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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멱칼럼]성평등이 곧 민주화, 경제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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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형 동국대 교수, 영화평론가] 프랑스는 1954년 디엔 비엔푸(Dien Bien Phu) 전투에서 패배함에 따라 베트남에서 철수를 결정한다. 이어 1954년부터 1962년까지 프랑스는 북아프리카에 갖고 있던 또 다른 식민지 알제리와의 전쟁에 돌입한다. 프랑스는 독립을 희망하는 알제리를 억압하기 위해 군사력을 동원해 잔혹한 작전을 수행했다. 당시 프랑스의 대표적인 지성 사르트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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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정부에 대해 일갈(一喝)했다. “이제 알제리에서 손을 떼야 한다. 만일 지금 손을 떼지 않으면 성난 알제리 민중들에 의해 채찍으로 맞으며 쫓겨날지 모른다.”

그 말 때문에 알제리가 해방된건 아니지만 사르트르의 예언대로 분노한 알제리 민중들에 의해 프랑스는 처참하게 쫓겨나게 된다. 식민지로부터의 독립은 시대적 요청이었고 프랑스가 막판에 고집을 부리다 밀려난 대표적 케이스다. 역사적 흐름이란 그렇게 중요하다.

지금은 성평등의 시대적 요청이 한국에 와 있다. 이 역사적 일화는 그대로 최근 한국 현실에 적용될수 있기에 떠올린 것이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가 인간평등이 대세다. 여성의 평등권을 외치는 운동이 최근 다시 사회를 뒤덮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 사회는 여전히 성차별이 존재하고 있다. 최근 일어난 불꽃페미액션의 상의 탈의 퍼포먼스나 몰카편파수사에 관한 대규모 항의 집회가 그러한 현상을 반영한다. 한국 사회는 성평등에 있어 후진적이다. 만일 남성들이 여성에 대한 사회적 평등권을 계속 이런 식으로 보장하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성난 여성들에 의해 내쫓기듯 항복할수 밖에 없으리란 사실을 식민지 역사의 교훈을 통해 알아야 한다.

영화는 이러한 시류에 응답이라도 하듯 여성 평등의 이슈를 속속 영화로 보여준다. 작년 스위스에서 제작된 ‘거룩한 분노’는 한국에서 곧 개봉할 예정이다. 그 영화는 놀라울 정도로 뒤늦게 권리가 주어진 나라 스위스의 여성 참정권 역사를 다룬다. 여성 참정권, 즉 여성이 최초로 투표를 할 수 있게 된 역사는 나라마다 다르다.

최초의 나라는 1893년 뉴질랜드였다. 1918년 독일·소련·영국, 1919년 네덜란드, 1920년 미국, 1944년 프랑스, 1946년 북한, 1948년 남한이 여성 참정권을 획득했다. 그런데 스위스는 1971년에 와서야 여성 참정권을 허용했다. 영화 ‘거룩한 분노’는 그 놀라움에 대해 다루며 여성 평등의 이슈를 다시금 제기하고 있다.

여성 평등의 가장 큰 이슈 중 하나는 여성의 자존감 회복이다. 이 영화를 보면 최근 불어닥친 미투 운동을 떠올리게 한다. 미투 운동은 한국에 와서 미국의 경우와는 다르게 변질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미투 운동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미투가 제기한 성평등에 대한 이슈가 중요하다. 한국에서 성폭력을 당하고도 숨죽이고 말하지 못했던 수많은 피해 여성들이 당당하게 입을 열었다는 그 사실 자체가 무얼 말해주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이제 한국의 미투 운동은 좀더 큰 보폭으로 성평등 전체 문제로 넓혀가야 한다. 최근 여성들이 유튜브에서 벌이고 있는 탈(脫)코르셋 흐름 등이 그러한 현상을 대변한다. 여성 참정권이 이미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음에도 성차별이 계속 발생하는 원인이 무엇일까를 깊이 성찰해야 한다.

최근의 한국 사회가 요동쳤던 큰 지각변동으로 본다면 성평등의 이슈만큼 중요한 게 없었다고 본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성평등의 이슈를 일순위로 내건 후보자가 과연 몇 명이나 있었는지 의문이다.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위해 성평등이 얼마나 중요한 핵심 의제인지를 아직도 모르고 있다면 ‘거룩한 분노’ 같은 영화를 보라. 뒤늦게 나마 여성의 참정권을 주장했던 스위스 여성들의 요구는 여성들도 당당하게 사회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똑같은 산업 역군으로 나라를 위해 일하는 존재임을 알아달라는 당연한 요구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