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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임영택의 고전 시평]'5·18광주민중항쟁' 진상 규명, 역사의 정의를 물려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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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거울이다. 과거 해방 정국에서 부일협력자와 민족반역자를 처벌하지 못한 역사를 거울삼아 9월에 출범하는 5·18광주민중항쟁 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서는 철저한 진상 규명으로 후손들에게 역사의 정의를 물려주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사진은 지난 18일 제38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을 찾은 유가족의 애끓는 애도 모습./광주=문병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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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팩트|임영택 고전시사평론가] 신록의 계절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 일컫지만 1980년 광주의 5월은 아름다운 5월이 아닌 잔인한 5월이었다.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정치군인들이 쿠데타를 일으킨 뒤 1980년 5월 17일 계엄을 전국적으로 확대하며 집권 야욕을 드러내면서 '5월의 비극'이 시작됐다. 광주에서는 5월 18일 학생들 주도로 계엄철폐와 전두환 퇴진 요구 시위를 이어갔다. 공수부대의 무자비한 탄압과 살육 행위에 자위적 차원에서 시민군이 조직되어 양 측은 치열한 공방을 이어가다 5월 27일 수천 명의 군인이 탱크를 몰고 시내로 진입하여 시민군의 최후의 항거지인 도청을 접수하며 군대가 광주를 장악하게 된다.

정치군부의 쿠데타와 집권 시도에 온몸으로 저항한 1980년 5월 광주의 투쟁을 법률적으로는 5·18민주화운동으로 지칭한다. 나는 이 역사적 투쟁의 본질을 보다 더 잘 드러내자는 차원에서 '5·18광주민중항쟁'으로 명명하겠다. '5·18민주화운동'이라는 명칭만으로는 투쟁의 중심지, 주체 및 강도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5·18광주민중항쟁이 발생한 지 3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항쟁 관련 정부 공식 보고서도 없는 이상한 나라에 우리는 살고 있다. 시민단체 주도로 진상 규명이 이루어져 왔지만 아직도 정부 공식 보고서가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개탄한다.

프랑스는 과거사 청산의 모범적 사례이다. 프랑스는 제2차 세계대전 전후 과거사 청산 과정에서 12만 명 이상이 재판을 받아 약 3만 8000명이 수감되었으며 약 1500명이 정규 재판소에서 사형을 선고 받은 뒤 처형되었고 8000 ~ 9000여 명이 정식 재판 없이 처형되었다. 또한 약 2만 명의 여성 부역자가 삭발 당했으며 2만 1000명 이상의 공무원이 독일 강점기의 행위로 각종 징계를 받았다.

18세기 후반의 대혁명 기간에는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고 수많은 반혁명 세력이 처형되었다. 프랑스가 얼마나 과거사 청산에 철저했는지를 보여주는 예를 하나 들겠다. 나치 독일이 점령하고 있던 남부 프랑스를 통치한 정권 수반이었던 페탱은 89세에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배심원단이 고령을 이유로 종신형으로 감형하여 감옥에서 생을 마감했다.

페탱은 제1차 세계대전의 국민적 영웅이며 드골의 군 선배였고 89세라는 고령이었음에도 종신형을 선고받고 감옥에서 죽었다는 사실은 프랑스 과거 청산의 무차별성을 보여준다. 프랑스의 단죄와 청산의 역사는 프랑스 국민에게 살아있는 역사교과서이다. 학교의 역사 교육 뿐 아니라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생생한 역사 이야기는 후손들에게 역사의 정의와 인과응보를 배우고 체득하는 계기로 작용한다.

용서나 화해 및 화합은 가해자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적극적인 피해구제가 전제되어야 한다. '5·18광주민중항쟁'의 가해자인 전두환 일당은 단 한 번도 지금까지 사죄한 적이 없을 뿐 아니라 변명과 억지주장만 늘어놓고 있다. 그들은 용서의 대상이 아니다. 동족의 군대를 동원하여 무고한 양민을 학살한 전두환 일당을 정치적 고려나 다른 어떠한 이유로든 처벌하지 않는다면 역사의 정의를 저버리는 행위이다.

역사는 거울이다. 중국의 대표적 역사서인 자치통감(資治通鑑)에는 거울을 뜻하는 감(鑑)이 들어가 있다. 과거의 고찰은 현재와 미래의 모습을 들여다보거나 만들어가는 도구로 작용한다. 프랑스의 과거사 청산과 남한의 해방 정국에서 부일협력자와 민족반역자를 처벌하지 못한 역사를 거울삼아 9월에 출범하는 5·18광주민중항쟁 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서는 철저하게 진상을 규명하여 후손들에게 역사의 정의를 물려주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알베르 카뮈는 “숙청에 실패한 나라는 쇄신에도 실패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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