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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자연재해’라던 강릉 광산 사고, 산림청 문건엔 ‘인재’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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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반 특성 고려않은 산지훼손탓”

산림 전문가들 만장일치 의견 묵살

“지하공동으로 인한 자연붕괴” 결론



한겨레

2012년 8월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석회석 광산 사고 현장 모습. 녹색연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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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4명의 사상자가 난 강릉 옥계면 자병산 석회석 광산 붕괴 사고는 ‘인재’라고 분석했던 산림청 내부 문건이 뒤늦게 공개됐다. 당시 사고 원인을 조사했던 합동조사반과 검찰은 사실상 ‘자연재해’로 결론을 내린 뒤 책임자를 기소 유예하는 데 그쳐 논란이 예상된다.

최근 <한겨레>는 2012년 10월10일 열렸던 ‘라파즈한라시멘트 광산 붕괴 사고 현장토론회’ 결과보고서를 입수했다. 사고 2달뒤 산림청 주재로 열린 이 토론회에선 산림 전문가 10명 모두 “자연재해로 인한 산사태가 아니다. 인위적 요인에 따른 불안정한 사면을 보강하지 않아 붕괴된 인위적 피해로 판단된다”고 결론을 내렸다.

당시 토론회에 참가했던 김남춘 단국대 녹지조경학과 교수는 문건에서 “발파로 인한 경사면의 균열과 과도한 채석으로 인한 사면 불안정 때문에 붕괴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의견을 냈다. 산림기술사협회 이아무개 산림기술사도 “광산 개발로 연약 지반이 노출되고 복구가 완료되지 못한 시점에서 사면 불안정에 의해 발생한 사고로 보인다”고 했다.

보고서는 “지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산지훼손이 주된 요인”(사방협회 김석우 박사)이라고 진단하고 경찰 조사에 이 의견을 적극 반영하겠다고 했지만, 1달뒤 산업통상자원부 동부광산안전사무소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강릉경찰서 등이 함께 꾸린 합동조사단은 완전히 다른 결론을 내렸다. “채광작업이 사면 붕괴에 부분 영향을 미쳤겠지만 직접적인 붕괴의 원인으로 볼 수 없다. 지하 공동(텅 비어있는 굴)만 없었다면 무너질 가능성이 없었다”는 것이 당시 조사단의 결론이었다. 지표면이 균열되면서 지상에서 작업을 하던 차량들이 지하 동굴 속으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동부광산안전사무소 관계자는 “지질전문가 등이 포함된 합동조사에서 사고 현장에서 깊은 공동이 발견됐다. 산림 전문가들은 당시 공동의 존재를 몰랐기 때문에 인재로 보았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노천 채석장에서 일어난 산사태를 조사하면서 산림청 의견을 완전히 배제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면서 “조사단이 인재를 자연재해로 덮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사고 직후 현장 조사를 벌였던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당시 사고 현장은 산림 배수로가 제대로 복구되지 않아 위에 있는 지층이 아래로 밀고 내려온 양상을 명확히 드러내고 있었다. 자연 상태에 있던 산림이 갑자기 아래로 꺼진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고 했다. 사고 당시 해발 300m 가량의 산 전체가 무너져 최소 400만t 이상의 토사와 암반이 아래로 밀려왔던 현장은 대형 산사태 모습에 가까웠다.

지하공동 때문이라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역시 사고 현장을 조사했던 이수곤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도 “이 사고는 행정당국과 현장 업체의 총체적인 안전불감증이 불러온 전형적인 인재”라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주택·도로 등 토목 공사를 할 땐 굴착면에서 위험한 부분이 감지되는지 그때그때 조사하도록 제도화돼 있다. 하지만 채석장에선 이런 제도를 운영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621개 광산 가운데 138개가 석회석 광산이지만 지반침하를 예측·대처하는 제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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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청이 2012년 작성한 강릉 옥계 석회석 광산 붕괴 사고에 관한 현장토론회 문건. 산림청은 이 문건에서 ‘사고 원인을 종합하면 자연재해로 인한 산사태가 아니다. 인위적 요인에 따른 불안정한 사면을 보강하지 않아 붕괴된 인위적 피해로 판단된다’고 결론을 내렸다. 산림청 문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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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23일 오후 7시5분께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에 있는 석회석 광산에서 일어난 산사태로 당시 채굴 작업을 하던 노동자 4명이 매몰됐다 2명만 구조됐다. 매몰됐던 노동자 2명 가운데 1명은 이튿날 숨진 채 발견됐지만, 대형 덤프트럭을 몰던 노동자 1명은 현재까지 실종 상태다. 박수혁 기자 p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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