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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단독] 고리 3·4호기, 철판 4235곳이 ‘두께 불량’…30년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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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방사선 누출 막는 격납건물 철판

최소 두께 기준보다 얇은 부위가

작년 원안위 발표의 ‘12배’ 달해

“대부분 노후부식 아닌 시공 부실

용접부위 다듬을 때 지나치게 깎아”

한수원, 부식 위주로 점검결과 축소

지난달 재가동 승인 직전 전수 보고

작년 공론화위 앞두고 숨겼나 의혹도

한수원 “조사결과 KINS에 보고했다”

“고의적 숨기거나 축소한 것 아냐”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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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 기장군에 있는 원자력발전소 고리 3·4호기 격납건물 안쪽에 설치된 철판(라이너플레이트·CLP) 가운데 ‘최소 두께기준’(5.4㎜)보다 얇은 부위가 애초 정부가 발표한 359곳의 10배가 넘는 4235곳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났다. 기준 이하 철판들 대다수는 노후화 때문이 아니라 시공 당시 과도한 그라인딩(원형 절삭 도구로 용접 부위를 매끄럽게 만드는 작업)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방사선 누출 방지 용도의 격납건물 철판 곳곳이 처음 건설 때부터 기준보다 얇게 부실 시공됐고, 이런 사실이 알려지지 않은 채 원전이 30년 가까이 가동된 셈이다.

22일 박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한국수력원자력의 ‘고리 3·4호기 격납건물 라이너플레이트 점검 현황’ 자료와 최근 원자력안전위원회 회의록, 한수원 설명 등을 종합하면, 지난 4월 기준 고리 3·4호기 라이너플레이트 가운데 두께기준에 미달하는 부위가 각각 2077곳(부식 224, 비부식 1853)과 2158곳(부식 9, 비부식 2149)에 이른다. 이는 원안위가 라이너플레이트가 설치된 원전 22기에 대한 건전성 조사 뒤 지난해 7월27일 발표한 수치보다 10배 이상 많은 것이다. 당시 원안위는 고리 3호기 두께기준 미달 부위는 279곳(부식 208, 비부식 71), 고리 4호기는 80곳(부식 11곳, 비부식 69곳)이라고 밝힌 바 있다. 고리 3호기는 지난해 1월 계획예방정비에 들어가 지난 10일 재가동이 승인됐고, 고리 4호기는 지난해 3월 냉각제 누설이 확인돼 정지된 뒤 곧장 계획예방정비에 들어갔다가 지난달 12일 재가동 승인됐다.

한수원은 고리 3·4호기의 ‘두께기준 미달 철판’이 급증한 사실을 재가동 심사 승인 직전인 지난달 10일에야 원안위에 보고했다. 원전 주변지역 주민대표들이 참여하는 ‘고리 원전 안전협의회’에도 지난달 18일에야 두께 미달 부위 개수가 공지됐다. 한수원은 이에 대해 ‘조사를 하다 보니 개수가 늘어난 것’이라는 취지의 해명을 내놨다. 한수원 쪽은 “처음에는 물이나 염분이 스며들어 부식이 발생했을 것으로 생각하고 콘크리트 시공이음부만 살펴봤던 것”이라며 “그러다 용접선 주변에서 부식된 것도 아닌데 얇은 부위가 발견돼 확대 점검을 해봤더니 과도한 그라인딩이 원인으로 추정되는 두께 미달 부위들이 발견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수원의 이런 해명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한수원이 과도한 그라인딩 탓에 얇아진 부위가 많다는 사실을 파악한 때는 지난해 6월이었다. 한수원이 박재호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한수원은 용접선 주변부에 대한 추가 조사를 지난해 6월1일에 시작해 그달 20일쯤 집계를 완료했다. 결과적으로 두께기준 미달 부위가 수천곳에 이른다는 사실을 10개월 넘도록 축소·은폐한 셈이다.

박 의원은 “원안위와 지역주민들에게 관련 내용을 수시 보고하고 설명하는 것이 상식적인데, 지난해 7월말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 출범을 앞두고 파장을 우려해 숨긴 게 아닌지 의심된다”고 말했다. 한수원은 이에 대해 “애초 점검 목적이 철판 부식 확인이었던 터라, 철판 두께 미달은 별도 보고하지 않은 것”이라며 “원자력 이용시설 사고·고장 발생 시 보고·공개 규정인 원안위 고시에 따르면 의무 보고 사안도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또 “용접선 주변 조사결과를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에는 6월30일에 보고했다”며 “해당 사실을 고의적으로 숨기거나 축소한 것은 아니다”고 했다.

원안위는 고리 3·4호기 두께기준 미달 철판에 대한 조처를 적절히 완료했다고 설명했다. 원안위는 “부식 부위들은 새 철판으로 교체했다”며 “비부식 부위는 앞으로 더 얇아질 가능성이 없는데다, 해당 부위를 전부 교체하면 원전 건전성에 더 무리를 준다. 공학적 안전성(사고 조건에서 변형률) 평가 결과를 만족시킨 부위들은 앞으로 추적 관리만 받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원전 관리의 고질적인 안전 불감증과 다른 구조물의 부실 시공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일부 전문가들은 시멘트 구조물이 제대로 시공됐는지 엑스레이 검사를 해봐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한병섭 원자력안전연구소장은 “이제는 안전하다고 하면 끝날 일이 아니다”라며 “고리 3·4호기가 가동되는 지난 30년 동안 해당 사실을 몰랐던 한수원과 원안위의 안전의식과 관리 능력이 얼마나 부실한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하얀 기자 ch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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