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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현금 없는 사회' 편리함 뒤에 숨겨진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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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소외 계층 대책 없어 해킹 위협도 확산

파이낸셜뉴스

스웨덴에서는 노숙인도 스위시로 구걸을 하고, 종교단체 헌금도 스위시로 지불한다. [사진=스웨덴 스위시 공식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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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 한 푼 없이도 하루 이틀 사는데 전혀 불편을 느끼지 않는 세상이다. 오히려 지갑 속에 두둑한 지폐는 짐처럼 느껴진다. 대신 작은 카드지갑이나 스마트폰 결제를 이용한다. 우리나라 뿐 아나라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현금 없는 사회'가 일상화되고 있다.

그러나 현금 없는 사회의 편리함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해킹 위협이나 불법자금 세탁 등 부작용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높다. 세계가 현금없는 사회의 편리함을 안심하고 즐기기 위해서는 부족용에 대한 사전 대비책이 우선적으로 마련돼야 한다는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현금 사용률 가장 낮은 스웨덴, 정보소외 계층 대책 없어
27일 주요 외신에 따르면 나라 별로 탈현금화 수준이 조금씩 다른데, 세계에서 현금 사용률이 가장 낮은 나라는 스웨덴이다. 스웨덴 중앙은행 릭스방크에 따르면 지난해 시중에 유통된 현금은 1990년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스웨덴 왕립공과대학은 5년내 스웨덴 현금 사용률이 0%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렇다면 스웨덴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경제 생활을 하는 걸까. 답은 모바일 결제앱 '스위시(swish)'다. 스위시는 2012년 스웨덴 주요 은행 7개사가 합작해 만든 모바일 결제 수단이다. 스마트폰에 스위시 어플만 설치하면 지갑이 필요치 않다.

스웨덴에서는 신용카드나 스마트폰을 잊고 나온 날엔 슈퍼마켓, 커피숍, 식당은 물론 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도 어렵다. '현금 사용 불가'라는 안내 문구를 스웨덴 가게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다. 이런 추세인 만큼 현금을 아예 갖고 있지 않는 은행이 늘어나고 은행의 현금자동 입출금기(ATM) 기기는 철거되고 있다.

현금 대신 사용하는 디지털 지불 시스템은 일단 빠르고 편리하다. 돈을 만지지 않으니 위생적이기도 하다. 또한 거래 내역이 그대로 드러나니 탈세, 테러 등 범죄에 악용될 소지가 적다. 화폐를 주조하는 데 드는 사회적 낭비도 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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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 반란'의 비요른 에릭손 대표 [사진=현금 반란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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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스웨덴에서는 아예 탈현금화에 반대하는 적극적인 움직임까지 나왔다. 스웨덴 시민단체 '현금 반란(kontantupproret·cash rebellion)'은 2015년 급속도로 진행된 스웨덴 탈현금화에 반발해 만들어졌다. 디지털화에 한발짝씩 뒤쳐진 노년층이나 농촌 거주자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현금 반란'의 비요른 에릭손(72) 대표는 탈현금화에 의문을 제기하며 디지털화된 지불 시스템의 취약성에 대해 경고한다. 단순히 디지털화에서 밀려났기 때문에 펼치는 주장이 아니라 IT 기술의 결함, 사기, 해킹 등 사이버 위협에 대해 불안감을 드러낸다. 에릭손 대표는 지난 4월 영국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지불 시스템이 완전히 디지털화되면 누군가 시스템을 껐을 때 방어할 무기가 전혀 없다"면서 "이런 위험성을 생각하면 여전히 아날로그 시스템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금의 디지털화를 일종의 독점으로 봤다.

■해킹 위협, 현금없는 사회의 가장 큰 걸림돌
이는 중앙은행 릭스방크 역시 우려하는 바다. 지난 2월 릭스방크의 테판 잉베스 총재는 "전쟁 등 심각한 위기 상황에서 지불 네트워크가 취약해질 수 있다"고 지적하며 지불 시스템에 대한 공공 통제를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장기적으로 스웨덴 크로나의 지위를 보호하고 은행에 현금 취급을 강제해야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보안 문제는 현금 없는 사회의 가장 큰 취약점이다. 디지털화된 지불 시스템은 조금만 틈이 생겨도 대형 금융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지난 2014년 세계 최대 은행 중 하나인 JP모건체이스가 해킹을 당해 개인정보 8300건이 유출됐다. 해커들이 JP모건 서버 한 대를 해킹해 수백만 개 계정의 데이터를 빼낸 후 사기에 활용했다. 그렇게 발생한 피해액은 약 1억달러로 추정된다.

사생활 침해 문제도 제기된다. 모든 사람들의 소비, 금융 거래 등이 시스템에 기록되어 자금 흐름이 쉽게 추적된다. 금융거래는 투명해지겠지만 그만큼 정부와 기업이 개인의 금융 활동과 개인정보를 너무 쉽게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자칫 기업이나 거대 조직 등 권력을 쥔 이들이 국민을 통제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빈부격차에 대한 비판도 있다. 빈곤층은 기초 자본과 신용이 부족해 신용카드 등을 만들 수 없거나 간편 결제에 이용되는 휴대폰 등 디지털기기 구매가 어렵다. 빈곤이 신용을 깍아먹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디지털기기 사용, 모바일 결제의 개념 등을 이해하기 힘든 노년층도 대표적인 취약층이다.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디지털 지불화는 편리함 이면에 그만큼 커다란 그림자를 갖고있다. 현금 없는 사회가 마치 돈의 미래처럼, 더욱 발달된 사회처럼 묘사되지만 사전 대비책이 허술하다면 무서운 '빅브라더'가 될 수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경고다.

imne@fnnews.com 홍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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