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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Why] 나, 똥박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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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사 기자의 체크메이트]

대변으로 사람을 살린다, 국내 첫 대변은행 만든 김석진 좋은균연구소 소장

"아토피·천식·관절염… 몸속 腸 환경이 건강 좌우"

조선일보

치과 의사이자 교수였던 김석진 좋은균연구소 소장은 아토피를 앓는 아들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바뀌었다. 항생제 사용과 아토피가 연관돼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대변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국내 최초로 대변 은행을 만든 그는 ‘똥 박사’로 불린다. 건강한 사람들의 대변을 받아 저장한 후 좋은 균을 추출해 대장염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에게 이식한다. 사진은 김 소장이 균을 추출할 때 쓰는 배지(培地)를 든 모습. /장련성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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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남북 정상회담에서 우리 땅을 밟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가져온 것은 평양냉면만이 아니었다. 그는 판문점 평화의 집을 방문할 때 전용 화장실을 챙겨 왔다. 자신의 변을 노출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다. 이를 아는 우리 정부도 김 위원장이 평화의 집 화장실을 이용할 것을 대비해 대변을 되가져갈 수 있도록 시설을 정비했다.

대변이 귀한 대접을 받는 것은 국가원수에 국한된 일은 아니다. 타인에게 말하기는 민망한 배설물이지만, 대변(大便)은 건강을 대변(代辯)한다. 요즘에는 건강한 대변을 다른 사람 몸에 이식해 질환을 치료하고 이를 통해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일도 벌어진다. 이를 위해 건강한 사람의 대변을 보관하는 '대변 은행'도 생겼다. 건강한 대변 100g의 가치는 1000만원 이상이라는 전문가 의견도 있다.

김석진(51) 좋은균연구소 소장은 지난 10년간 우리나라 대변 연구의 산파 역할을 했다. 지난해 6월 국내 최초로 대변 은행을 설립한 것도 그였다. 주변 사람들은 그를 편하게 '똥 박사'라고 부른다. 김 소장 사무실 한편의 냉동 보관함에는 신생아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의 대변에서 추출한 세균들이 병에 담겨 있다. "변에 있는 세균(미생물) 수가 100조 마리 정도 됩니다. 우주의 은하수를 구성하는 별보다 많은 숫자예요. 이 세균의 집합과 구성이 인간이라는 우주를 구성하는 것입니다."

대변 이식, 환자 살리는 마지막 보루

―김 위원장이 전용 화장실을 가져왔습니다.

"유별난 행동은 아닙니다. 국가의 정상들은 대체로 그런 모습을 보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0년 방북했을 때도 비슷한 관례를 따랐어요. 국외로 눈을 돌리면 1949년 마오쩌둥이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때 스탈린이 비밀 화장실을 설치해 마오쩌둥의 대변을 확보했던 일도 있었습니다. 소련은 아예 외국 정상의 대변을 수집해 분석하는 특별 부서를 둘 정도였어요. 대변에 그만큼 많은 정보가 담겨 있다는 얘기이죠."

―대변이 건강의 척도라는 근거는.

"현대인이 겪는 질환 대부분은 염증으로부터 생깁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가장 많이 겪는 대장암도 반복적으로 생기는 용종과 같은 염증이 근간입니다. 염증은 장속 세균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요. 우리가 겪는 질병의 뿌리가 이 세균들인 셈이지요. 염증으로 고생하는 장 환자들에게 대변 이식 치료를 하면 효과를 보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남의 대변을 몸에 넣는 것을 꺼리지 않나요.

"하기 전엔 거부감을 보이는 환자들도 있습니다. 이럴 땐 의료진의 설득이 필요하지요. 환자의 증상에 따라 유산균 몇 개를 통해 고칠 수 있는 병도 있지만, 완전히 장이 망가졌을 경우 '핵폭탄'을 투여하는 치료도 필요합니다. 대변 이식은 증상이 중할 경우 최후의 보루로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환자에게 넣습니까.

"위막성 대장염을 앓는 환자들이 주 대상입니다. 대부분 장기간 항생제 치료를 받아 유익한 균이 사라지고 독성을 일으키는 나쁜 균을 가진 환자들이지요. 2016년 보건복지부가 대변 이식을 신의료기술로 인정하면서 약물로 조절되지 않는 특정 독성균에만 사용하도록 범위를 정했기 때문에 현재는 치료 범위가 넓지 않습니다. 앞으로 성과가 쌓이면 적용할 수 있는 경우는 크게 늘어날 겁니다."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나요.

"초기엔 믹서기에 대변을 갈아서 넣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의료용 믹서기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서 환자 가족이 믹서기를 직접 준비해야 했어요. 최근엔 대변에 있는 균을 추출한 뒤 대장 내시경을 통해 환자의 장에 분사하는 방법을 주로 사용합니다. 대변이 나온 지 4시간 안에 신선한 상태로 이식하는 것이 좋지만, 그러지 못할 경우 냉동 보관한 것을 씁니다."

