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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도끼다시'는 가라… '테라조'로 돌아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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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스럽던 마감재 색상·무늬 바꿔 화려한 건축 자재로 부활

시멘트 찌꺼기 등 환경 문제 해결… 옷·비누·가방 등 무늬 활용 제품도

학교나 관청 복도에 깔려있던 '도끼다시'가 세련된 건축재로 되살아나고 있다. 촌스러움의 상징이었던 자갈 무늬의 색상과 디테일을 살짝 바꿨더니 세련된 마감재가 됐다. 그 이름은 더 이상 '도기다시(とぎだし·돌 따위를 갈아서 무늬를 낸 것)'라는 일본어의 센 발음이 아니다. '테라조(terazzo)'다.

테라조는 원래 옅은 회색 바탕에 진한 회색이나 검은색의 작고 불규칙한 알이 점점이 박힌 모양이다. 내구성이 좋아 상가와 학교 등 건물 바닥에 많이 쓰였다. 테라조가 사라진 이유는 낡은 스타일에도 있지만 환경오염 문제도 있었다. 대리석을 잘게 부숴 조각낸 뒤 시멘트나 콘크리트와 섞어 만든 테라조에서는 시멘트 찌꺼기 같은 폐기물이 많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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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상가나 학교 바닥에 깔려있던 이것(왼쪽)을 사람들은 예전엔 ‘도끼다시’라고 불렀다. 이제는 ‘테라조’라고 부른다. 영국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설계한 발렌티노의 미국 뉴욕 플래그십 스토어(오른쪽) 등에 테라조가 다시 쓰이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김상윤 기자·발렌티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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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인테리어 디자인계에서는 테라조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바닥뿐 아니라 벽, 칸막이, 테이블 등을 뒤덮는다. 예전엔 공사 도중 대리석을 직접 바닥에 놓고 갈았지만, 공장에서 테라조 판을 만드는 방식으로 바뀌어 폭넓게 쓸 수 있게 됐다. 색깔도 회색 계열에서 벗어나 화려해졌다. 바탕과 알갱이에 색을 입혀 알록달록하다. 건물 외벽을 테라조로 마감하기도 하고 테라조 무늬 소품도 나온다.

테라조의 부활은 영국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설계한 뉴욕 발렌티노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본격 시작됐다. 2014년 지은 이 매장은 바닥, 벽면, 계단을 입자 굵은 회색 테라조로 가득 채워 주목받았다. 진열된 액세서리들과 잘 어울리는 인테리어라는 설명이다. 이어 로마와 도쿄 등지 발렌티노 매장에서도 테라조가 쓰이며 브랜드의 상징처럼 자리 잡았다.

테라조는 단색 대리석보다 단조롭지 않다는 장점이 있다. 지난해 문을 연 서울 한남동 바 '에타'는 2층 규모 매장의 벽과 바닥, 테이블과 의자를 모두 밝은 테라조로 꾸몄다. 에타 측은 "매장 전체에 통일된 느낌을 주면서 우아한 분위기를 연출하려 했다"고 했다. 충북 청주 옷가게 '파티수'는 테라조를 건물 외벽에 활용했다. 더지음건축에서 리노베이션한 이 건물은 베이지색 바탕에 여러 색상이 들어간 테라조 패턴을 적용해 건물이 단조로워지는 것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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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조 무늬로 만든 비누. /한아조


화려한 색상을 쓰거나 입자 크기를 키울 수도 있다. 테라조로 만든 소품들이 그렇다. 디자인에이쓰리가 지난 2월 선보인 원형 스툴은 검은색·흰색·푸른색 바탕에 알록달록한 무늬를 넣은 테라조 제품이다. 유영훈·한광현 디자이너는 "건축 자재였다는 것에서 모티브를 얻어 아치 형태 등을 넣었다"며 "독특한 컬러와 패턴이 돋보이게끔 했다"고 했다. 덴마크 리빙 브랜드 노만 코펜하겐의 '테라 테이블'은 철제 다리 위 테이블 상판이 테라조 재질이다.

테라조 무늬를 흉내 낸 소품들도 있다. 요즘 인기 있는 테라조 비누는 돌 대신 비누로 테라조 무늬를 만든 것이다. 대리석 조각 대신 향이나 성분이 다른 비누 조각, 시멘트 대신 흰색이나 검은색 비누를 쓴다. 테라조 무늬를 프린트한 옷이나 가방, 휴대전화 케이스도 나왔다.

테라조의 또 다른 장점은 개성이다. 바탕과 무늬에 따라 가능한 조합의 수는 사실상 무한대다. 비슷한 색상이더라도 무늬가 다양하다. 똑같은 테라조 소품이나 타일을 여러 개 사도 무늬가 각각 다르다. 차가운 돌이지만 목재 못지않게 따뜻하고 자연을 닮은 자재인 셈이다.




[김상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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