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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월드컵에도 TV 안팔리고, 인기없던 소형차 찾고… 내수불황 시그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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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오후 2시쯤 서울 용산구에 있는 용산아이파크몰 5층 한샘 디자인파크. 지난 2월 2800㎡(약 850평) 규모로 문을 연 용산 매장은 일반 가구부터 욕실용품, 주방 가구까지 집 안에 들어가는 모든 종류의 가구를 총망라한 대형 매장이다. 공휴일인 덕분에 150여명의 고객이 매장을 둘러보고 있었지만 절반 이상이 매장 한쪽에 마련된 생활용품 코너에 몰려 휴지통, 빨래건조대, 실내화 같은 값싼 제품만 만지고 있었다. 정작 한샘의 주력인 가구 코너는 한산했다. 수입 소파 코너에 노부부가 방문하자 한 시간 이상 혼자 있던 판매 직원이 재빨리 붙어 "560만원짜리 소파를 행사가 360만원에 준다"고 말했지만 노부부는 "더 싼 소파를 보겠다"며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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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오후 서울 용산아이파크몰 5층 한샘 디자인파크 매장의 한산한 모습. /고운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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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의 판매 현장 곳곳에서는 불황의 흔적이 묻어나고 있다. 방문 고객 수가 줄어든 것은 물론, 와서도 선뜻 구매 결정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샘매장의 한 판매 직원은 "작년엔 할인 폭이 크면 비싼 가구나 소파도 척척 나갔지만 올해는 기분파 고객이 별로 없다"며 "평일에는 빈자리만 우두커니 지키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월드컵 앞두고도 TV 판매 줄어…내수 불황 덮치나

22일 오후 4시쯤 서울 중구의 한 대형 전자제품 매장. 1150㎡(약 350평) 규모의 매장 한쪽의 TV 코너에는 30인치부터 100인치까지 TV 수십대가 진열돼 있었지만 방문객은 한 명뿐이었다. 이 매장은 올해 들어 한 달에 TV 150~200대씩 팔고 있다. 작년보다 10% 정도 줄어든 것이다. TV 매장의 직원은 "평창올림픽과 러시아월드컵 등 대형 스포츠 행사가 있는데도 오히려 판매 대수가 줄어 걱정"이라고 했다. 올해 국내 TV 시장은 올림픽과 월드컵이 열리는 짝수 해에 판매량이 급증하는 '짝수 해의 법칙'이 깨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로 올 들어 5월까지 삼성전자와 LG전자 모두 판매량이 전년보다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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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내수 시장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올 1분기에 35만9000대(수입차 제외)가 팔려 작년보다 4.3% 감소했다. 소형 자동차 판매량은 37%나 늘어난 반면 중형(16.7%)과 중대형 자동차(21.2%)는 큰 폭으로 감소했다. 전형적인 불황형 시장인 것이다. 신제품이 나올때마다 들썩였던 스마트폰 판매점들도 풀이 죽었다. 올 1분기 이동통신 번호 이동은 삼성전자의 신제품 갤럭시S9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139만8000여명으로 14년 만에 최저로 떨어졌다. 번호 이동은 가입자들이 통신업체를 갈아타는 것으로 통신 시장의 활황 여부를 보는 척도다. 종로구의 한 스마트폰 판매점 사장은 "하루에 100만원짜리 스마트폰 여러 대씩 팔던 호시절은 다시 안 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불황의 그림자는 올 1분기의 업종 1위 기업들 실적에 고스란히 드리워져 있다. 의류 기업 LF(구 LG패션)는 1분기 매출이 3404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소폭 감소했고, 학습지 1위인 대교와 TV 홈쇼핑인 CJ오쇼핑도 작년보다 매출이 줄었다. 정수기 1위인 코웨이, 침대 1위 에이스침대도 매출 성장세가 정체에 빠졌다.

불황 경고등 켜졌지만 대책은 없어

내수 기업들이 느끼는 체감 경기도 최악인 상황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내수 기업의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3월에는 69까지 떨어졌다. 이는 수출 기업(82)보다 현저하게 낮은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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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오후 서울 중구의 한 대형 전자 매장에서 방문객이 홀로 TV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다. 이 매장의 올해 1~5월 TV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 정도 빠졌다. /이기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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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감 경기 악화는 고스란히 고용과 설비투자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 3월 산업 생산은 전달보다 1.2% 줄었고, 설비투자도 전월보다 7.8%가 감소했다. 내수 기업들 사이에서는 "일부 초우량 수출 기업의 실적에 내수 기업의 고통이 모두 묻혀버리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7월 근로시간 단축과 내년 최저임금 인상 등 경영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섣불리 투자하기 힘든 상황"이라며 "불황 경고등이 켜졌지만 대책을 고민하는 정부 부처는 어디에도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성호철 기자(sunghochul@chosun.com);이기문 기자;장형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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