―성공한 사례가 많나요.

"아직 건강보험 적용이 안 되고 기술도 필요해 몇몇 대학 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님들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예전엔 대변 이식을 하려면 직접 건강한 변을 찾아야 했지만, 지금은 저희 은행을 통해 공급받을 수 있어요. 사용할 경우 성공률은 90% 이상입니다.

최근엔 위막성 대장염으로 구토와 탈수, 복통 증상을 겪는 52세 남성이 대변 이식을 한 후 증상이 완치된 사례가 있습니다. 심할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는 병이어서 매일 주사와 약으로 생활했던 환자예요. 세브란스병원에서는 수년간 궤양과 출혈을 호소하며 수시로 화장실을 찾아야 했던 환자를 치료했습니다. 이식을 받은 환자들 만족도가 높아요.”

―그런데 왜 마지막 보루로 사용하나요.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르는 불확실성 탓입니다. 주는 사람의 대변에 좋지 않은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은 아직 완벽히 해결되지 않았어요. 물론 대변 이식을 위해 철저한 검증 과정을 거칩니다. 혈액검사와 대변 자체에 해로운 균이 있는지 등을 다각도로 검사하지요. 그러나 아직 현대 의학이 모르는 부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조선일보

건강한 사람이 대변을 기증하면 곧바로 영하 30도에서 얼린다. 변질 위험을 줄이기 위해 영하 70도 초저온에서 다시 한 번 냉동시킨다. 신선도를 감안하면 저장한 날로부터 2년 안에 사용하는 것이 좋다. /김석진 좋은균연구소 제공


―모르는 부분이 많은가요.

“현재 300가지 이상의 세균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을 안다고 생각이 되지만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앞으로 연구가 더 진행돼야 합니다. 대변 이식에 대한 데이터가 차츰 쌓이면서 의학계에서 사용 빈도가 높아지고 있어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치료를 받았나요.

“각 병원에서 시행되고 있기 때문에 정확한 통계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보건복지부 공인 후 우리 대변 은행을 통해 이식을 받은 이는 30여 명가량입니다. 모두 좋은 결과를 얻었고요.”

―좋은 대변을 가진 사람의 조건은 무엇입니까.

“건강한 장 생태계는 이로운 균이 85%, 해로운 균이 15% 정도 되는 상태를 뜻합니다. 장내 세균 구성이 좋더라도 흡연이나 음주를 해선 안 되고 병력이 있어서도 안 됩니다. 비만, 당뇨 같은 대사성 질환도 안 되고 변비가 있어도 불가능해요. 이런 사람은 100명 중 서너 명밖에 안 됩니다. 찾는 과정이 힘들고 비용도 많이 들지요.”

―좋은 변에도 노력이 필요하네요.

“전적으로 생활 습관에 달린 일이지요. 좋은 균은 야채나 섬유질이 많은 과일을 좋아하고 나쁜 균은 육식을 좋아해요. 좋은 균이 들어간 음식을 먹어야 몸속에 그 균이 쌓이고 좋은 변을 갖게 됩니다. 항생제나 방부제는 의식적으로라도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똥 박사가 된 치과 의사

김 소장은 서울대 치대를 졸업한 치과 의사 출신이다. 처음부터 대변과 균에 대한 연구나 사업을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남들처럼 개원해 평범한 삶을 꿈꾸기도 했다. 10년간 구강 세균 감염과 관련해 미국 인디애나대학에서 교수 일을 할 때도 만족할 만한 삶이었다. 인종차별이 적지 않은 인디애나에서 치주과협회장을 맡을 정도로 인정받았고, 그를 초청한 국내 대학의 러브콜도 많았다. 그러나 둘째 아들이 태어나고 모든 것이 바뀌었다. 태어난 직후 중이염을 선고받고 병치레를 한 아이는 원인도 모른 채 아토피 등 각종 질환에 시달렸다.

―아이가 아픈 후 무력감을 느꼈나요.

“1999년 둘째 아이가 태어난 지 2주 만에 중이염 진단을 받았습니다. 태어난 후 계속 항생제를 달고 살았어요. 저도 의사지만 항생제를 처방하는 데 큰 거부감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첫째와 달리 둘째는 크면서 아토피와 같은 알레르기성 질환에 시달렸지요. 이유는 모르고 증상은 심해져 가니 너무 답답했죠. 그러다 2000년 초반부터 항생제 사용과 아토피성 체질이 연관돼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나쁜 균을 죽이기 위해 항생제를 처방하지만, 실제론 좋은 균을 죽이는 탓에 면역 체계가 무너지고 각종 질환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된다는 것입니다. 손이 덜덜 떨릴 정도로 충격을 받았습니다. 의사로서 부끄럽더라고요. 제가 하는 일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죠.”

