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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무조건 희생이 母性? 엄마들의 반격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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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 신화에 반기 든 책 봇물… 페미니즘 열풍 타고 엄마役 재조명

"태어나서 가장 많이 참고, 일하고, 배우며, 해내고 있는데 엄마라는 경력은 왜 스펙 한 줄 되지 않는 걸까."

한 TV 광고에 나오는 이 내레이션은 '모성 신화'의 단면을 보여준다. 모성 신화란 모성(母性)은 본능이라 엄마는 아이를 위해 무조건적 헌신한다는 통념. '태어나서 가장 많이 참고…'란 대목이 그렇다. 과연 모든 여성이 이 신화를 믿고 있을까?

갈수록 뜨거워지는 페미니즘 열풍을 타고 요즘 서점가에 모성 신화에 반기를 든 엄마들의 출간이 잇따르고 있다. '처음부터 엄마는 아니었어' '정치하는 엄마가 이긴다' '엄마의 독서' '엄마는 이제 미안하지 않아' '엄마가 아니어도 괜찮아' '아이는 알아서 할게요' 등 모성을 새로 조명하고 대안을 제시한 책들이다. 저자들이 여성학을 전공한 학자가 아니라 일반 여성들이라는 게 특징이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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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엄마는 아니었어'는 '아이 없이 인생 즐기기'를 꿈꿔온 라디오 PD 장수연(35)씨가 쓴 책. 첫 아이 임신 후 낙태를 결심했다가 마음을 바꿔 출산한 뒤 둘째까지 낳아 키우며 깨달은 단상을 모았다. 그는 '모성애'는 아이를 가졌을 때부터 분출된 게 아니라 아이를 키우며 '천천히 스며들듯' 찾아왔다고 썼다. 1만 2000부가 팔려나갔다. '부족한 엄마라는 죄책감에서 벗어나게 해 주고 위안을 준 책'이라는 독자 서평이 이어진다. "세상이 요구하는 모성애는 내게 없다"는 저자가 자녀에게 올인하기보다 '83년생 라디오 PD'라는 정체성을 지켜내기 위한 '느슨한 모성애'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정치하는 엄마가 이긴다'는 부제가 아예 '모성 신화를 거부한 엄마들, 반격을 시작하다'. 스스로를 '엄벤저스(엄마+어벤저스)'라 칭한 저자들은 "'금방 지나가. 어떻게든 이 악물고 버텨'라는 말이 격려가 되던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한다. 이들은 "엄마에게만 강요되는 육아와 희생은 부당하다"며 "아이를 낳고 기르기 좋은 사회는 모두가 평등하고 공공성이 구현되는 사회"라고 주장했다.

소설가 정아은(43)씨가 쓴 '엄마의 독서'는 육아에 도움 준 책들에 대한 느낌을 일기처럼 써내려갔다. 정씨는 "모성 신화로 가장 피해를 보는 건 엄마와 아이"라며 "워킹맘과 전업주부 어떤 쪽을 택하더라도 '좋은 엄마'여야 한다는 강박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엄마는 언제나 천사처럼 웃으려 노력하게 되고, 아이는 엄마의 가식을 본능적으로 체득한 뒤 똑같이 반응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일을 선택한 여성은 24시간 죄책감에 시달리고, 일을 포기한 여성은 깊은 우울증에 빠져든다. 사회는 일을 택한 여성에게 '나쁜 엄마'란 암시를, 가정을 택한 여성에게 '맘충'이란 타이틀을 선사한다"고 했다.

모성에 대한 성찰은 젊은 엄마들이 스스로를 '엄마이기 전에 한 인간이자 여성'이라 여긴다는 방증이다. 출판평론가 한미화씨는 "결혼해 아이 낳는 일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세대가 등장하고, '모성 결핍'을 죄책감으로 여기지 않게 되면서 이런 책들이 쏟아지는 것 같다"고 했다.

일본도 비슷하다. '엄마는 이제 미안하지 않아'를 쓴 일본 만화가 다부사 에이코(40)는 "임신·출산 설명회에 가 보면 '모유 수유'와 '자연분만'만이 '정상 육아'로 간주된다. 그 '압도적 이상형'과 거리가 먼 사람에게 '실패자'라는 낙인을 찍는다"고 했다. 그는 "두 아이 돌보면서 회사일도 해내고 사랑도 베푸는 엄마가 존재한다면 그는 원더우먼"이라며 "출산·육아 대책이 이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 현실과 어긋나는 것"이라고 했다.

여성학자 조주은 국회입법조사관은 "초저출산 시대에 국가는 여성들에게 '왜 아이를 안 낳느냐'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고, 엄마들에겐 승자 독식 사회에서 승리할 수 있는 전투적인 모성을 요구한다"면서 "이런 분위기에 숨 막혀 하는 여성들이 스스로 그 답을 찾아가기 위해 책을 집어든다"고 말했다.

[곽아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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