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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오버투어리즘’ 시대…관광객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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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관광객 때문에 살 수가 없다”

북촌 주민들 주말시위 시작

동네 떠나는 사람들도 늘어

유럽 도시들도 관광객 몸살

관광세 징수, 숙박업소 제한 등

‘오버투어리즘’에 정책적 대응

방문제한, 동선분산 등 모색

“주민 참여한 대응책 찾고

관광의 ‘공공성’ 고민할 때”



한겨레

부처님오신날인 지난 22일 서울 종로구 북촌로11길 ‘가회동 골목길’에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들어차 있다. 골목길과 대문 곳곳에 ‘주민들이 거주하는 곳이니 조용히 해달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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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뉴스분석 왜?

관광객 ‘거부’하는 주민들

▶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페인 바르셀로나, 이탈리아 베네치아…. 많은 이들이 동경하는 유럽의 여러 관광지들은 ‘숙박세’ 명목으로 여행객에게 돈을 받습니다. “관광객 때문에 삶이 파괴되고 있다”는 주민들의 시위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남의 나라만의 일이 아닙니다. 서울 한복판에서도 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무슨 까닭일까요?

“여러분, 제발 도와주세요! 관광객 때문에 살 수가 없습니다. 제발 오지 말아주세요.”

“Please support us not coming to our village. We’re suffering from tourists.”

지난 22일 서울 종로구 북촌로11길의 이른바 ‘가회동 골목길’의 한 한옥대문 앞. 흰 종이 위 매직으로 눌러쓴 손글씨가 절절해 보인다. 같은 내용을 한글과 영어로 써서 붙여놓았다. 그 위에는 “조용히 해주세요”를 영어·중국어·일어·한국어로 인쇄한 포스터가 붙어 있다. 한 외국인이 손글씨로 적은 문구를 읽으며 살짝 웃었다.

대부분 관광객은 문구에 신경쓰지 않았다. 아무것도 붙어 있지 않은 ‘깔끔한’ 대문을 찾아 사진 찍기에 바빴다. 대문 쪽으로 난 계단에 올라 문고리를 살짝 들어올린 채 포즈를 잡는 이들은 주로 중국에서 온 단체 관광객이었다. 공휴일인 부처님오신날(5월22일)이어서인지 한국인들도 많았다. “아무래도 중국 사람들이 성조(소리의 높낮이)가 있어서 많이 시끄럽지.” 가회동 골목길 오르막 끝에서 과일을 파는 ㄱ씨가 말했지만 시끄럽기로 따지면 중국인이나 한국인이나 마찬가지였다.

중국인 관광객 두세팀이 몰려들자 3미터 남짓 좁은 골목길이 가득 찼다.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커지자 한 중국인 관광객이 “쉿” 하며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갔다. 조금은 신경이 쓰이는 눈치였다. 하지만 그들의 웅성거림만으로도 골목길이 들썩거렸다. 관광객이 안고 있는 갓난아이의 카랑한 울음소리가 골목길 담을 넘어 퍼졌다.

한겨레

지난 5월22일 오전. 한 관광객이 “제발 오지 말아달라”는 문구가 붙어 있는 북촌의 한옥 대문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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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대신 관광객 오신 날

한옥이 몰려 있는 서울 북촌에서 매일같이 벌어지는 풍경이다. 주말이나 공휴일엔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다 몰려간다. 방음시설도 없고 담장도 낮은 단층짜리 한옥에 살며 매일같이 이런 상황에 맞닥뜨리는 삶은 어떨까? 서울 한복판 북촌 주민들이 결국 “사람답게 살고 싶다”며 거리로 나섰다.

‘북촌 한옥마을운영회’는 지난달 28일부터 주말마다 마을 입구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인해 사생활을 침해받고 있다며 서울시와 종로구에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마을 곳곳에는 ‘서울시는 주인, 북촌 주민은 노예’ ‘새벽부터 오는 관광객, 주민은 쉬고 싶다’고 적힌 펼침막이 걸렸다.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북촌로11길을 걷다 보면 이들 펼침막과 함께 ‘거주지역이라 조용히 해달라’는 안내판과 계속 마주치게 된다.

주민들은 관광객이 몰려드는 시간대엔 좀처럼 대문을 열거나 집 밖으로 나오는 일이 없다. 문을 열면 관광객들이 집 안을 들여다보거나 불쑥 집 안으로 들어오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우연히 마당 안팎을 청소하느라 대문 밖으로 나온 주민 이아무개(46)씨와 마주쳤다. 그는 “아침 8시부터 사람들이 몰려드는데 시끄럽고 지저분해지기도 해서 어지간해선 대문을 열어놓거나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며 “몰려든 관광객 때문에 동네를 떠나는 주민들도 늘어나 곳곳에 빈집이 많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40년을 살았다는 이씨는 “예전엔 20분에 한두명 지나갈까 말까 하는 조용한 골목이었다”고 덧붙였다. 그의 말이 끝난 직후부터 20분 동안 이씨의 집 앞으로 지나가는 여행객을 헤아려봤다. 점심시간대인 낮 12시15분부터 20분 동안 250명 이상이 이씨의 집 앞을 지나쳤다.

