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8 (목)

두 '리처드 3세', 당신의 선택은?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LG아트센터, 오스터마이어 연출.. 신들린 연기·라이브 연주 인상적
명동예술극장, 2인극 버전 무대.. 서커스 보는 듯 화려한 120분


파이낸셜뉴스

토마스 오스터마이어의 '리처드 3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나는 기형이고, 미완성이고, 반도 만들어지지 않은 채 너무 일찍이 이 생동하는 세계로 보내져 쩔뚝거리고 추한 나의 모습에 곁에만 지나가면 개들도 짖는다. 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나날을 즐기는 사랑하는 자가 될 수 없기에 나는 악인이 되기로 굳게 마음먹는다."

올 한해는 '리처드 3세'의 해인 것 같다. 지금으로부터 400여년 전, 셰익스피어가 그려낸 절대악의 화신 '리처드 3세'가 국내 주요 공연장에서 다양한 버전으로 재해석돼 오르고 있다.

지난 2월 황정민을 주연으로 내세운 연극 '리처드 3세'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성황리에 공연을 마친데 이어 이달에만 두 가지 버전의 색다른 '리처드 3세'가 무대에 오른다. 특히 이달에는 독일과 프랑스 극단의 유명 연출가들이 내한해 각기 독특한 해석을 통해 재창조한 '리처드 3세'가 관객 앞에 선다.

먼저 무대에 오르는 것은 독일 버전이다. 오는 14일부터 17일까지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펼쳐지는 '리처드 3세'는 독일 실험연극의 산실인 샤우뷔네 베를린의 예술감독이자 유럽 연극계의 거장 토마스 오스터마이어가 연출한 작품이다.

셰익스피어의 초기 걸작으로 손꼽히는 '리처드 3세'는 영국 요크 왕조의 마지막 왕이었던 실존 인물 리처드 3세를 다루고 있다. 기형적인 신체로 태어난 리처드가 형제와 조카들을 무자비하게 제거하며 왕좌를 차지하지만 그에 맞서 일어난 리치먼드 백작 헨리 튜더와의 전투에서 패배하고 최후를 맞는다는 이야기다.

오스터마이어의 '리처드 3세'는 지난 2015년 2월 베를린에서 초연된 후 그해 여름 아비뇽 페스티벌과 2016년 에든버러 페스티벌에서 공연하며 극찬을 받았다. 오스터마이어는 반원형의 무대를 세우고 이를 꽃가루와 흙먼지가 흩날리는 무채색의 황량함으로 채워 그 위에서 펼쳐지는 핏빛 살육과 검은 모략의 현장을 더욱 강렬하게 부각시켰다. 여기에 무대와 객석을 가로지르며 등장하는 샤우뷔네 극장 배우들의 역동적인 앙상블과 라이브로 연주되는 드럼의 강한 비트는 첨예하게 펼쳐지는 정치적 대립과 술책에 마치 관객들마저 직접 개입돼 있는 듯 긴장감과 몰입감을 고조시켰다.

이 작품에서 무엇보다 압도적인 존재는 주인공 리처드3세 역을 맡은 배우 라르스 아이딩어다. 아이딩어는 곱사등에 절름발이인 리처드 3세의 흉측한 외형적 특징뿐만 아니라 왕좌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복잡해지는 심리 상태를 신들린 듯한 연기력으로 표현해내며 이 작품을 한편의 드라마틱한 심리 스릴러로 승화시킨다. 간교함과 악랄함으로 무장한 채 주변 인물들을 조종하는 '리처드 3세'는 바로 이 시대 관객들의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며 마치 자신의 악행을 정당화하고 설득시키려는 것처럼 사악한 숨결을 뿜어낸다.

파이낸셜뉴스

장 랑베르-빌드의 '리처드 3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편 오는 29일부터 7월 1일까지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는 장 랑베르-빌드가 연출한 2인극 버전의 '리처드 3세'가 공연된다. 장 랑베르-빌드 역시 지난 2016년 명동예술극장에서 한국 배우들과 함께 연극 '로베르토 쥬코'를 연출한 이래 두번째로 한국 무대를 찾는다. 이번에는 장 랑베르-빌드 자신이 리처드3세로 분해 프랑스 배우 로르 울프와 2인 광대극으로 공연을 구성한다. 원작에서는 40명이 등장하는 반면 이번 무대에는 이 두 명의 배우가 서커스를 연상시키는 화려한 무대 위에서 수십개의 배역을 120여분간 소화한다. 화려한 도자기 갑옷을 입은 삐에로와 같은 모습의 장 랑베르-빌드는 공연의 시작에서 자신의 환영을 마주하고 풍선과 꼭두각시 같은 망령들이 무대 위에서 터지고 뭉개지며 죽음을 맞이하는 소용돌이를 목도하게 된다. 전통적인 연극 기법에 혁신적인 기술을 접목한 이번 공연은 독창적인 무대 장치와 영상 기법이 백미다. 이를 통해 그림자처럼 탄생된 제3의 배우는 마법처럼 극에 녹아들어 무대를 꽉 채운다.

박지현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