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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美 비밀 문건 1] 미국이 기록한 '5·18과 전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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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 38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헬기 사격을 포함한 발포 명령의 지시자, 계엄군에 의한 암매장과 새롭게 제기된 성폭행 문제 등 아직도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문제들이 쌓여 있습니다. 5·18 관련 취재를 1년 넘게 이어오고 있는 저희 SBS 탐사보도팀은 이번 38주년을 맞아 '미국 비밀 문건'에 주목하기로 했습니다. 80년 5월을 전후로 미국 국무부와 주한 미국 대사관이 주고받은 문건인데 비밀 해제가 되면서 볼 수 있게 된 자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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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이 기록한 5·18…"전두환 장군이 결심했다"

"보안사령관과 중앙정보부장서리를 겸직하고 있었으나, 1980년 5월 18일부터 5월 27일 사이의 그 어느 시간에도, 전남 광주의 그 어느 공간에도 나는 실재하지 않았다. 당시 나는 계엄군의 작전 계획을 수립하고 지시하거나 실행하기 위한 그 어떤 회의에도 참석할 수 없었고 참석한 일이 없다. (중략) 5·18 사태의 발단에서 종결까지의 과정에서 내가 직접 관여할 일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 '전두환 회고록 1권' 중


5·18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한 전두환 씨의 입장은 한결같습니다. 아무 관련이 없다는 것입니다. 전 씨는 2003년 SBS와의 인터뷰에서도 "군대라는 건 지휘계통에 의해 움직인다"며 "당시 나는 계엄사령관의 부하로 지휘권이 없었는데 대통령이 됐으니까 광주사태를 내가 일으켰다고 사람들이 오해한다"고 말했습니다.

미국 비밀 문건의 내용은 전 씨의 주장과 달랐습니다. 80년 5월 25일 미국 현지시간 오전 9시, 머스키 당시 국무장관이 한, 중, 일 대사관 등에 비밀 전문을 보냅니다. 여기에는 "군의 실력자 전두환 장군이 군사 작전이 필요한 것으로 결론 내렸다(Army strongman general Chun Doo Hwan is reported to have concluded that he has been deceived by the radicals within Kwangju and that military action will now be required)"고 쓰여 있습니다.

다음날인 26일 미국 현지시간 오전 7시에는 역시 머스키 국무장관이 비밀전문을 보냈는데 여기에도 "전두환 장군이 상황을 끝내기 위한 광주 진입에 강한 압박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According to Gen. Chun Doo Hwan. He is under great pressure (from an unspecified source) to end the stalemate and move against the city)"며 "그 뒤에 합참의장이 주한 미군사령관에게 27일 0시부터 계엄군 투입을 한다고 알렸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시민들의 사상이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는 최종 진압 작전 결정의 배경을 미국은 '전두환 씨의 결심과 압박감'으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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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두환, 최종 진압 작전 결심"이 중요한 이유

80년 5월 27일 새벽 진행된 최종 진입 작전은 특히 전두환 씨가 가장 민감해하는 부분 중 하나입니다. 97년 대법원은 전 씨에게 무기징역을 확정하면서 최종 진압 작전을 결정한 내란 목적의 살인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근거는 작전 이틀 전인 25일 낮 12시 15분쯤 국방부 내 육군회관에서 이희성 당시 계엄사령관, 주영복 당시 국방장관 등과 전 씨가 회의에 참석했다는 기록이었습니다.

전 씨는 이 회의 내용을 부정해야만 '5·18은 나와 무관하다'는 주장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실제 회고록에도 "25일 오찬은 작전 계획과 관련 있는 모임이긴 했지만 이미 계획이 확정된 뒤에 사후 설명을 위한 자리였다"면서 "그날 모임에 참석해 처음으로 최종 진압 작전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고 썼습니다. 대법원이 근거로 든 '최종 진압 작전을 결정한 25일 회의'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이재의 5·18 기념재단 조사위원은 "5·18 관련한 한국 군 기록은 5공화국을 지나면서 왜곡, 조작돼 전두환이라는 이름이 거의 등장을 안 한다"며 "최종 진압 작전 배경에 전 씨가 기록된 미국 비밀 문건이 그래서 더 큰 의미를 갖는다"고 했습니다.

● 전두환 측 반발…"미국 문서, 황당하다"

이런 내용이 보도가 되자 전두환 씨 측은 크게 반발했습니다. 전두환 정권 내내 대통령 공보비서관을 지냈고 전두환 회고록을 쓴 민정기 씨는 SBS와의 통화에서 "확실하지도 않은, 검증되지도 않은 미국 문서에 뭐라고 쓰여 있다고 해서 그것을 가지고 책임을 묻는다는 건 황당한 이야기"라고 했습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김동철 바른미래당 원내대표 등 정치권에서 미국 비밀 문건에 5·18 최종 진압 작전에 대한 전두환 씨의 책임이 거론되는 만큼 단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기도 했는데 민정기 씨는 이에 대해서도 "조사하려면 하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미국 비밀 문건에는 전두환 씨가 '5·18 당시 북한군 투입설을 얘기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80년 6월 17일, 주한 미국대사관이 작성한 문건에는 주한 미국 상공회의소 관계자들과 전두환 씨의 만남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전 씨는 이 자리에서 "22명의 신원 미상 시신이 발견됐는데 모두 북한의 침투 요원으로 보고 있다(He said 22 bodies could not be identified, all of whom might be North Korean infiltrators)"고 말한 걸로 돼 있습니다. 5·18을 왜곡하는 지만원 씨 등 일부 극우 인사가 주장하는 '북한군 개입설'의 시초가 실은 전두환 씨였던 것입니다. 군사 작전 배경과 북한군 투입설까지 80년 당시 미국은 '5·18의 배후'로 단 한 사람, 전두환 씨를 지목했습니다.

▶ [美 비밀 문건 2] 5·18과 미국, '신군부 정권 장악' 의도 알고 있었다
▶ [美 비밀 문건 3] 5·18과 미국, 성명 발표도, 무력 사용도 신군부와 상의한 미국

[장훈경 기자 rock@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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