“새벽이고 밤낮이고 할 것 없이 골목에서 떠들고 돌아다니니까 밤에 잠을 못 자요.”

“사진 찍는다고 대문 문고리를 잡았다 놓으면 그 소리가 그렇게 크게 들려요.”

“아침에 대문 열고 나가면 단체 손님들이 우르르 들어와요. 집 구경한다고 들어오는 거죠.”

“주말에는 쓰레기 천지예요. 커피 마시고 컵은 그냥 막 버리고 가요.”

“주거지역이라 묶어놓고 관광객은 받고 그렇다고 해서 주민들에게 전혀 혜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지구단위계획, 이것 때문에 주민들이 살기 어려운 동네, 희망이 없는 동네로 몰락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재산상의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어요.”

“예전엔 공방도 있고 주민들이 갈 만한 음식점도 있었는데 카페 같은 걸로 다 바뀌었어요. 주민들을 위한 공간은 없고, 다 외국인들을 위한 걸로요.”

한양대학교 대학원(관광학과) 안지현씨가 쓴 박사학위 논문 ‘관광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에 대한 질적 시스템다이내믹스 분석: 북촌 일대를 중심으로(2017년)’에 담긴 북촌 주민들의 목소리다.

‘동네를 떠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주민 이씨의 말은 수치로도 증명된다. 국가통계포털을 보면 ‘한옥 관광’을 위해 사람들이 몰리는 서울 종로구 삼청동과 가회동의 올해 4월 기준 주민등록인구는 7369명(삼청동 2866명+가회동 4503명)으로, 2011년(8970명)에 비해 17.8% 줄었다. 같은 기간 종로구의 인구 감소율 8.3%의 두배에 이른다.

더구나 서울 종로구 삼청동, 가회동, 계동, 안국동 등을 포함한 북촌 일대는 한옥 보존 등을 위해 2010년 1월 ‘지구단위계획’ 구역으로 결정됐다. 지구단위계획에 포함되면 관련 법에 따라 용도변경 등이 허용되지 않는다. 한옥을 헐고 복층 빌라를 짓거나 상업시설로 바꾸는 게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주민들 입장에서는 관광객에게 시달리면서도 자기 집도 마음대로 개조할 수 없게 된 셈이다. 현재 서울시는 북촌 지구단위계획의 재정비를 추진 중이다.

암스테르담도 바르셀로나도

‘투어리스티피케이션’(주거지가 관광지화해 거주민이 떠나는 현상), ‘오버투어리즘’(수용 범위를 초과한 관광객이 몰려 주민들의 삶을 침범하는 현상) 등으로 지칭되는 이런 현상은 서울 북촌만의 얘기가 아니다. 서울 종로구 이화동의 벽화마을이나 서울 종로구 서촌,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예술촌 등이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북촌과 비슷한 과정을 겪었거나 겪는 중이다. 원희룡 제주도지사 후보가 폭행을 당하는 등 최근 제2공항 건설과 관련해 갈등이 고조된 제주도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관광객 증가로 주거환경이 나빠지고 지역의 정체성 상실, 지나친 상업화, 임대료 상승 현상 등이 발생하면서 주민이 밀려나거나 떠나는 일들이 반복되고 있다.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국내로 들어오는 외국인 관광객은 2006년 436만명에서 2016년 1393만명으로 세배 넘게 증가했다. 지난해 ‘사드 사태’ 여파로 주춤했지만 올해 들어 다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유럽 등 외국의 관광도시들도 밀려드는 관광객으로 몸살을 앓고 있긴 마찬가지다. 중국을 중심으로 개발도상국의 소득이 높아지면서 전세계 관광객 수 역시 크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 관광지식정보시스템 자료를 보면 세계 여행객 수는 2008년 약 9억3천만명에서 2017년 약 13억2천만명으로 증가했다.

연간 2000만명이 방문하는 이탈리아 베네치아(베니스)에선 2010년대 초반부터 대형 크루즈의 정박을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7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선 복면을 쓴 남성 4명이 정차한 2층 관광버스에 들이닥쳐 타이어에 구멍을 내고 유리창에 ‘관광업이 이웃을 죽인다’고 쓴 뒤 도망쳤다. 관광객들이 자주 이용하는 공공자전거 타이어를 터뜨리는 영상이 공개되기도 했다. 지자체에서 세금으로 구입한 공공자전거를 관광객이 선점해 타고 다니면서 주민들 입장에서는 도로도 복잡해지고 자전거 주차공간도 빼앗겼기 때문이다.

