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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뭘 만들까’보다 중요한 게 ‘왜 만드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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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함께하는 교육] 3D프린터 제대로 활용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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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동탄 나루고등학교 발명프로젝트반 학생들이 지난 6월5일 조재만 기술교사(서 있는 이)의 도움을 받아 쓰레받기와 문손잡이를 설계하고 있다. 김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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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교육 관련 박람회에서 최고 인기 부스는 코딩과 3D프린터 관련 부스다. 코딩에는 자녀 교육에 관심이 많은 학부모들, 3D프린터에는 아이들이 몰려든다. 그러나 3D프린터 부스에서 아이들이 하는 건 휴대폰 케이스, 간단한 캐릭터 등을 뽑거나 제품이 출력되는 모습을 구경하는 정도다. 이러면 대관령 양떼목장에 가 체험 활동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

3D프린터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다. 근대 자본주의는 대공장-대량생산에 기반한다. 3D프린터 기술이 이대로 발전한다면, 미래에 개인은 필요로 하는 제품의 상당수, 어쩌면 거의 전부를 스스로 만들어 쓸 수 있다. 이러면 대공장-대량생산에 기초한 자본주의는 크게 바뀔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로봇 기술과 함께 3D프린터가 4차산업혁명 시대에 핵심 기술로 주목받는 건 이 때문이다.

3D프린터가 ‘신기한 장난감’ 정도에 그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난 6월5일 오후 5시 경기도 동탄 나루고등학교 기술실에 약 20명의 1학년 학생들이 모였다. 이들은 발명프로젝트반 동아리 소속으로 3D프린터 활용 수업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지난 주에 토론을 통해 쓰레받기와 문손잡이를 3D프린터로 만들어 보기로 결정했다.

쓰레받기와 문손잡이는 단순한 듯하지만 그렇지 않다. 3D프린터 경험이 없는 1학년 아이들이라면 기초활동을 통해 개념을 잡는 게 중요하다. 조재만 기술 교사는 “2학년 아이들은 미세먼지 측정장치와 공기청정기를 만든 뒤 교실 어디에 둬야 가장 효과적인지 실험하려고 한다”고 소개했다.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가 우리가 해결하려는 문제가 진짜 얼마나 중요한 건지 고민해보는 거야. 쓰레받기와 문손잡이를 만들려고 하는데 이것들이 우리 학교에 진짜 필요한 물건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 설계하고 디자인하는 데 의미가 없으면 안 돼. 가치가 있어야 해.”

조 교사의 말이 끝나자 아이들은 노트북을 꺼내 설계에 들어갔다. 설계는 3D모델링툴로 하는데, 이날 학생들은 오픈소스 프로그램인 ‘123d design’을 사용했다. 초등학생이나 3D프린터 초보들은 팅커캐드(tinkercad)를 많이 쓴다.

교육박람회서 인기 많은 3D프린터
폰케이스 등 출력물만 구경하기보단
어떤 제품 왜 필요한지 고민하고
생각 구체화하는 설계과정이 핵심
기술과 과학수업뿐 아니라
모든 교과서 융합도구로 활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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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동탄 나루고등학교 발명프로젝트반 학생들이 지난 6월5일 조재만 기술교사와 함께 문손잡이 설계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 김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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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픈소스 설계프로그램 다양하게 나와 있어

서우원군은 “쓰레받기를 그냥 만드는 게 아니라 쓰레기 종류에 따라 편리하게 수거할 수 있는 제품을 설계해보려고 한다. 먼지냐 종이 뭉치냐에 따라서 쓰레받기 형태가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서군 바로 뒷자리에 앉은 최창호군은 바퀴가 달린 쓰레받기를 설계 중이었다.

기술실 앞쪽에 있던 아이들 4명은 문손잡이를 어떻게 만들어야 가장 효율적일지 토론했다. 나루고등학교 교실문은 미닫이인데 문짝에 파인 홈을 밀어 여닫는다. 레일이 낡으면서 미닫이문이 잘 여닫히지 않아서 문손잡이를 달아보겠다는 생각을 한 거다.

“문손잡이를 문짝에 무엇으로 고정하지?”

“찍찍이, 문어발, 피스(못의 일종) 등이 있는데 각각 장단점이 있어.”

“피스라면 3D프린터로 출력 가능해. 찍찍이나 문어발은 기존 제품을 구매해야 하고….”

