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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단둥에 北 수산물·인력 깔려… '중국의 구멍' 숭숭 뚫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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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치는 美北회담]

북·중 접경 단둥 가보니… 미국의 제재가 안먹히는 이유 드러나

"시진핑, 다롄 찾은 김정은에게 5000억위안 차관 약속說 돌아"

제재 집행 담당 공무원들까지 "대북물류 뚫려" 사업가에 귀띔

조선일보

24일 단둥의 바싼(八三) 저유소에 멈춰 서 있는 유조 열차들. 바싼 저유소의 원유는 압록강 밑 송유관을 통해 북한으로 간다. /이길성 특파원


지난 24일 오전 중국 단둥 최대의 수산물 도매시장인 황해(黃海) 수산품 시장에서는 가게마다 꽃게 손질이 한창이었다. 한 가게에 들어가 "어디 산(産)이냐"고 묻자 주인은 스스럼없이 "북한산"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 근(500g)에 100~250위안(약 1만7000~4만2500원)"이라고 했다. 시장 안쪽 조개 도매상들의 수조엔 중국에서 나지 않는 황(黃)조개가 가득했다. 역시 북한산이라고 했다. 북한 수산물은 지난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의해 수출이 금지된 품목이다.

대북 무역상들이 몰려 있는 단둥 고려가(高麗街). 25일 정오 한 일식 뷔페에 들어서자 남색 유니폼을 입은 북한 여종업원들이 "어서 오십시오"라고 인사했다. 이 식당은 사흘 전 개업한 곳이다. 그러니 북한 종업원들도 최근에 채용된 것이다. 유엔은 지난해부터 북한의 해외 인력 파견을 금지한 상태다. 북한 여종업원들은 인근 강변로 카페에서도 볼 수 있었다. 단둥 생활이 10년이 넘었다는 한 한국 교민은 "김정은 방중 이후 북한 식당이 아닌 일반 식당이나 카페에서도 북한 여종업원들이 부쩍 늘었다"고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1일 "최근 (북·중) 국경에 구멍이 훨씬 더 많이 뚫리고 더 많은 것이 흘러들어 가고 있다는 소문들이 있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는 이에 대해 "중국은 국제사회 (제재) 의무를 엄격히 지키고 있다"고 즉각 반박했다. 하지만 기자가 24~25일 돌아본 단둥의 모습은 중국 정부가 아닌 트럼프 대통령의 말이 사실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우선 단둥 시내 시장에선 통관이 불가능한 북한 수산물들이 버젓이 판매되고 있었다. 한 대북 사업가는 "야간에 해상에서 북·중 선박 간 '배떼기(어획물을 통째로 넘겨받는 것)' 형태로 밀수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1~2월만 해도 북한 수산물 밀수가 적발되면 배를 댄 선주까지 연대 처벌받을 만큼 단속이 살벌해 밤에 배를 띄울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했다.

북한 여종업원들이 느는 것도 제재가 엄격한 상황에선 설명이 안 되는 현상이다. 지난해 유엔 안보리는 해외 북한 노동자의 비자 갱신과 노동자의 신규 파견을 모두 금지했다. 단둥의 한 대북소식통은 "새로 유입되고 있는 북한 여종업원들은 비자 대신 도강증 등을 통해 편법으로 취업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제재를 집행해야 할 단둥 공무원들도 분위기가 달라졌다. 단둥의 한 사업가는 "요즘 공무원들을 접대하는 자리에서는 '(북한과의 사업 기회를) 미리미리 준비하라'는 말을 듣는다"고 말했다. '대북 물류가 곧 뚫린다' '미국과 유엔 대북 제재에서 자유로운 생필품부터 북한으로 대거 들어가게 될 것'이라는 등의 내용이다. 그는 "김정은 방중 전엔 양은 냄비 하나도 정식 통관은 고사하고 밀무역을 통해서도 북한으로 가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핵·미사일 개발에 전용될 수 있는 품목이라는 이유였다. 이 사업가는 "하지만 지금은 냉면 뽑는 기계 등 대형 금속 주방 설비도 밀무역을 통해 북한에 판매될 정도"라고 말했다. 당국이 눈을 감아주지 않고는 어려운 일이다.

단둥 정부는 한술 더 떠 대북 제재 해제를 전제로 압록강 황금평, 위화도에 중국판 개성공단을 연다는 구상 아래 준비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벌써 사업권을 따기 위한 물밑 경쟁이 시작됐다고 한다. 한 조선족 사업가는 "단둥에서는 시진핑 주석이 다롄을 찾은 김정은에게 5000억위안(약 84조원)의 저리 차관을 약속했다는 설(說)도 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북한의 강경 태도 변화와 관련해 '중국 배후설'을 제기한 것도 이런 설과 관련 있는 것 아니냐는 말이 돌고 있다는 것이다.





[단둥=이길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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