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0 (토)

[노트북을 열며] 지방 없는 지방선거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중앙일보

염태정 내셔널 부데스크


지난 주말 지방자치 분야 전문가 몇 분과 저녁을 했다. 그날의 화제는 단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전격적인 북·미 정상회담 취소였지만, 이야기는 곧 분권·지방선거에 맞춰졌다. ‘광역단체 후보 누구는 어떻다’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은 정당과 이념을 떠나 진짜 지역 발전을 위해 힘쓸 사람을 뽑아야 한다’…. 사안별로 의견이 나뉠 때도 있었지만, 지방선거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다는 데는 대체로 의견이 같았다.

다음달 13일 치러지는 제7회 전국 동시 지방선거 후보자 등록이 25일 끝났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모두 9362명이 후보로 나와 평균 경쟁률은 2.3대 1이라고 밝혔다. 2014년 제6회 지방선거 경쟁률(2.3대 1)과 비슷하다. 17개 광역 시·도지사 경쟁률은 4.2대 1, 226개 기초단체장은 3.3대 1이다. 선거가 보름 앞이지만 남북 관계와 관련한 대형 이슈들이 선거 분위기를 압도한다. 광역단체장과 12곳의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는 그나마 주목받지만 기초단체장·지방의원에 대한 관심은 바닥 수준이다. 지하철역 앞에서, 거리에서 후보들이 명함을 열심히 나눠주지만 분위기는 뜨지 않는다. 이번 지방선거 투표율이 역대 최저를 기록할 거란 전망도 나온다.

지방선거와 동시에 하려던 개헌도 무산되면서 지역별로 진행되던 지방분권 강화 운동도 힘을 확 잃었다. 지방분권 강화는 문재인 정부의 핵심공약이었다. 대통령 소속 자치분권위원회가 다음달 예정했던 ‘자치분권 로드맵’ 발표는 7월 이후로 미뤄질 전망이다. 이미 여러 차례 발표가 미뤄진 ‘재정 분권 로드맵’의 상반기 발표 여부도 불분명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연방제 수준의 분권’을 말했지만 지난 1년을 돌아보면 ‘열심히 추진하려 한다’는 정도지 실제로 이뤄진 건 별로 없다. 대놓고 말은 안 하지만 나라도 작고 지금 크게 불편한 게 없는데, 지방분권이 필요하기는 한 거냐는 목소리도 있다.

지방 분권이 동력을 잃고, 지방선거에 대한 관심이 바닥이어도 전문가들이 지방과 분권을 계속 얘기하는 건 그게 생활과 밀착돼 있기 때문이다. 전국 지자체의 조례·규칙은 9만6000여 개에 달한다. 우리 생활은 이런 조례와 규칙의 제약을 받는다. 동네 공원에서 술을 마시는 걸 처벌할 것이냐도 지방의회에서 결정한다. 생활에 영향을 주는 조례·규칙을 만들고 이를 실행하는 곳이 지방자치단체고 지방의회다. 지방분권 정책은 이를 위한 틀이다.

분권의 정신을 담겠다는 헌법 개정이 무산됐어도 국가 사무의 지방 이양을 비롯한 분권 강화 정책은 계속 추진돼야 하고, 지방 선거에서 좋은 인물을 뽑아야 하는 이유다. ‘분권 강화’란 단어가 혹 거북하다면 ‘생활 밀착형 정책의 강화’로 바꿔 불러도 좋다.

염태정 내셔널 부데스크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