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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EU 300억유로 푼다지만…`이탈렉시트` 막기엔 역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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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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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탈리아가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을 탈퇴하려는 '이탈렉시트' 움직임이 거세지면서 유럽연합(EU) 체제가 흔들릴 조짐이 보이자 EU가 회원국 재정 안정을 위해 300억유로(약 38조원)를 풀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탈렉시트 움직임의 원인이 고질적인 재정적자를 해결하기 위한 긴축정책에 지친 이탈리아 국민이 포퓰리즘 정당을 지지한 데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또 이탈렉시트가 현실화하면 그리스와 스페인 포르투갈 등 재정적자에 허덕이는 다른 유럽 국가에도 나타날 수 있는 유로존 탈퇴 전이 현상을 막기 위한 포석이다.

EU 행정부 격인 EU집행위원회가 재정위기에 몰린 회원국을 지원하기 위해 300억유로 규모 기금 조성 계획을 밝혔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31일 보도했다.

계획안에 따르면 자연재해나 지방은행 위기를 겪고 있는 회원 국가들에 자금을 빌려주는 것이 골자다. 기금 규모는 총 300억유로이고 한 국가는 총기금의 30%까지 대출받을 수 있다. 이번 기금을 통해 자연재해 복구를 위한 인프라스트럭처 건설과 은행 위기에 따른 자금 투입에 있어 재정 투입 국가들에 숨통을 터준다는 목적이다.

EU는 앞으로 이 기금 규모를 점진적으로 늘려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국가들에 도움을 준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하지만 기금 조성 규모가 당초 예상보다 턱없이 적어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유로존 국가들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비율이 87%에 달하고 그리스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은 그 비율이 100%가 넘어가는 상황에서 재정 안정을 지원하기 위한 자금 규모가 작기 때문이다.

FT는 유럽안정화기구가 추진하는 이번 계획은 지난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주장한 EU 개혁안에는 못 미친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전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유로존 GDP의 일정 비율에 달하는 금액을 안정기금으로 조성하자고 주장한 바 있다. 그가 주장하는 기금 규모는 수천억 유로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유럽안정화기구가 조성 예정인 300억유로는 유로존 경제 규모의 0.2%에 불과해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지적에 EU집행위는 "이번에 추진하는 방안이 문제 해결의 첫 번째 발걸음에 해당한다"며 앞으로 더 큰 폭의 기금 조성 방안이 마련될 것임을 시사했다.

유로존 위기의 진원지였던 이탈리아 상황은 다소 호전됐다. 일단 오성운동이 동맹과 연정 구성을 재시도하겠다고 밝혔다는 소식이 지난 30일 전해지면서 연정 구성 가능성이 되살아났다. 이탈리아 정국 혼란으로 촉발된 세계 금융시장 혼란도 안정을 찾았다.

이탈리아에서는 3월 총선 이후 최대 정당인 반체제 오성운동과 극우정당 동맹 간 연정 구성이 지연돼 무정부 상태가 3개월가량 이어지고 조기 총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최근 금융시장이 요동쳤다.

하지만 이탈리아 정세는 EU 바람과 계속 멀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연정이 구성되든 조기 총선이 실시되든 최대 지지를 얻고 있는 오성운동과 동맹의 반EU 정책은 계속 영향력을 키울 것으로 관측된다.

전날 여론조사기관 입소스가 발표한 이탈리아 정당 지지도에 따르면 오성운동은 32.6%로 3월 총선 결과와 비슷한 지지율을 지켰다.

동맹은 오히려 지지율이 올랐다. 동맹 지지율은 25.4%를 기록해 총선 때보다 지지도를 약 8%포인트 올렸다. 이들 정당은 EU나 유로존 탈퇴와 같은 극단적 승부수는 종전 연정 협상 과정에서도 일단 배제했으나 여전히 긴축 반대, 내수 진작을 통해 국가부채 감축, 빈곤층 지원, 감세 등 EU 기득 정치권과 충돌할 수 있는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새 정부 구성을 둘러싼 이 같은 정국 혼란을 두고 워싱턴포스트(WP)는 EU 통합이 또 한 번 도전받고 있다고 전했다. WP는 2016년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결정 이후 EU의 미래에 대한 의구심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던 EU 지도자들에게 이탈리아 정치 위기는 유럽 통합을 겨냥한 새로운 공격에 대한 우려를 다시 불러일으키는 일격이라고 평가했다. 영국 탈퇴가 확정된 EU 입장에서는 엄청난 타격이다. 이탈리아 경제 규모는 유로존에서 세 번째로 크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그리스 사태 등 과거 위기에서 서서히 치유된 유럽 은행들이 이탈리아의 정치적 혼란으로 또다시 취약성을 드러낼 수도 있다"고 전했다.

[김덕식 기자 / 홍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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