―무엇이 변했나요.

“제가 그때까지 생각하던 치의학은 손상된 것을 갉아내고 때우거나 수복(修復)하는 기계적 개념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충치나 풍치, 치주염 등이 감염성 질환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구강 분야에 한정해 깊은 사고는 부족했던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항생제가 단순히 나쁜 균을 죽여 증상을 완화한다는 것만 받아들인 겁니다. 이런 위험을 깨달으니 증상이 아닌 원인을 치료하자는 길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원인 치료가 대변을 이용한 치료인가요.

“똑같은 감기약을 먹어도 어떤 사람은 금방 효과를 보고 누군가는 호전이 없습니다. 매일 같은 식사를 해도 살이 찌는 정도가 다르고요. 예전엔 이를 유전으로만 풀려니 설명이 잘 안 됐어요. 체질 문제라고 하는데 다들 의구심이 있었죠. 그런데 이를 세균으로 풀면 자명한 답이 나옵니다. 우리 몸속에 사는 100조개 세균이 우리의 체질을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떤 균형을 유지하고 좋은 균이 나쁜 균을 얼마나 잠식하는지에 따라 몸의 성질이 좌우된다는 거죠. 대변은 이런 세균의 보고이니 의사로서 너무 좋은 활용체입니다.”

노화 막는 대변, 연구 확충해야

그는 2009년 미국에서의 교수 생활을 접고 국내로 들어왔다. 균과 면역에 대한 책을 내고 방송에도 출연했다. 반응도 컸다. 장 속 세균이 우리 건강을 책임지고 면역을 돕는다는 개념이 차차 알려졌다. 지나치게 위생에 신경을 쓰는 것이 도리어 해가 되고 항생제 복용이 몸을 해친다는 것이 알려진 것도 이쯤부터다.

―계속해 성공 가도를 달렸군요.

“도리어 반대였습니다. 그즈음 유산균을 배합한 제품을 시장에 내놨는데 업계에서 반발이 컸어요. 경쟁 업체라고 여겨지자 이곳저곳 민원을 넣고 저희 제품을 깎아내리는 일이 많았습니다. 치과 의사 출신인 점을 꼬집어 폄훼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지요.”

그럴 때마다 그는 기본으로 돌아가 ‘황금똥’을 모았다고 했다. 현수막을 붙이고 대학교에 안내문을 올려 홍보도 했다. 회사 직원들을 상대로 기증을 받기도 했다. 어떻게 하면 건강한 대변을 모을지만 생각했다.

“모인 대변이 부족하면 쌓이는 자료가 부족하고, 연구도 그만큼 늦어지게 됩니다. 우리나라에선 대변 이식이 초기 수준이지만, 미국이나 유럽에선 더 활발히 사용되고 있어요. 2013년 대변 은행 ‘오픈 바이옴’을 처음 만든 미국은 우리보다 시장 규모도 크고 관심도 많죠. 건강한 변을 거래할 정도니까요. 한번 기술이나 연구가 뒤처지면 따라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른 나라와의 기술 격차가 큰가요.

“대변을 통해 인간 수명을 늘리는 연구까지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독일 연구팀이 나이 든 물고기의 장에 어린 물고기의 대변을 이식했더니 수명이 늘고 노화가 지연되는 결과가 나타나기도 했어요. 세균도 생명입니다. 내 몸에 있는 세균들이 나쁜 것을 먹어주고 분해해주면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장 환경과 항노화가 관련돼 있다는 것은 굉장히 의미가 크다고 봅니다. 여러 부가가치 창출로 이어질 수 있는 분야이죠.”

―우리 기술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요.

“2013년 좋은균연구소를 만든 후 수천 명의 한국인 데이터를 모았습니다. 환자가 무엇을 먹고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에 대한 연구를 계속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쌓은 한국인에 대한 자료의 의미도 굉장히 크지요. 현재 대변 이식술 발전을 위해 서울 성모병원과 MOU를 맺고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세브란스병원과는 국책 사업으로 염증성 장 질환을 치료하는 임상을 하고 있고 크론병이나 궤양성 대장염에 대한 접근도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는 여전히 매주 대변 은행에 있는 변과 균을 챙긴다. 대변 은행으로 온 대변은 곧바로 영하 30도에서 얼리고, 이후 영하 70도 초저온에서 냉동시켜 변질 위험을 줄인다. 매주 이곳에 저장된 균의 신선도를 검사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대변에 있는 균은 인간과 함께 진화해 왔습니다. 저는 이들을 친구라고 생각해요. 건강한 삶은 이 친구들 없이 생각할 수 없습니다. 한국인의 몸에서 이들이 이로운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게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건강을 대변하는 ‘똥 박사’가 황금빛 미소를 지었다.

[김아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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