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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고령화 악몽… 日, 2040년 일자리 다섯 중 하나가 간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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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늘어나는 간병 범죄·노인 혐오

가족끼리 모진 결심하고 요양원 직원 범행도 잦아

2주에 한번꼴 살인 통계도

- 치솟는 사회보장비용(2040년)

연간 121조엔서 190조엔으로

간병비만 2.4배 늘어 26조엔… 조세부담 지금보다 1.7배 늘듯

84세 할아버지가 세 살 연하 치매 아내의 목을 조른 뒤 자신도 수면제를 삼켰다가 구급차에 실려갔다. 할아버지는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상태로 들것에 누워 "여보 미안해. 60년을 같이 살았는데…"를 반복했다.

79세 할머니가 투석 치료에 지쳐 한 살 위 남편에게 "제발 죽여 달라"고 했다. 절명 직전 할머니가 남편에게 한 말도 "미안"이었다.

첫 사건은 작년 2월 도쿄에서, 두 번째 사건은 작년 10월 나고야에서 났다. 일본 언론은 두 사건 다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일본에선 이 정도 비극이 이미 너무 흔하다. 세는 방법에 따라 간병 살인이 2주에 한 번씩 난다는 통계도 있고, 1년에 40~50건 난다는 통계도 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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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최악은 아직 멀었고 더한 상황이 닥친다는 공식 발표가 지난 21일 나왔다. 일본 경제재정자문회의가 고령화로 인해 연간 사회보장비용이 현재 121조엔에서 2040년이면 188조~190조엔으로 1.6배 치솟을 것이라는 추계치를 발표했다. 조세 부담은 1.7배, 보험료 부담은 1.5배가 될 전망이다.

이게 얼마나 큰 파도인지 한눈에 보여주는 게 간병 인력 추이다. 일본은 현재 전체 취업자의 13%(823만명)가 간병 관련 일을 한다. 2040년에는 이 비율이 19%(1065만명)로 는다고 한다. 일하는 사람 다섯에 하나가 노인 돌보는 일을 한다는 뜻이다. 내역을 들여다보면 더 암울해진다. 연금 비용은 57조엔에서 73조엔으로 1.3배, 의료 비용은 39조엔에서 67조~69조엔으로 1.7배, 간병 비용은 11조엔에서 26조엔으로 2.4배 불어날 전망이다. 셋 다 노인 관련 비용이다.

앞으로 닥칠 일을 보여주는 게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간병 비극들이다. 가족끼리 모진 결심을 하는 사례만 있는 게 아니다. 사회 전체에 잠복한 노인 혐오가 범죄로 표출되기 일쑤다.

지난 3월 25세 수도권 요양원 직원이 3년간 노인 3명을 죽인 죄로 사형 판결을 받았다. 그는 밤에 순찰하다 앙상한 노인을 번쩍 들어 베란다 밖으로 집어던지는 수법을 썼다. 죽은 노인에게 특별히 맺힌 게 있는 게 아니었다. "입소자 수를 줄이고 싶었다. 심폐소생술 하는 모습을 보여 인정받고 싶기도 했다"는 이유였다.

2016년에는 장기 입원 중인 노인 환자 2명이 소독약이 든 링거를 맞고 잇달아 죽어 나갔다. 누군가가 병원 약재실에 들어가 주사기로 링거에 소독약을 주입했는데, 의사·간호사·환자·가족이 수없이 오가는 공간이라 지금도 범인을 못 잡고 있다. 사인이 확인된 사망자가 2명이지 그전에 죽은 사람이 더 없었단 얘기가 아니다.

일본 경제재정자문회의의 추계는 일본 정부가 고령자 복지를 꾸준히 삭감하면서 경제도 2%씩 계속 성장한다는 가정하에 계산한 수치다. 복지 삭감이 주춤하거나 경제가 시원찮으면 현실은 더 삼엄할 위험이 있다.

일본 정부는 2012년 민주당 정권 때 단카이 세대(1947~1949년생) 전원이 75세를 넘어서는 2025년의 추계치를 발표한 바 있다. '소비세를 5%에서 10%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그때 세웠다. 그 뒤 6년간 연기에 연기를 거듭하며 간신히 8%까지 끌어올렸다. 나머지는 내년에 마저 올리겠다는 게 아베 정권 목표다. 한 번 올릴 때마다 내수가 휘청대기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이다. 그에 이어 2040년 상황까지 구체적으로 전망한 게 이번 추계다.

2040년은 日고령화 정점

2040년은 일본 고령화가 정점을 찍는 시점이다. 전후 베이비붐 세대를 뜻하는 '단카이 세대'(1947~49년생)는 이때 90대에 접어들고, 자식 세대인 '단카이 주니어 세대'(1971~74년생)도 70세를 목전에 두게 된다. 일본에서 인구가 제일 많은 두 세대가 모두 노인이 된다. 지금은 국민 4명에 1명(28%)이 노인이지만 2040년엔 3명에 1명(35%)으로 늘어난다. 4000만명의 노인이 지금 30대 이하인 젊은이들 어깨에 얹히게 된다는 얘기다.

일본 경제재정자문회의가 말하는 2040년의 '노인'은 지금의 중장년 세대다. 단카이 주니어 세대는 한국으로 치면 90년대 초반 대학에 들어간 사람들이다. 부모 세대에는 서민이라도 장롱 속에 현금을 숨겨둔 사람, 집은 있고 빚은 없는 사람이 많았다. 단카이 주니어 세대는 그렇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단카이 세대와 단카이 주니어 세대가 모두 퇴장하고 나면 일본 인구 구조가 차차 정상으로 돌아올 거란 분석도 있다. 하지만 경제는 이미 파탄 난 다음이기 십상이다.

[도쿄=김수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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