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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자카르타에 한국식 매운맛 전파한 '고추 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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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준 셰프, 한식당 문전성시… 현지 식재료 활용 유튜브도 인기

뺑소니 사고로 오른팔 불편해도 대기업 박차고 낯선 나라서 도전

매주 빈민가서 한식 요리 봉사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중심가 세노파티. 대표적 부촌으로, 유행에 민감한 이들이 즐겨 찾는 고급 레스토랑이 밀집해 있다. 이곳에 'Cabe boy(고추 소년)'라 불리는 한국인 셰프 전병준(29)씨가 있다. 그가 총괄 셰프를 맡은 한식 레스토랑 '88 Korean Kitchen'은 '매운맛' 보러온 현지인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전씨는 구독자 20만명을 보유한 유튜브 요리 채널 '준셰프(JUNCHEF)'에 출연 중인 스타이기도 하다. 현지 식재료를 활용해 '인도네시아식 한식 만들기' 강의를 한다. 매운맛 식재료로 감칠맛을 잘 내 '고추 보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자카르타에 한국적인 맛을 뿌리내리고 싶다"는 그를 최근 이메일로 만났다.

조선일보

지난 14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비누스대학교에서 한식 특강을 연 전병준(가운데 검은 옷) 셰프. 이날 갈비찜을 만든 그는 “현지 제자들과 함께 푸드트럭을 타고 한식 만들어주는 봉사활동을 다니고 싶다”고 했다. /전병준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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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은 무미(無味)했다. 요리 전문 고교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부모 반대로 인문계에 들어갔다. "'요리도 좋은 대학 가서 배우라'는 담임 선생님 말을 들을 때마다 고춧가루가 눈에 들어간 것처럼 괴로웠다"고 했다.

고2 땐 한 달간 학교에 가지 않았다. 출석 일수가 부족해 곧 유급된다는 연락을 받고 학교로 돌아가서도 잠만 잤다. "고3 올라가고 부모님 설득해 직업반에 들어갔죠. 요리 칼을 쥐니 숨통이 트였어요."

23세 때, 아르바이트 출근길에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했다. 트럭이 그의 자전거를 덮쳤고, 오른팔이 으스러져 오른손 신경이 끊어졌다. 일부 신경은 끝내 회복되지 않았다.

무너져내리던 그를 일으킨 건 요리사의 길을 반대했던 어머니였다. "멀쩡한 손 하나 더 놔두고 왜 포기하려고 하느냐"며 달랬다. 그는 이 악물고 재활해 일상생활에 불편함 없을 만큼 회복했지만, 지금도 정교한 플레이팅을 해야 할 땐 왼손을 쓴다.

대학 호텔조리학과를 졸업한 뒤 대기업 레스토랑 조리팀에서 파견직으로 꿈을 펼치기 시작했다. 정규직 전환 제안을 뿌리치고 총괄 셰프 제안을 받은 인도네시아로 건너갔다. "발리섬이 인도네시아에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고 할 정도로 그 나라를 잘 몰랐다.

닥치는 대로 현지식을 먹었다. "한 달 정도 살다 보니 이곳 사람들도 스트레스 받을 때 매운맛 찾는다는 걸 알게 됐죠. 한국인처럼요." 한국식 매운맛을 보여주려고 내놓은 요리가 '불닭'이다.

'매운맛'을 본 현지 손님들은 "한국 음식 만드는 법을 직접 배우고 싶다"고 했다. 전씨는 유튜브에 요리 채널을 열었다. 된장·고추장·간장 등 현지에서 구하기 어려운 장은 비슷한 풍미를 내는 현지 식재료로 대체했다. 불고기는 간장 대신 짭조름한 '케찹아신'으로, 떡볶이는 점성 없는 현지 쌀로는 떡을 만들 수 없어 대신 쫄깃한 '그루푹'으로 만들었다.

유튜브 채널은 큰 인기를 끌었다. 인도네시아의 한 방송국은 그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프로그램을 제안했다. 푸드트럭 타고 옮겨다니며 그 지역 음식과 한식을 섞어 퓨전으로 내놓는 '준셰프 푸드트럭'이다. "전통 빵 '수라비'에 불닭 올려 샌드위치 만들고, 장조림과 비슷한 '그둑'을 비빔밥 고명으로 얹었어요. 정통 한식은 아니지만 부담 없이 즐기는 현지인들 보니 뿌듯했죠."

전씨는 봉사단체 'Jalan bersama(동행)'를 만들고 주말마다 빈민가 아이들을 찾아가 한식을 만들어준다. "엄마가 정성껏 차려준 집밥에서 전해지는 밥그릇의 온기, 굶주린 아이들이 따뜻한 밥 한 끼 대접받으며 확인하는 인간의 온기가 요리의 본질입니다. 한식을 통해 그 따뜻함을 전달하는 게 꿈이에요."

[박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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