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 코미디 프로 명성은 옛말
편견에 바탕한 철 지난 유머로
폭소는커녕 불쾌감과 비판 불러
시청자 게시판엔 “수신료 아깝다”
개콘은 한때 온가족의 일요일 밤을 책임졌던 간판 프로였다. 지금은 가족들과는커녕 성인 혼자서 참고 보기도 쉽지 않은 프로그램이 됐다. 참신하고 색다른 개그 소재는 찾아볼 수 없고 그 자리를 외모 비하와 뜬금없는 폭력, 더럽고 가학적인 소재, 시대 흐름에 뒤처진 유머가 대신하고 있다.
다른 코너 ‘욜로민박’. 냉면을 먹으려는 김지민이 ’냉면이 길다“고 하자 김준호는 코털을 정리하던 가위로 냉면을 자른다. [사진 KB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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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상황이 이어진다. 김준호가 코털 정리를 하던 가위로 김지민이 먹던 냉면을 자르고, ‘민박집 손님’은 이를 “맛있겠다”며 허겁지겁 먹는다. 이를 보는 방청객 표정에선 웃음보다 뜨악함이 먼저 느껴진다.
‘개그 콘서트’의 한 코너 ‘뷰티잉사이드’에서 강유미는 박휘순이 못 생겼다는 이유로 자주 뺨을 후려친다. [사진 KB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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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바뀐단 설정에 따라 송병철 대신 등장하는 개그맨들은 못생겼다거나 뚱뚱하단 걸로 웃음을 유도하려 한다. 얼굴이 달라졌을 뿐 자신을 ‘송병철’이라 주장하는 이들을 향해 강유미는 뺨을 후려치고 모욕적 언사를 퍼붓는다. 얼굴을 보며 “오바이트가 나온다”느니 “오랑우탄”이라고 얘기하는 식이다. 특히 개그맨 박휘순은 하도 뺨을 맞아 불쌍할 정도다. 이유는 없다. 단지 ‘못생긴’ 캐릭터로 나올 뿐이다.
‘내시천하’에서 김준호는 ’남자들이 환장한다“며 T팬티를 입고 나왔다. [사진 KB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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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더 나아가 여성을 ‘남성에게 선택받기 위해 비키니나 T팬티를 입은 존재’로 격하시킨다. 성에 대한 왜곡된 인식에 바탕한 이들의 개그는 시대에 뒤떨어질뿐더러, 대체 어떤 지점에서 웃어야 할 지 알 수 없게 만든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개콘이 빈번한 노출과 가학·폭력·모욕·비하 개그 투성이의 반인권적 예능이 됐다”며 “외부 수혈을 통해 선·후배 관계에서 자유로운 역동성을 키우고, 콩트식 개그만 고집하는 데에서 벗어나는 등 혁신적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런 지적에 ‘코미디는 코미디로 보자’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그 코미디가 웃기지도 않을뿐더러 잘못된 인식을 강화한다면, 더구나 그걸 만들고 퍼뜨리는 데 수신료와 공공재가 사용된다면, ‘코미디는 코미디일 뿐’이란 말만큼 무책임한 얘기가 없다.
개콘은 1999년 시작한 이래 수많은 코미디언이 재능과 끼를 발휘하며 시청자에게 코미디의 참맛을 알려준 훌륭한 쇼였다. 공개 코미디 쇼가 사라져 코미디언의 무대 자체가 드문 요즘, 참 기특한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꿋꿋이 공개 코미디 쇼를 지키며 콘텐트 다양화에 기여하는 KBS를 보며 공영방송의 필요성을 새삼 느낀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콘텐트로부터 오는 불편함을 참고 볼 시청자는 이제 없다. 유튜브 같은 1인 방송 플랫폼이 퍼지며 볼거리가 차고 넘치는 요즘이다. 그곳엔 더 더럽고 더 가학적인 콘텐트가 범람한다. 여기에 지상파 코미디까지 가세할 필요는 없다. 웃기는 게 직업인 코미디언에게는 정말 쉽지 않은 요즘이지만, 그래서 더 각성이 필요하다. 지난해 5월 900회 특집 당시 개콘 제작진은 “19년 전처럼 모험을 해야 할 수도 있는데 그 모험을 충분히 생각하고 있다”며 “조금만 더 시간을 갖고 형식상 변화, 관점의 변화 등을 천천히 준비해 확 바꿔볼까 한다”고 말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그 ‘모험’이 실천되길 응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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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진호의 이나불]
누군가 불편해할지 모르는 대중문화 속 논란거리를 생각해보는 기사입니다. 이나불은 ‘이거 나만 불편해?’의 줄임말입니다.
」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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