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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일상을 멈추고 역사를 지켜본 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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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여성국 사회부 기자

“두 정상의 첫 만남이 인상 깊네요. 세기의 악수, 거기서부터 평화가 시작되는 거겠지요.”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 12일 오후 서울역에서 만난 1948년생 박종호(70)씨의 말이다. 1948년 남북 분단 이후 70년. 흰머리에 주름 깊은 노인이 된 박씨의 나이만큼 긴 세월이 지나서야 북·미 양국의 정상이 마주 앉았다.

이날 오후 2시 40분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회담 결과 발표에 나섰다. 9분가량 지나 두 정상은 포토라인으로 이동했다. 한장면 넘어갈 때마다 서울역을 오가는 시민들은 눈과 귀를 쫑긋 세웠다. 여행 가방을 끌고 고향으로 가는 청년, 유모차를 끄는 부모, 삼삼오오 둘러앉은 어르신들, 모두가 감개무량한 표정이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온 한반도 평화 정착의 절호 기회임을 절감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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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 상황을 TV로 시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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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면접을 보러왔다가 울산으로 돌아간다는 취업준비생 홍여원(26·여)씨는 “좋은 성과가 있어 너무 반갑고 앞으도 더 큰 변화가 있었으면 좋겠다”며 “회담처럼 면접 결과도 좋았으면…”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서울역에서 처음 만난 사이라는 김영자(80)씨와 김윤덕(46)씨는 회담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나눴다. 김영자씨는 “중간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좋은 역할을 했다”며 “이제 야당에서도 정신 차리고 잘한 건 잘했다고 해야 한다”고 했다. 김윤덕씨는 “김정은이 알고 보니 영리한 사람 같다”며 “‘빨갱이’ 소리는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나 싶다”고 했다.

두 정상이 서명한 공동합의문에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새로운 북·미 관계 수립을 추진한다는 등의 4개 합의안이 담겼다.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군 복무를 했다는 홍승표(30)씨는 “군 생활 중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을 겪으며 북한에 비판적 입장이었다”며 “비핵화 협상에 나선 김정은을 눈앞에서 지켜보니 새롭다. 한반도를 넘어 세계평화로 이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를 바라는 염원은 20대 대학생부터 70대 노인까지 똑같았다.

문제는 앞으로다. 서울 양천구 주민 성재동(28)씨는 “역사적인 순간을 보게 된 건 좋지만 트럼프와 김정은 둘 다 럭비공 같은 사람들이라 시간을 두고 신중하게 봐야 한다”며 “앞으로도 정부가 대북정책에 집중하겠지만 민생 이슈들도 잘 챙기길 바란다”고 말했다. 먹고 사는 바쁜 일상을 잠시 멈춰 이 순간을 지켜본 시민들의 바람을 정부는 잊지 말아야 한다.

여성국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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