<로이터>, <텔레그래프> 등은 지난 16일 네덜란드 수도 암스테르담 시정부 구성을 협상 중인 녹색좌파당 등 4개 당 연합이 오버투어리즘을 막기 위해 ‘도시균형정책’을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이 정책에는 시 중심가에서 에어비앤비의 영업 제한, 유람선의 시 중심가 정박 금지, ‘맥주 바이크’(맥주를 마시면서 시내를 구경하는 이동식 바) 단속, 여행세 인상 등이 포함돼 있다. 올해 1800만명의 관광객 유입이 예상되는 암스테르담은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주택 단기대여 서비스가 성행하면서 주택난이 발생하고 있다. 이베트 호프만 녹색좌파당 대변인은 “몰려든 관광객들 때문에 에어비앤비와 불법 호텔이 성행하면서 암스테르담 시민들은 그들의 이웃을 잃어버렸다. 암스테르담은 시민들이 살기 좋은 도시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연간 3000만명 이상의 관광객으로 고심하던 스페인 바르셀로나 역시 2015년부터 공무원, 학계, 지역주민 등으로 구성된 관광위원회를 꾸려 문제를 풀어가고 있다. 바르셀로나시는 관광버스의 도심지 진입 제한, 신규 숙박업소의 지역별 차별 허가, 숙박업소를 통한 관광세 징수 등의 정책을 펼치고 있다.



“관광지로 개발되면 주민들은 행복할까”

북촌 주민들의 불편을 파악한 서울시와 종로구도 대안을 마련하는 중이다.

관광객의 방문(통행) 시간을 제한하는 방법이 우선 검토되고 있다. 예를 들어, 야간 시간대인 저녁 8시부터 다음날 아침 8시까지 방문 자제를 권고하는 방식이다. 강제 제한은 법적인 근거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시행하기 어렵지만 여행사의 협조를 구하거나 캠페인을 통한 방식은 당장 시행이 가능하다. 종로구 관계자는 “실태조사를 통해 자료를 수집하는 중이다. 방문객을 조절하는 여러 방법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북촌을 여행하는 관광객들의 동선을 분산시키는 방법도 대안이 될 수 있다. 나효우 착한여행 대표는 “북촌로11길에 집중된 관광객들을 다른 루트로 돌리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바르셀로나는 ‘이곳보다 더 좋은 곳이 있다’는 개념으로 새로운 여행지를 소개해 관광객의 쏠림 현상을 막고 있다”고 말했다. 나 대표는 “현재 중국인 단체 관광객 대부분은 한국 현지인 가이드 없이 버스가 관광객들을 풀어놓고 ‘몇시까지 어디로 모여라’는 식이다. 현지인 가이드가 안내하면 동선이 더 다양해지고 특정 지역으로 관광객이 쏠리는 현상을 막을 수 있다”고 제안했다.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관광세를 받는 방안에 대해서는 “지역 환원을 전제로 검토해볼 만하다”는 의견과 “아직 우리나라의 관광수지 적자가 심한 만큼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엇갈린다.

대안의 ‘내용’ 못지않게 대안을 찾아가는 ‘과정’의 중요성도 강조된다. 북촌의 경우에도 주민들 각자가 처한 상황이 다르고 이들의 이해관계 또한 다양하다. 종로구청 의뢰로 북촌의 투어리스티피케이션 실태조사를 벌인 한양대 이훈 교수(관광학)는 “아무래도 상업지역 주민들은 관광객에 더 긍정적이고 주거지역 주민들은 부정적이다. 하지만 주거지역 주민들 뜻도 ‘(관광객이) 오지 말라’는 게 아니라 ‘거주민을 고려한 방문을 해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주민협의체와 서울시, 종로구청 등이 결합해 정답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결정은 결국 주민들이 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민들이 배제된 관광 정책을 되돌아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뒤따른다. 공정여행 네트워크 이매진피스 임영신 대표는 “제주 2공항 반대 집회에 나온 할머니들이 묻는다. ‘관광지로 개발되면 주민들이 행복해지냐’고. 시민들을 ‘민원인’으로만 보지 말고 관광을 통해 시민들의 삶이 어떻게 나아질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 대표는 “관광수지, 성장률 등 숫자로만 관광정책을 결정하지 말고 공공성의 관점에서도 바라봐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글·사진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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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오신날인 지난 5월22일 오전. 관광객들이 ‘조용히 해달라’는 문구가 적힌 펼침막을 바라보며 서울 종로구 북촌 ‘가회동 골목길’을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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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객의 또다른 ‘흔적’은 곳곳에 버려진 쓰레기다. 지난 22일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서 소격동으로 이어지는 길가에 일회용컵들이 버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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