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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인터뷰]"우리는 ‘어이, 고졸’이 아니라 ‘노동자’입니다" 특성화고졸업생노조 이은아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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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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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서울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10대가 사고로 숨졌다. 2017년 1월에는 전북 전주에서 한 통신회사 관계사의 콜센터 상담원으로 일했던 10대가 목숨을 끊었다. 그해 11월에는 제주도의 생수업체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10대가 역시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모두 특성화고를 나와 취업했거나 기업체 현장실습으로 일하다 참변을 당했다. 전국특성화고졸업생노조 이은아 위원장(19)는 “특성화고 졸업생이라면 누구도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위원장과 특성화고 졸업생들은 스스로 권익을 지키고 비극을 막겠다며 최근 특성화고졸업생노조를 결성했다. 지난 20일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 위원장은 “취업을 나가서 최저임금도 못 받거나 온갖 차별을 당하고 직업병까지 걸리는 선배와 친구들을 보며 ‘당하고만 있을 게 아니라 우리가 직접 개선을 요구해야겠다’는 생각에 노조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올 초 충청 지역의 특성화고를 졸업하고 공공기관 청년인턴으로 일하고 있다. “회사에서 이름 대신 ‘고졸’이라고 불리거나 회식에 가서 ‘술도 못 마시는 고졸들이 와서 뭐하냐’는 면박을 들어가며 일하는 친구들을 보니 최대한 취업을 미루고 싶더라고요. 공공기관을 선택한 것도 차별이 덜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고요.”

주변에는 최저임금도 못 받하거나 야간노동을 강요당하는 친구들도 많았다. 그가 졸업한 학교에서 ‘좋은 직장’이라며 졸업생들을 대거 취업시킨 한 지역 제조업체가 있었다. “거기 다니는 선배들을 만나면 늘 아프다고 했어요. 공장에서 화학물질을 많이 쓰는데, 제품을 보호하는 장비만 있고 직원들 몸을 지켜주는 보호장구는 주지 않았대요. 매달 한번씩은 병가를 쓰고 자기 돈으로 병원에 가 치료를 받는 선배들이 많았어요. 산업재해를 신청할 생각은 당연히 못 하고요.”

이 위원장은 제주도 이모 군 사망사건을 친구들과 함께 뉴스로 보면서 “아무도, 아무 말도 못 했다”고 했다. “기가 막히기도 하고, 이런 문제들이 이제야 뉴스에 나온다는 생각을 하니 착잡했어요. 그제야 보도됐을 뿐이지 친구들과 선배들이 그런 환경에서 일한다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었거든요.”

그는 ‘고졸’에 대한 뿌리깊은 편견 때문에 차별이 일상화됐다고 성토했다. “옛날 ‘실업계 고등학교’부터 시작해서 특성화고 졸업생에 대한 차별이 있는 게 사실이잖아요. 고졸들은 공부를 못해서, 가난해서 대학에 못 간 거다. 그러니 최저임금도 주지 않고 불법행위를 저질러도 이 아이들은 모를 거다, 이런 인식이 있는 것 같아요.” 현장실습생 때는 그나마 교육부나 학교가 보호해주지만, 직장에서 극소수에 불과한 ‘고졸 사원’의 권익은 아무도 지켜주지 않는다. “고졸이 벌면 얼마나 벌겠느냐, 대학은 안 가냐” 같은 말을 늘 들으며 스스로 차별에 익숙해지기도 한다.

구의역 사건 이후 특성화고 재학생들이 나서서 권리연합회를 만들었고 졸업생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온라인으로 알음알음 연결된 졸업생들은 노동절인 지난 1일 처음 다같이 모여 노조 창립 선포식을 열었다. 20여명이 나왔다. “만나자마자 할 말이 너무 많아서 수다가 멈추지 않았다”고 했다. 너나없이 맺힌 것들이 많았던 까닭이다. 11일 고용노동부 설립신고필증을 교부받음으로써 특성화고졸업생노조는 ‘정식 노조’로 인정받았다. 그 뒤 열흘 만에 조합원 수는 100명을 넘겼다.

노조는 우선 노동부에 특성화고 졸업생들의 노동실태 전수조사를 요구하기로 했다. 이 위원장은 “우리의 노동 현실은 매우 특수한데, 지금까지 정부가 조사하고 관리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앞으로 진행될 교섭에 대비해 이달 말 조합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정부에 어떤 문제제기를 할지 논의할 예정이다.

그는 “우리는 너무 당연한 요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도 노동자입니다. 최저임금은 보장받아야 하고, 정해진 노동시간을 지켜 일해야 합니다. 위험한 현장에서는 안전장구를 갖추고 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기본적인 권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남지원 기자 somni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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