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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일반인 '제물' 삼아 화제몰이···예능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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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지난 21일 방송된 KBS2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 성폭력에 가까운 과도한 아빠의 스킨십 때문에 고민하는 18살 딸이 나왔다. [사진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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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이 참여하는 예능이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JTBC ‘효리네 민박’과 ‘한끼줍쇼’ 속에서 묻어나는 일반인들의 이야기는 시청자들에게 담담하면서도 진한 공감을 끌어내고, 채널A ‘하트시그널’, SBS ‘로맨스패키지’ 등 일반인 연애프로그램은 과거 연예인들의 연애 프로그램과 비교해 더욱 현실성을 높여주면서 설레는 몰입감을 주고 있다.

그런데, 일부 예능의 '일반인 이용법'은 남다르다. 아니, 좀 더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비정상적이다. 이들은 일반인을 ‘제물’로 삼고 이를 발판으로 이슈몰이를 하는 데 골몰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능은 KBS2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이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는 일반인들의 고민을 들어보며 어느 고민이 가장 심각한지 방청객들이 투표하고, 1등으로 뽑힌 이에게 상금 100만원 주는 형식을 띠고 있다.

성폭력 같은 아빠 스킨십, 18살 딸 얼굴은 전국에 방송됐다
지난 21일 방송에 나온 한 일반인의 사연은 또 한 번 대중의 분노를 불렀다. 아버지가 ‘사랑한다’는 이유로 18살 딸에게 과하게 스킨십을 해, 딸이 사연을 신청한 것. 스킨십의 수위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혀로 얼굴을 핥고 입에 뽀뽀하는 것은 물론 직접 목욕까지 시켜준다는 것. 언뜻 봐도 그저 심각한 고민거리 수준을 넘어서 성폭력에 해당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제작진은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이를 그대로 방송했다. 아니, 제작진은 오히려 더욱더 자극적으로 비치도록 편집하며 격한 반응을 유도했다. 한창 예민할 나이의 딸은 전국에 얼굴이 클로즈업돼 그대로 방송됐고, 미우나 고우나 가족인 그 딸의 아버지는 인터넷 공간에서 사진과 함께 직업 등 신상까지 다 공개되며 분노의 표적이 됐다.

제작진과의 공조(?) 속에 애초 가벼운 사연과 토크 위주였던 '안녕하세요'는 점점 더 폭력적으로 변했다. 이미 '안녕하세요'는 아내에게 욕설과 폭력에 준하는 과격한 행동을 일삼는 남편 등 어이없는 사연이 등장해 수차례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때마다 일반인인 사연자는 분노의 표적이 됐고, ‘안녕하세요’는 시청률과 화제성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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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백종원의 골목식당'. "(백종원에게) 보여줄 게 없다"는 조보아의 얘기에 자막으로 '우리 숙제 무시한 거야?!?!'라는 말이 깔렸다. 하지만 이들은 방송에서 이 말을 하지 않았다. [사진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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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방영 중인 SBS ‘골목식당’도 마찬가지다. 성공한 요리사업가 백종원이 일반인들의 장사를 돕는 프로그램에서 일반인들은 수시로 비판의 중심에 선다. 최근 방송에선 해방촌 신흥시장에서 과일 월남쌈을 팔겠다는 두 명의 일반인이 비판의 대상이 됐다. 이들이 백종원의 조언을 수긍할 수 없다거나, 언뜻 불성실해 보이는 모습을 보였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방송 후 곧장 “가르쳐달라고 구걸해도 모자랄 판에, 저런 사람들은 도와주면 안 된다” “장사의 기본이 안 됐다”는 식의 비판이 욕설과 함께 이어졌다. ‘골목식당’의 제작진들은 이들의 불성실해 보이는 태도가 그대로(어쩌면 더욱 과하게) 전해질 수 있도록 농담조로 말한 얘기도 색색이 자막으로 전했다. 때로는 하지 않는 말까지도 극적 재미를 주기 위해 실제 '속마음'인 양 자막으로 처리하며 이들이 '불성실한 캐릭터'로 역할하도록 일조했다.

분노 부르는 일반인, 부추기는 제작진
이렇듯 '골목식당'에서 '타깃'이 되면, 특정 개인은 무지하면서도 고집만 센 인물로 결론이 난다. 매주 이러한 인물이 등장했고, 대중의 분노가 뒤따랐다. 뒤에 이어질 극적인 변화를 보여주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라고 하더라도, 이건 정도가 심하다. 지난해 말 종영한 SBS ‘푸드트럭’에서도 비슷했다. 당시 비판의 대상이 됐던 일반인들의 사진은 지금까지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백종원을 화나게 만든 최악의 도전자’라는 식의 이름으로 떠돌아다닌다. 프로그램의 취지가 좋다거나, 결국 이들이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지 않느냐는 얘기는, "결과가 과정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폭력적인 주장일 뿐이다.

물론 방송에 출연한 일반인에게도 적지 않은 책임이 있다. 그 같은 비판을 감수하고서라도 방송에 출연을 결정한 것은 본인이기 때문이다. 행동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발언과 행동이 방송 전파로 나가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 방송의 생리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다. SBS '골목식당'에 다수 출연하는 중장년층들은 더욱 그럴 것이다. 정해진 시간에 극적 스토리를 중심으로 상황을 전해야 하는 예능 프로그램의 특성상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넘어갈 부분도 그 행간이 사라지며 더욱 비정상적으로 비치기도 한다.

그런 상황에서, 그런 이들을 데려다 놓고 제작진들은 이들이 비난의 표적이 되는 걸 방조하고, 나아가서 부추긴다. 이건 콘텐츠 창작자들이, 더군다나 지상파에서 할 일은 더더욱 아니다. 이들에게 묻고 싶다. 그렇게 해서 올린 시청률, 정말 만족하느냐고 말이다.

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



[노진호의 이나불]은 누군가는 불편해할지 모르는 대중문화 속 논란거리를 생각해보는 기사입니다. 이나불은 ‘이거 나만 불편해?’의 줄임말입니다. 메일, 댓글, 중앙일보 ‘노진호’ 기자페이지로 의견 주시면 고민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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