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대미외교를 담당하는 최선희 외무성 부상은 24일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을 비판하며 북·미 정상회담 재고려 가능성을 거론했다. 그는 펜스 부통령의 북한이 비핵화에 합의하지 않으면 리비아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전날 폭스뉴스 인터뷰를 문제삼았다. 그러면서 “미국이 계속 불법무도하게 나오면 조·미(북·미) 수뇌회담 재고려 문제를 최고지도부에 제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우리는 대화를 구걸하지 않으며 미국이 우리와 마주앉지 않겠다면 붙잡지도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회담 성사 여부는 “전적으로 미국의 결심과 처신에 달려 있다”고도 했다.
최 부상의 담화에는 트럼프 대통령 주변에서 나오는 강경론을 제어하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리비아식 핵포기를 고집하면 정상회담 성사가 어려울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앞서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도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의 리비아 모델 강요를 비난하며 회담 재고려를 위협한 바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도 23일(현지시간) 하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양보 제로(0)’를 강조했다. 그는 “지금까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양보한 게 전혀 없으며 그렇게 할 의사가 없다”고 말했다. 정상회담 개최 여부는 “궁극적으로 김 위원장에 달려있다”며 북한의 양보를 압박했다. 또 “올바른 거래가 테이블에 올려지지 않는다면 정중하게 (협상장을) 떠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폼페이오 장관의 발언에는 회담 성사를 위해 북한에 지나친 양보를 할 수 있다는 의회와 여론의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고려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폼페이오 장관은 동시에 협상의 여지도 남겼다. 그는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향한 믿을 만한 조치가 취해지는 걸 보기 전까지 우리의 자세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CVID 목표를 재확인했지만, 비핵화 이후에야 보상할 수 있다던 기존 입장에서 한 발 물러선 것이다.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믿을 수 있는 수준의 과감한 초기 조치를 취한하면 미국도 보상에 착수할 수 있다는 뉘앙스다. 전날 트럼프 대통령이 “물리적 이유 때문에 일괄 타결이 불가능할 수 있다”며 단계적 비핵화의 여지를 남긴 것과 같은 맥락이다.
북한의 정상회담 재고려에 연기 가능성을 제기하며 맞대응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싱가포르(회담)에 관해 다음 주 알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북·미 간 접촉 결과를 보고 회담 개최 여부를 최종 결정하겠다는 의미다.
조지프 헤이긴 백악관 부비서실장 등 대표단이 이번 주말 싱가포르에서 북한 관리들과 만나 정상회담 장소, 형식 등은 물론 의제에 대해 입장을 조율할 것으로 알려졌다. CNN은 트럼프 정부가 이 접촉과는 별도로 추가 고위급 대화도 희망한다고 전했다. 폼페이오 장관도 전날 제3국에서 북측과 만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폼페이오 장관이 협상에 나선다면 북한에선 카운터파트인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 두 차례 사전 접촉에서 접점이 찾아진다면 정상회담 준비는 한층 속도를 낼 전망이다. 반면 입장차만 확인한다면 정상회담은 연기될 수도 있다. 북·미 간의 입장차가 세기의 담판으로 가는 길 위에 놓인 과속 방지턱인지 아니면 넘을 수 없는 장벽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워싱턴|박영환 특파원 yh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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