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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트럼프, 북한식 벼랑끝 전술로 북한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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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치는 美北회담]

김정은이 2차례 방중뒤 태도 바꾸자 "회담 안 한다" 초강경 카드

곧바로 北이 몸 낮추자… "따뜻하고 생산적 담화" 주도권 되찾아

트럼프에 비판적이던 NYT "한번은 시도할 만한 혁신적인 조치"

24일(현지 시각) 미·북 정상회담의 전격적인 취소 발표는 이른바 '트럼프식 벼랑 끝 전술'을 여실히 보여줬다는 평가다. 미국 NBC방송에 따르면 전날까지만 해도 누구도 정상회담 취소를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모든 이의 예상을 트럼프 대통령이 '한 방'에 날려버렸다.

원래 '매드 맨(mad man·미치광이) 전술'은 북한의 전매특허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에겐 통하지 않았다.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이 '이 구역의 미친놈은 나야'라는 식으로 나왔다. 실제로 지난 3월 초 김정은과의 정상회담을 예측하며 트럼프 대통령은 "미친 사람을 다루는 것의 위험성에 대해서라면, 그건 그(김정은)가 처리할 문제이지 내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다. 자기가 김정은보다 더 미쳤다는 농담이었다. 김정은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를 미리 예고했던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북 정상회담에서도 이 전략을 그대로 적용했다. 지난 3월 미·북 정상회담을 전격적으로 수용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의 주도권을 쥔 듯이 보였지만, 4월 이후 남북 정상회담과 두 차례에 걸친 김정은의 중국 방문 이후 회담의 주도권이 흔들리는 듯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주 북한이 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실무회의에 나타나지 않고 연락마저 끊어버리자 '회담 취소'라는 강공으로 판을 흔들어버렸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날 김정은에게 보낸 편지에서 "마음을 바꾸게 되면 부디 주저하지 말고 전화하거나 편지해달라"며 여지를 줬다.

북한은 즉시 꼬리를 내렸다. 불과 며칠 전까지 회담 취소 가능성을 거론했던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25일 다시 담화를 내고 "(트럼프가) 어느 대통령도 내리지 못한 용단을 내리고 수뇌 상봉을 위해 노력한 데 내심 높이 평가해왔다"며 트럼프 대통령을 치켜세웠다. 또 "'트럼프 방식'이라고 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실질적 작용을 하는 현명한 방안이 되기를 은근히 기대하기도 했다"고까지 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따뜻하고 생산적인 담화"라고 환영했다. 이어 "지금 북한과 대화 논의를 진행 중"이라며 "6월 12일 (예정대로) 정상회담이 열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고 CNN이 전했다. 결국 협상 개최 여부까지 '협상 카드'로 만들며 주도권을 되찾아온 것이다.

회담 취소의 배경에는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미국이 북한을 회담장에서 만날지 핵 대 핵의 대결장에서 만날지는 전적으로 미국의 결심에 달렸다"고 말한 담화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정상회담이 아니라 핵보유국의 지위로서 '핵군축 회담'을 하려는 의도를 보였던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 취소 통보로 완전한 비핵화가 없으면 정상회담도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것이다.

정상회담 취소 카드는 북한에 대한 길들이기뿐 아니라, 중국과 한국에 대한 경고 의미도 있다고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분석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배후론'을 수차례 제기한 터라서 중국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미국과 힘겨운 무역 분쟁을 벌이는 상황인지라 특히 그렇다. 화살이 언제 중국으로 날아들지도 모르는 것이다. 회담 취소가 발표되는 순간까지 아무런 통보를 받지 못한 청와대도 충격이다. 미국이 한국에 대해 '운전자'로서도, '중재자'로서도 확고하게 신뢰하지 않음이 드러났다.

미국 언론과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회담 취소로 미국의 협상 입지가 한층 강화됐다고 분석한다. '이른 시간 내의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라는 협상 원칙이 북한의 반발로 잠시 흔들리다가, 이번 결정으로 순식간에 제자리를 찾았다는 것이다. 정상회담을 하더라도 미국이 원하는 방식대로 진행하겠다는 의지를 확실하게 보였고, 또 성공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비판적인 논조를 유지해온 뉴욕타임스도 이날 "한 번은 시도할 가치가 있는 용기 있고 혁신적인 조치"라고 평가했다.

이번 사태에서 트럼프 행정부 의사 결정 과정의 취약성을 보여줬다는 지적도 있다. 정상회담의 전격적인 수락은 물론이고, 회담 취소까지 트럼프 대통령 한 사람의 결정으로 진행됐다. 앞으로도 트럼프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예상하기도 어렵다. 밥 메넨데스 상원의원(민주당)은 "외교의 기술은 (트럼프 대통령이 주장하는) 거래의 기술보다 훨씬 더 어렵다"고 했다.

[워싱턴=조의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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