노유민군은 직접 설계한 휴대폰 거치대를 3D프린터로 출력했다. “지난 5월15일 스승의 날에 담임선생님께 휴대폰 거치대를 3D프린터로 만들어 선물했다. 뛰어나다고 칭찬을 해주셔서 다시 몇 개 더 뽑아보려고 한다.”

노군은 스마트폰 VR(가상현실) 장치도 설계했다. 스마트폰을 이 장치에 넣은 뒤 헬멧이나 고글처럼 얼굴에 쓰는 건데 시중에는 1만원부터 30만~40만원대까지 다양한 가격대 제품이 나와 있다.

기술실 한쪽에는 3D프린터로 뽑은 모형자동차도 있었다. 이 제품은 2학년 신호섭군 등 3명이 만든 것이다. 지난 3월 현대자동차 주최 제7회 청소년모형자동차 대회에서 입상해 오는 6월16~17일 본선에 참가한다. 신군은 “모터만 빼고 나머지는 모두 3명이 나눠 직접 설계했다. 저는 서스펜션(차체 무게를 받쳐주는 장치)을 설계했다”며 “한데 큰 진동은 잘 흡수하는데 작은 진동까지는 잡지 못해서 더 정밀하게 개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조 교사는 “3D프린터 활용 교육의 장점은 무엇보다 학생들의 머릿속 생각을 밖으로 끄집어낼 수 있다는 것”이라며 “과거에 목재나 찰흙을 활용한 수업은 한번 만들면 쉽게 뜯어고칠 수 없다. 3D프린터는 설계만 간단하게 수정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 과정을 통해 아이디어가 구체화되고 창의성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학교에서는 체육·국어·수학·영어·과학 등 교사 7명이 ‘전문적학습공동체’를 구성해 3D프린터 설계를 배우고 있다”며 “이를 통해 과목별로 3D 프린터를 활용한 교수학습 자료를 개발하려고 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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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유민 학생이 설계한 스마트폰용 VR(가상현실) 장치. 김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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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생도 비교적 쉽게 제품 설계 가능

3D프린터에 대한 큰 오해 가운데 하나가 기술이나 과학 수업에만 활용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경기도 남양주 예봉중 최경철 과학교사는 “잉크젯프린터로 예쁜 사진을 한 장 뽑는 데 그친다면 별 게 없다. 마찬가지로 3D프린터로 제품 한 두개 만들어보는 데 그친다면 교육효과는 크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중요한 건 생각을 3D프린터를 활용해 표현하는 거다. 즉 생각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최 교사는 3D프린터 활용 수업의 하나로, 멸종위기 동물 홍보물을 만드는 수업을 했던 경험을 들었다. 멸종위기 동물이 무엇인지 조사하고, 그 동물에게 사람들이 관심을 갖도록 하는 홍보물을 만드는 과정에서 학생들은 ‘지구환경 보호’라는 큰 개념을 깨달았다. 최 교사는 “한 학생은 멸종위기 동물로 바다표범을 생각하고 숟가락의 움푹한 부분을 바다표범 얼굴 모습으로 만들어 3D프린터로 출력했다”며 “인간은 세 끼 식사를 하므로 하루에 식사 때마다 멸종위기 동물을 생각하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요즘 융합 교육이 강조되는데, 3D프린터도 과학이나 기술뿐 아니라 다양한 교과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3D프린터 교육에서 아이디어와 이를 실물로 구현하기 위한 설계가 중요하다면 아직 어린 초등학생은 3D프린터를 활용할 수 없는 것일까?

경기도 파주 임진초등학교 조영석 교사는 “팅커캐드 같은 프로그램은 초등학생들도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며 “초등학교 3~4학년이 되면 길이·부피·두께 등의 개념이 나오는데, 3D프린터를 활용한 수업 효과가 크다”고 밝혔다. 책꽃이·연필꽂이·열쇠고리·캐릭터 등을 설계할 경우 길이·두께·부피·형태 등을 정확하게 예상·측정해야 한다. 설계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에 대한 개념을 알 수 있다.

조 교사에 따르면 3D프린터는 초등학교 다양한 교과에 활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수학수업에서는 3D설계를 통해 길이·소수·입체도형 개념을 아이들이 쉽게 익히도록 한다. 미술수업에서는 ‘나만의 집 설계’, ‘나만의 장신구 만들기’, 사회수업의 ‘이동과 소통하기’ 단원에서는 ‘나만의 자동차 설계’, 과학수업의 ‘동물의 생활’ 단원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동물 모델링’ 등으로 활용 가능하다.

김태경 <함께하는 교육> 기자 ktk7000@ha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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