령이 그를 불렀다. 2005년 1월~2006년 3월 해양수산부 장관을 맡았다. 이때부터 그는 해양수산 전문가로 불렸다.

두 번째 도전은 2006년이었다. 다시 열린우리당 간판을 달고 도전했으나 허 후보에게 또 졌다. 이번에는 격차가 더 벌어졌다. 오 후보는 24%, 허 후보는 65%였다. 인물론에서 부족했다기보다는 지역주의 벽을 넘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이후 그는 대학에 몸을 담았다. 2008~2012년 한국해양대 총장을 역임했다.

세 번째 기회가 왔다. 2014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허남식 부산시장이 3선 연임 제한에 걸려 물러난 것이다. 김영춘 새정치민주연합 후보의 양보를 얻어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선거 중반까지 여론조사에서 서병수 새누리당 후보를 앞섰다가 역전을 허용했다. 두 후보의 격차는 겨우 1.3%포인트였다. 세 차례나 지역주의 벽을 넘지 못했던 오 후보가 부산시장에서 첫 민주당 후보가 될 수 있을지 일찍부터 주목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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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돈 더불어민주당 부산시장 당선자가 13일 부산 부산진구 서면교차로 앞 선거사무소에 나타나자 지지자들이 축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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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이나 떨어지면서 그는 정치에 거리를 두기도 했다. 한국해양대·부산대 석좌교수를 거쳐 2016년 2월 부산 동명대 총장에 부임했다. 그를 다시 정치권에 불러낸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이었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을 위해 2017년 3월 동명대 총장직을 던지고 문재인 후보 더불어민주당 부산시당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그는 네 번째 도전에 나서면서 4년 전 자신에게 양보했던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이 출마한다면 “기꺼이 양보하겠다”고 기자회견에서 스스럼없이 밝히기도 했다. “역시 키가 작은 말더듬이 오거돈이가 통이 크다”는 말이 나왔다.

그는 1948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아들만 열 명인 집에서 넷째였다. 그의 아버지는 부산 국제시장에서 손수레를 끌고 다니며 고물 줍기를 해서 10년 만에 철물상을 차렸다. 이 철물상은 훗날 철강회사로 성장했다.

그는 1967년 경남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철학과에 입학했다. 박정희 군사정권을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했다가 두 차례 경찰서에 연행되기도 했다. “집안에서 동사무소 직원이라도 나왔으면 좋겠다”는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공무원이 되기로 결심했고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세 차례 도전에서 쓴맛을 봐서 그랬을까. 그는 네 번째 도전에서 개표 막바지까지 조심스러웠다. 모든 여론조사에서 20%포인트 이상 앞서는 것으로 나왔지만 그는 “여론조사를 보지 않는다”며 긴장의 고삐를 놓지 않았다. 서 후보 쪽에서 위암 재발설과 부동산 투기설, 엘시티 연루설 등 네거티브 공세를 펴자 “문재인 대통령의 평화 대장정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23년 동안 용서하고 기회를 준 세력에게 더는 기회를 주지 말고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호소하며 승리를 일궜다. 3전4기 만이었다. 부산/글·사진 김광수 기자 kskim@hani.co.kr

[화보]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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