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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관광객 등쌀에… 북촌 주민 15%가 짐 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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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감소율, 종로구 평균의 2배… 西村 인구도 12% 줄어들어

주민들 "집에 불쑥 사람 들어오고 세탁소·미용실은 몽땅 사라져… 시장에선 길거리 음식만 팔아"

지난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북촌 한옥마을의 한 가정집 대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북촌을 구경하던 태국 관광객 모녀가 열린 문으로 들어갔다. 빌린 한복을 입은 이들은 휴대전화 카메라로 집 안 곳곳을 배경 삼아 사진을 찍었다. '찰칵' 소리에 50대로 보이는 여성이 집 안에서 나왔다.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영어로 "여긴 내 집이다. 나가 달라(This is our home. Get out!)"며 손을 내저었다.

최근 몇 년간 서울 북촌 한옥마을과 서촌 세종마을 등 도심 주거지에 관광객이 몰린다. 특히 일반 주거지인지 잘 모르는 외국인 관광객으로 인한 피해를 호소하는 주민들이 많다. 관광객 등쌀에 못살겠다며 떠나는 이들이 늘어나자, 종로구청이 한양대 이훈 교수팀에 용역을 맡겨 실태 조사를 했다. 국내에서 '투어리스티피케이션(touristification·관광객 때문에 원주민이 떠나는 것) 현상'에 대한 첫 연구 보고서가 최근 나왔다.

조선일보

지난 20일 서울시 종로구 북촌 한옥마을을 방문한 관광객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한옥 담벼락에‘북촌 주민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플래카드가 붙어 있다. 최근 급증하는 관광객으로 사생활 침해와 소음 등 고통을 호소하는 주민이 늘고 있다. /박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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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 밀집 지역의 주민 이주가 상대적으로 많은 것이 수치로 확인됐다. 연구진이 휴대전화 로밍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북촌 한옥마을(가회·삼청동)에는 한 달 평균 약 28만명의 외국인이 다녀갔다. 이 지역 주민 수는 2012년 8719명에서 지난해 7438명으로 14.7% 줄었다. 이는 같은 기간 서울 종로구 전체 주민 감소율(6.3%)의 배 이상이다. 청운효자동(세종마을)의 인구도 그 기간 12% 줄었다.

연구팀은 사생활 침해와 쓰레기 투기, 소음을 주민 이주의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삼청동 주민 정옥선(54)씨는 "사유지라는 팻말을 걸어 놔도 문이 열려 있으면 관광객들이 들어와 사진을 찍어댄다"며 "집 앞에 놓은 화분도 닭꼬치 막대기나 일회용 커피잔을 버려대는 통에 모두 치웠다"고 말했다. 가회동 주민 박모(61)씨도 "주거지역이라 주변에 공중화장실이 없다 보니 급한 중국인들은 막다른 골목에서 대소변을 본다"고 했다.

생활에 필요한 편의 시설이 사라지는 것도 주민들의 불만이다. 사직동 부동산중개업자는 "삼청동엔 미용실이나 목욕탕이 없다. 서촌에서도 이런 편의 시설이 사라지고 있다"고 했다. 관광객이 몰려오고 상권이 활성화되면서 임대료가 오르자, 세탁소·미용실 같은 생활과 밀접한 업종이 견디지 못한다. 살기 불편해져 주민들도 덩달아 떠난다. 서촌의 한 주민은 "통인시장에 생선·야채 가게는 점점 사라지고 길거리 음식만 많아졌다"고 했다.

무작정 관광객을 막을 수도 없다. 주민들 간의 이해관계가 엇갈린다. 벽화로 유명했던 이화마을은 2016년 일부 주민이 몰리는 관광객에게 불만을 갖고 벽화를 지웠다. 관광객들이 빠지자 집값과 임대료가 떨어졌다. 집주인과 세입자, 건물주와 임차인 간에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이훈 교수는 "특정 요일이나 시간대에 관광객 입장을 제한하거나 자격을 갖춘 안내자가 관광 가이드를 할 수 있게 하는 등 주민과 관광객이 공생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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