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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정동칼럼]‘최저임금’ 보완책은 경제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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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저곳에서 문재인 정부 1년에 대한 평가가 한창이다. 경제정책 측면에서 평가가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부분은 최저임금이다. 대통령, 경제부총리, 정책실장, 경제수석, KDI 고참 박사, ILO 고용정책국장 등이 한마디씩 했다. 이 와중에 국회는 최저임금법을 개정하여 일부 상여금과 복리후생비를 최저임금에 포함시키면서 최저임금 수준은 동결하여 사실상 최저임금을 깎아 버렸다. 노조들은 즉시 강력 반발하며 이에 대한 반대 투쟁을 시작했다. 이하에서는 최저임금에 대한 필자의 견해를 밝히고자 한다.

경향신문

먼저 최저임금은 고용을 감소시키는가?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 ‘그렇다’. 경제원론 교과서를 보면 최저임금은 노동시장의 수요와 공급을 균형시키는 임금보다 ‘높은 수준’에 설정한다. 이 불균형 수준에서 노동 공급은 늘어나지만 노동 수요는 감소해서 고용은 줄고 실업은 늘어난다. 이것은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어서 이것을 감추려는 것이 부질없는 것만큼이나, 이것을 지적하는 것이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물어야 하는 질문은 위 질문이 아니다.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질문은 “어떻게 하면 인상된 최저임금하에서도 고용이 유지되거나 심지어 증가할 수 있겠는가?”이다. 관건은 ‘다른 조건이 동일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기업의 노동수요를 증가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은 더 이상 불균형 임금이 아니라 증가한 노동수요가 떠받치는 균형 임금이 된다. 고용도 늘고 임금도 올라가고 노동자의 소득도 증가한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팀은 최저임금은 인상했지만 노동수요를 증가시키는 정책을 유효하게 집행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 난리가 난 것이다. 아무 생각 없는 국회는 법개정을 통해 거기에 기름을 부은 것이고. 대통령은 그 법에 그대로 서명하고.

다행인 것은 아직도 바로잡을 시간이 조금 남았다는 점이다. 국민들은 아직도 쪼끔 더 기다려 줄 수 있고, 경제의 외부 여건도 반 년은 더 버틸 수 있다. 잘못을 깨닫고 제대로 된 정책을 펼치기에 충분한 시간은 아니지만 불가능한 시간도 아니다. 정신차리면 된다.

그럼 무엇을 할 것인가? 경제민주화를 해야 한다. 최저임금을 인상할 경우 가장 직접적으로 노동수요 증가를 위한 정책적 관심이 필요한 부문은 최저임금 노동자를 고용하는 김밥집, 편의점, 택배회사, 말단 하청업체 등이다. 소위 ‘먹이사슬의 차상위 계층’이다. 이들의 지불능력을 늘려주는 것이 정책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경제민주화 또는 ‘을 살리기’가 최저임금 인상의 가장 직접적인 보완책인 것이다.

그럼 지난 1년 동안 문재인 정부가 경제민주화 또는 ‘을 살리기’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 공정위가 일부 프랜차이즈 업계의 갑질을 시정했다. 그러나 그것뿐, 다른 경제민주화 조치는 없었다. 골목상권 살리는 정책이 있었는가? 내수 진작을 위한 거시 정책이 있었는가? 상가 임대료가 낮아졌는가? 하청업체에 강제적 낙수효과가 맨 밑바닥까지 흘러 내려갔는가? 납품단가 후려치기와 기술탈취로 부당하게 축적한 수조원의 재벌 대기업 사내 유보는 정당하게 활용되고 있는가? 노동자들이 기업경영의 정확한 정보를 얻고 조언할 수 있는 통로는 확보되었는가? 경제구조 변화와 경기진작을 위한 세금은 노동자가 부담하고 있는가, 자본가가 부담하고 있는가?

없었다. 없는 정도가 아니라 최근에는 이상한 방향으로 정책이 흘러가고 있다. 경제민주화는 뒷전이고 혁신성장이 앞에 등장했다. 생산성 높이자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다. 문제는 혁신성장이라는 번지르르한 포장을 벗기면 그 안에 지난 10여년 동안 줄기차게 추구했고 또 철저하게 실패했던 구시대의 논리가 독버섯처럼 퍼져 있다는 점이다. 이대로 가면 문재인 정부 역시 ‘규제완화를 위해 노동시장에는 정부가 개입하면 안되지만, 투자촉진을 위해 정부가 기업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이상한 비대칭적 논리를 들고 나오게 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얼마 전에 ‘기업의 기를 살리는 정책’을 주문했다. 대기업으로 대표되는 재계는 반색했다. 필자는 우려한다. 대기업의 기를 살리는 것이 시급한 것이 아니라 김밥집, 편의점, 택배회사, 말단 하청업체의 기를 살리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중간선거 이후부터 문재인 대통령은 달라진 모습을 보여야 한다. 필요하다면 부총리를 경질할 수도 있다. 여당은? 원내대표 다시 뽑고 최저임금법 시행을 보류해야 한다. 그 대신 경제민주화 입법을 통과시키는 데 진력해야 한다.

<전성인 | 홍익대 교수·경제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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