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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시론] 중국 배제하면 한반도 평화 정착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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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간 오랜 신뢰 적자 메우고

북한의 체제·안전 로드맵 만들며

성공적 개혁 개방 안착 위해선

중국 배제하고 진행하기 어려워

중앙일보

이희옥 성균관대 정외과 교수·성균중국연구소장·리셋 코리아 외교안보위원


한반도 문제 해결에 중국 변수가 다시 떠오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이 시진핑 주석을 두 번째 만난 이후 조금 달라진 것 같다. 기분이 좋다고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북한의 태도 변화 배후에 중국이 있다는 불쾌감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중국을 잠재적 적국으로 간주한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정책 기조에 비춰보면 예견된 것이기도 했다.

중국은 두 차례 북·중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비핵화에 대해 ‘단계적·동시적’ 해법을 제시했고, 북한 노동당 ‘친선참관단’을 초청해 경제 발전 현장으로 보내는 등 북한 끌어안기를 본격화했다.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될 뻔한 데에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 등에 대한 북한 관리의 모욕적 언사가 직접적 계기가 되었지만, 이면에는 북·중 관계의 틈을 벌리고 북한에 선택을 강요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계산된 대중 전략이 숨어 있었다.

중국은 미·중 무역 갈등을 어렵게 봉합한 상태에서 북한 문제로 양국 관계가 다시 악화하는 걸 원치 않았다. 그러나 중국이 한반도 핵 문제 당사국으로서 건설적 역할을 지속할 것이라는 점은 분명히 했다. 워싱턴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만난 왕이 외교부장도 “북한의 합리적 안보 우려를 적시에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반도 문제를 둘러싸고 북한의 친중화를 막고자 하는 미국과, 북한의 친미화를 막고자 하는 중국의 힘겨루기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북·중 밀착에 대한 생각을 묻기도 했다. 북·중 관계와 한·중 관계의 틈을 동시에 벌리고 싶다는 미국의 속내를 표현한 것이다. 중국도 북한 비핵화의 진전에 따라 한미동맹의 조정, 주한미군의 지위 문제, 사드 배치 철회에 대한 질문지를 내밀 것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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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보면 한반도 냉전 구조를 해체하는 역사적 과정에 중국 변수를 전략적 시야에 놓고 외교정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북핵과 북한 문제에 대한 한·중 간 정책 유사성이 높아지면서 협력 공간은 넓어졌다. 표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했고, 지속가능한 북한체제를 위한 경제 협력의 로드맵도 만들었다. 무엇보다 미국과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와 체제 안전을 맞교환한다고 해도 오랜 신뢰 적자를 메우고, 체제 안전 이행 로드맵을 만들며, 북한의 개혁 개방을 안착시키는 일은 중국을 배제하고 진행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종전 선언과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 과정에서 ‘3자 또는 4자’ 같은 불필요한 논란이 있었고 한·미동맹을 과시하기 위해 정상 통화 내용을 중계하듯 공개했으며, 북한이 주한미군의 존재를 수용하기로 했다는 메시지를 발신하면서 중국 변수를 세심하게 고려하지 못했다. 그 사이 중국은 한반도 문제의 주변화를 우려하면서 북한을 끌어들였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한반도 평화체제 제도화라는 ‘진실의 순간’을 맞이할 경우 불필요한 중국 비용을 지불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을 쳐다보며 일희일비하기를 넘어 북한과 중국을 동시에 끌어들여 이중적 헤징(double hedging)을 시도하는 상상력이 필요해졌다. 지난해 10월 한·중 양국이 사드 문제에 관한 협의 결과를 발표할 때, 도보다리를 걸으며 김정은 위원장을 설득하면서 한반도 미래를 설명할 때, 판문점 북측 지역에서 전격적으로 제4차 정상회담으로 돌파구를 찾았을 때, 국제사회는 한국의 전략적 자산을 주목했다.

올해는 한·중이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를 구축한 지 10년이 되는 해이다. 그러나 2008년 당시 후진타오 정부와 이명박 정부는 각각 미국과 북한을 견제하기 위한 전략적 목적이 달랐다. 따라서 작은 복병에도 한·중 관계 전체가 흔들리는 안정적 불안(stable unrest)이 지속되었다. ‘정치는 차갑고 경제는 뜨거운’ 한·중 관계 모순을 바로 잡는 출발은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를 내실화하는 것이다.

이것은 한·미동맹과 충돌하지 않는다. 한·미동맹을 강화할수록 중국이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주목할 것이라는 논리도 성립되기 어렵다. 오히려 한반도 문제를 둘러싼 한국적 해법에 대한 절박성과 애착을 가지고, 북한을 움직이는 실제적 지렛대를 가지고 있을 때 중국의 건설적 역할을 유인할 수 있다. 심지어 제4차 남북정상회담은 북·미 회담의 중재자를 넘어 북한이 비핵화 궤도를 이탈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한반도 판이 흔들릴 때, 남북 관계의 동력을 유지하는 플랜-B의 성격도 가지고 있다. 주역에서는 가장 어려운 궤를 석과불식(碩果不食, 큰 과실은 다 먹지 않고 남긴다)으로 풀이한다. 역설적으로 씨 과실은 다른 사람에게 먹히지 않는 법이다.

이희옥 성균관대 정외과 교수·성균중국연구소장·리셋 코리아 외교안보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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