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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이슈 '미투' 운동과 사회 이슈

서지현 검사 “#미투 말할 수 있었던 것은 5월의 기억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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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서지현 검사 26일 광주서 제13회 들불상 수상

“80년 5·18 때 8살…함성·공포·피와 눈물 기억”

“5·18 계엄군 여성 성폭행 사건 진실 밝혀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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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현 검사가 손으로 직접 쓴 들불상 수상 기념 소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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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5월에 새겨진 유년의 기억은 평생 삶을 살아가는 지표가 됐다. 사람들의 외침, 두려움, 눈물, 그리고 5월이 끝난 뒤 느꼈던 “시리고 따사로웠던” 햇살….약자들의 삶을 무너뜨리는 거대한 폭력 앞에 맞설 수 있었던 용기의 씨앗은 그 해 봄날 뿌려졌다.

#미투 운동의 시발점이 된 서지현 검사(창원지검 통영지청)는 26일 들불상을 받은 뒤 “5월의 기억이 저에게 여성의 삶을 함부로 짓밟는 것은 그 어떤 이유로도 해서는 안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게 했던 듯하다”고 말했다. 들불상 시상식은 이날 오전 11시 광주시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역사의 문에서 들불열사 합동추모식과 함께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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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 들불상 수상자인 서지현 검사가 26일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하고 있다.


광주 태생으로 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서 검사는 유년의 기억을 떠올리며 수상 소감을 이어갔다. “80년 5월 저는 이 곳 광주에 있었습니다. 8살 어린 나이였지만, 그 5월의 함성과 공포는, 피와 눈물은 여전히 기억 속에 새겨져 있습니다. 공포가 끝났던 5월 어느 날 화정동 아파트 베란다에서 느꼈던 그 시리도록 따사롭던 햇살은 여전히 온 몸에 남겨져 있습니다.” 아버지가 전남의 한 국립대 교수로 옮기면서 광주를 떠났던 서 검사는 목포여중과 목포여고를 졸업했다.

짧지만 뚜렷했던 그 기억은 어려움에 부닥칠 때마다 정의의 편에 서게 한 용기의 원천이 됐다. “그 5월의 기억은 어렸던 저에게 모두의 생명과 삶은 소중히 여겨져야 한다는 것을, 모두의 일상과 평화는 그 무엇보다 귀하다는 것을, 강자가 그 어떤 이유로도 무력과 공포로 약자들의 삶을 함부로 망가뜨리고, 그 입을 틀어 막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아리도록 알게 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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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 들불상 수상자인 서지현 검사가 26일 국립5·18민주묘지 역사의 문에서 열린 시상식에 참석했다.


#미투 폭로 이후 대중 앞에 나서는 것을 꺼렸던 서 검사가 시상식에 참가한 것도 광주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너무나 과분한 이처럼 뜻깊은 상을 감히 받을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다시는 강자가 약자의 삶을 함부로 파괴하고 그 입을 틀어막는 시대로 돌아가지 않았으면 하는 소망에서 입니다. 같은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다른 분들께도 힘껏 용기를 드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에서입니다.” 서 검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일상의 평화를 위해, 일상의 정의를 위해 자신의 삶을 소중히 그리고 열심히 살아가는 모든 분들께 영광을 돌린다”고 수상 소감을 맺었다.

서 검사가 받은 들불상은 들불야학을 설립해 운영하고 5·18민주화운동 전후로 민주주의를 분투하다가 세상을 뜬 7명의 정신을 계승하고 그 뜻을 기리기 위한 상이다. 들불야학 관련자 7명은 박기순·윤상원·박용준·박관현·신영일·김영철·박효선 등이다. 기념사업회는 해마다 민주·인권·평등·평화의 발전을 위해 헌신한 개인이나 단체에게 이 상을 수여해왔다. 들불상 심사위원회(위원장 정채웅 변호사)는 “서 검사가 대담한 결단과 용기로 획기적인 여성 인권 신장의 계기를 마련했고, 성 평등한 사회라는 시대적 소명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서 검사는 시상식이 끝난 뒤 들불열사 7명의 묘지를 찾아 참배했다. 이날 처음 국립5·18민주묘지를 방문한 서 검사는 묘지 들머리에서 “지금 눈물이 나려고 그래요”라고 눈시울을 붉혔다.



-시상식에 참여하시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요?

“지금 제가 제기한 사건이 수사중에 있잖아요. 현직 검사이기 때문에 이야기를 하게 되면, 부담이나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어서 외부 노출을 하지 않았구요. 그런데 (들불상은)뜻깊은 상이어서 오게 됐습니다.”

-현재 안태근 전 검사장에 대한 검찰 수사를 본 심경은?

“수사의지가 전혀 없던 수사였구요. 검찰에서 이제까지 약간 곤란한 수사에 대해서는 대충 수사하고 법원에 떠넘기고 법원에 가서 무죄받는 식으로 진행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런 우려가 많이 있습니다. 수사단이 아닌 조사단을 조직해서 수사의지가 없음을 처음부터 보여줬구요. 역시 필요이상으로 수사를 지연시키고 부실한 수사가 됐다고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재판과정에서라도 공소 유지를 잘 했으면 합니다.”

-#미투 폭로하고도 2차 가해로 힘들어 하는 분들이 많다.

“2차 가해에 대해 상당히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구요. 사실은 저도 그렇고 다른 피해자도 나서지 못하는 이유가 2차 가해가 너무나 심하기 때문인데, 저도 굉장히 각오를 많이 하고 나왔지만, 쏟아진 2차 가해 때문에 힘들었습니다. 2차 가해가 특히 법부무, 검찰, 조사단에서 주도적으로 2차 가해를 가했구요. 2차 가해 문제를 굉장히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2차 가해 고발 사건에 대해 수사를 충실히, 또 엄격히 수사를 해서 2차 가해를 견지하는 대책이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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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 들불상 수상자인 서지현 검사가 26일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하고 있다. 김남표 들불기념사업회 이사장(맨 왼쪽)과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서 검사와 함께 헌화하고 있다.


-80년 5·18 당시 계엄군에 의한 여성 성폭행 소식을 듣고 어떤 심경이었는지요?

-“(그 사실을)폭로하신 분께서 저를 언급하셔서 저로서는 굉장히 송구스럽게 생각하고요. 또 저로 인해서 용기를 내셨다고 한다면 굉장히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사실 5·18 때도 그렇고 많은 역사적인 순간에서 여성들이 그런 성적인 피해를 입었던, 그런 긴 세월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부분이 (규명이 돼)지금이라도 바뀔 수 있는 세상으로 나갔으면 합니다. 그렇게 묻혀졌던 진실들이 하루빨리 밝혀지고, (가해자가)사죄하고 (생존자가)회복됐으면 좋겠습니다.”

광주/글·사진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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