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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히드라처럼 살아나는 IS… 생명력 원천은 재테크 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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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백억달러 달하는 자금력

은행 약탈·원유 암거래가 기반, 부동산 투자·유망 기업 인수

2015년엔 6조4000억원 벌어

- 극단주의 숙주가 돼 테러수출

주요 점령지·근거지 잃었지만 동남아시아 등서 세력 키워

인도네시아 8세소녀 자폭테러

인도네시아 대도시 수라바야에 사는 소녀 파밀라(8)는 수학을 잘하는 학생이었다. 그의 오빠 유수프(17)는 여느 사춘기 학생과 다르지 않았다. 미국 섹시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를 좋아했고, 유튜브 동영상을 즐겨 봤다. 유수프는 파밀라를 비롯해 나머지 동생 둘도 잘 챙기는 맏이이기도 했다. 이런 자녀들과 함께 아빠 디타, 엄마 푸지는 오손도손 살았다. 동네 이웃이 기억하는 디타 가족이다. 하지만 지난 13일 이웃들은 경악했다. 디타 일가족 모두 '자살 폭탄 테러범'이 돼 수라바야 교회 3곳을 공격, 12명을 살해한 것이다. 조사 결과 여덟 살 파밀라는 폭탄 벨트를 두르고 있었다.

디타는 자폭 테러를 저지르기 전 가족을 데리고 시리아를 다녀온 것으로 드러났다. 시리아에서 무장단체 IS(이슬람국가) 대원들과 접촉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이후 귀국해 수라바야에서 평소처럼 지냈지만, IS의 지령이 떨어지자 테러를 일으켰다.

조선일보

그래픽=박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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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정부는 지난해 말 IS 소탕을 선언했고, 시리아 정부군도 이달 21일 IS로부터 수도권을 완전히 탈환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주요 점령지와 근거지를 잃고 소멸 단계인 줄 알았던 IS가 오히려 동남아시아 등 다른 지역으로 세력을 키워가고 있다. 예전처럼 시리아 락까나 이라크 모술 등의 점령지는 갖고 있지 않지만, 극단주의 '숙주(宿主)'가 돼 여전히 세계 각지로 '테러 수출'을 하고 있다. 로버트 맬리 국제위기그룹 대표는 "IS는 죽지 않고 여전히 살아 있다"며 "이들은 '히드라' 같은 존재"라고 했다. 히드라는 머리가 여러 개 달린 그리스 신화 속 뱀으로, 머리 하나가 잘려도 금방 다시 다른 하나가 생긴다.

IS의 끈질긴 생명력은 강력한 자금력에서 나온다. 아랍권 일간 안나하르는 "IS가 시리아·이라크 영토 3분의 1에 달했던 점령지를 98%가량 잃었지만 아직 '검은돈'을 가지고 살아 있다"고 보도했다.

IS의 재테크는 부동산 투자에서 유망 기업 인수까지 폭넓게 걸쳐 있다. 웬만한 투자회사 뺨친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 보고서에 따르면, IS는 미취업 청년들을 대리인으로 세워 중고차 거래업체나 호텔 등을 사들이고 있다. 전기·유리 시공사 등 소규모 업체는 아예 인수해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IS는 전후 복구 사업을 벌이고 있는 이라크 건설 업체에도 집중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채텀하우스 레너드 만수르 연구원은 "이라크 젊은이들이 IS의 사업 협조자가 된 건 IS 극단주의 사상에 동조해서라기보다는 경제적 이유 때문"이라고 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작년 이라크 청년 실업률은 33%에 달했다.

지난 3월 말 스페인에선 IS가 리비아 북부 아폴리니아 등 그리스 유적지에서 도굴한 조각품·석관(石棺) 등을 밀매하던 스페인 고미술상 2명이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테러 자금을 추적하는 각국 정보기관을 피하기 위해 비트코인 등 가상 화폐도 적극 활용한다.

IS의 재테크를 막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중동 국가 상당수에 부패가 만연해 있고, 각국 고위 관료와 정치인들은 테러 자금이 뒤섞여 있는 암시장과 직·간접적으로 연계돼 있기 때문이다. IS의 전체 재산은 수백억달러로 웬만한 아프리카 국가를 뛰어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IS가 2015년 한 해 벌어들인 총수익은 60억달러(약 6조4000억원)로 추산된다. 당시 현대자동차 한 해 영업이익과 맞먹는 규모다.

IS가 '테러 대기업'이 되기 시작한 건 2014년 초다. 이들은 당시 이라크 제2도시 모술을 공격해 은행과 상점을 약탈하며 거액의 현금과 금괴를 챙겼다. 시리아 동부 유전 지대를 집요하게 공격해 점령하고 그곳 석유를 암시장에 내다 팔았다. 세금 명목으로 주민 재산을 강탈하고, 인신매매도 서슴지 않았다. 이집트 일간 알 아흐람은 "IS가 중동·아프리카뿐 아니라 동남아시아 이슬람권 국가의 반정부 세력에 돈을 보내주며 이들을 키워 주고 있다"면서 "테러 자금이 완전히 차단되지 않으면 IS가 없어진다 해도 제2, 제3의 IS가 생겨날 것"이라고 했다.



[노석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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