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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난임 휴가 사흘 주고 손 놓은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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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출산율 높이기에만 급급, 정작 심리상담 지원엔 소홀…

“난임 휴직제 도입 검토할 때”


한겨레21

서울 중구에 있는 병원 난임센터 개원식에서 관계자들이 센터 내 난자은행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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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임부부 지원사업’을 저출산 대책으로 내세운 정부는 관련 예산을 꾸준히 늘려왔다. 하지만 인구 재생산에만 초점을 맞춘 정부의 정책은 난임 시술을 받는 여성의 고통에는 최근까지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한국은 2001년 합계 출산율 1.29명으로 초저출산 사회에 진입했고, 2005년에는 1.08명을 기록했다. 저출산 사회의 우려가 커지자 참여정부는 2003년 4월 저출산 종합대책 수립을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설정하고, 2004년 2월에 ‘고령화 및 미래사회위원회’를 구성했다.

정부는 저출산 대책 마련에 시급성을 강조하면서 난임 시술비를 지원하는 예산을 마련해 1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2006∼2010)’을 수립했다. 처음에는 도시근로자 가구 월평균 소득 80% 이하에 해당하는 가구에 체외수정 시술을 2회(1회당 150만원, 기초수급자 1회당 255만원)까지 지원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하지만 지원 기간 동안 체외수정 지원 1만6426명이라는 정부 목표의 반에도 못 미치는 45.6%만이 지원하자, 소득 기준을 130% 이하로 대폭 완화했다. 그 결과 목표를 초과하는 1만9137명을 모집할 수 있었다.

저출산 해결에만 초점 맞춘 정책

이후 정부의 난임부부 지원사업은 꾸준히 규모가 커졌다. 적용 대상은 확대됐고 지원 횟수도 늘어났다. 2010년에는 인공수정 지원을 시작했고, 2018년 현재 체외수정 7회(신선배아 4회·동결배아 3회), 인공수정 3회까지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다. 2017년 10월부터는 난임부부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난임 시술과 관련 제반 비용에 건강보험을 적용하고 있다. 정부는 사업을 시작한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난임부부 지원사업에 총 8218억원을 투입했다.

문제는 난임부부 지원사업이 저출산 문제 해결에만 초점이 맞춰져 여성이 겪는 의학적 부작용과 스트레스, 우울 등 정신적 고통은 주목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난임 시술의 첫 번째 부작용은 ‘난소 과자극 증후군’이다. 과배란을 유도하기 위해 사용하는 호르몬 약물 사용에 따른 부작용이다. 난소 과자극 증후군의 증상으로 구토, 식욕부진, 부기 등이 있다. 드물지만 난소 과자극 증후군 환자의 2%는 중증질환으로 발전해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고 보고된다.

두 번째 부작용은 ‘다태임신’(둘 이상의 태아 임신)이다. 자연 임신은 다태임신 확률이 1%인데 난임 시술의 경우 다태임신 확률이 20∼30%에 이른다. 보건복지부가 2013년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12년에 실시된 체외수정에서는 27.1%, 인공수정에서는 16.4%가 다태아를 출산했다. 다태임신 산모들은 당뇨와 임신중독증 등의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유산 부담 높아 심리상담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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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부작용은 유산이다. 자연 임신의 유산율은 10∼15%인데, 체외수정의 유산율은 15∼30%로 최대 2배까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40세가 넘는 여성은 난임 시술 실패율과 유산율이 더욱 높은 것으로 보고된다. 현행 난임부부 지원사업은 만 44세까지 지원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2011년 체외수정 시술 보고자료를 보면 시술을 받은 전체 여성의 임신 실패 확률은 69.8%인데 반해 40∼44세 여성의 임신 실패율은 84.5%로 15%포인트 가까이 높았다. 임신 후 유산 확률은 평균 17.1%인데 40∼44세는 33.9%였다. 나이가 많을수록 난임 시술에 건강 부담이 크다는 사실이 시술 결과로 입증된 것이다.

난임 시술을 받는 여성들은 정신적 고통도 호소했다. 보건사회연구원이 2014년 체외수정 시술을 받은 여성 1063명에게 조사한 내용을 보면 ‘시술 비용의 부담이 심각하다’고 대답한 비율이 81.9%(매우 심각 63.9%, 약간 심각 18%)에 이르렀다. ‘고립감과 우울’을 호소한 여성도 59.6%(매우 심각 36.5%, 약간 심각 23.1%)였고, 13.7%(매우 심각 7.1%, 약간 심각 6.6%)는 ‘자살을 생각했다’고 응답했다.

이들은 난임 시술로 임신에 성공하더라도 유산의 불안과 건강한 자녀를 출산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스트레스를 계속 받을 수 있어 전문적인 심리상담 지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저출산율을 끌어올리겠다는 정부의 목표 뒤에 이들의 고통은 가려졌다.

정부는 최근에서야 난임 여성의 정신건강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2015년 7월부터 임상심리상담사(6명), 산부인과·비뇨기과 전문의(8명)가 온·오프라인 상담 서비스를 하기 시작했고, 올해부터는 난임전문상담센터를 권역별로 설치해 난임부부에게 전문적인 서비스를 시작했다.

하지만 난임부부에 대한 지원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

난임 시술을 제대로 받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한데 이번 달부터 시행되는 ‘남녀 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따르면 연간 최대 3일의 난임 휴가만 보장된다. 보건복지부 조사자료를 보면 체외수정의 경우 배란 촉진, 생식세포 채취, 배아 이식, 임신 확인의 절차를 거치는데, 의료기관을 방문한 횟수는 평균 9회였고, 21∼40일의 기간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한 번의 시술로 임신에 성공할 확률이 크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는 이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4중고 시달리는 난임 여성들

보건사회연구원 황나미 명예연구위원은 “여성들의 사회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난임 여성들은 신체적인 고통, 가족 관계에서 느끼는 고통, 경력 단절의 두려움, 난임에 대한 스트레스 등 4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의 연구 결과를 보면 제대로 난임 시술을 받으려면 의료기관을 10번 넘게 가야 하는 경우도 많다. 첫 시술에서 임신이 안 되면 몇 개월 뒤 다시 시도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난임 휴직 제도 도입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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