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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돌하르방도 페트병 물고있다…'청정 제주' 왜 쓰레기섬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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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애월읍 올레길에 먹다 남은 커피 일회용컵이 버려져 있다. 천권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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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의 해안가. 에메랄드빛 바다를 따라 넓게 펼쳐진 검은 현무암 사이로 쓰레기가 가득 차 있었다.

각종 음료 페트병에서부터 누군가 쓰고 버린 샴푸 통까지…. 플라스틱이나 비닐, 스티로폼이 대부분이었다. 바다에 둥둥 떠 있는 생수 페트병을 들어 보니 중국어가 쓰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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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구좌읍 김녕리 해안가에 각종 쓰레기가 쌓여 있다. 천권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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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100m 반경에 있는 쓰레기만 수거해도 큰 포댓자루로 40~50개가 가득 찰 정도죠. 다시 올 때마다 이렇게 또 쓰레기가 쌓인 걸 보면 눈물이 날 정도로 화가 나요.
김정도 제주환경운동연합 팀장이 쓰레기로 뒤덮인 해안을 바라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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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애월읍 해안가에 각종 쓰레기가 쌓여 있다. 천권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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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아름다운 해안 도로를 따라 카페가 줄지어 있는 제주시 애월읍의 올레길.

제주 바다와 기암괴석의 절경에 취한 것도 잠시, 여기저기 널브러진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계속 눈에 밟혔다. 바닥에 떨어진 플라스틱 컵에는 먹다 남은 커피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돌담 틈에는 제주 로고가 박힌 생수 페트병이 꽂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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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애월읍 돌담 사이에 꽂힌 플라스틱 쓰레기. 천권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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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 쓰레기 절반이 플라스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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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구좌읍 김녕리 해안가에 일회용 쓰레기가 버려져 있다. 천권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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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만 가는 쓰레기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

그중에서도 해안 쓰레기는 청정 제주의 이미지를 망치는 가장 큰 골칫거리다. 제주도에 따르면, 제주 해안에서 수거한 쓰레기양은 2012년 9600t에서 지난해 1만4000t으로 30% 넘게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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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해안에서 수거한 플라스틱 쓰레기. [사진 제주환경운동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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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원인은 플라스틱이다.

제주환경운동연합과 제주자원순환사회연대가 지난해 김녕리·사계리 해안에서 수거한 2474개의 해양 쓰레기를 조사해 보니, 플라스틱의 비중이 전체의 47.2%나 됐다. 외국에서 온 쓰레기는 16.9%로 대체로 중국에서 왔으며, 일본과 러시아, 심지어 남태평양에서 흘러온 것도 있었다.

제주도청 관계자는 "해안에서 수거한 플라스틱은 염분이 있어서 재활용이 불가능하다"며 "별도로 수거해 매립하거나 소각 처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압축 쓰레기 5만t 갈 곳 없어 섬에 방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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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환경시설관리소에 5만여 개의 압축쓰레기가 쌓여 있다. 천권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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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 쓰레기보다 더 심각한 건 배출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생활 쓰레기다. 이미 도내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된지 오래다.

제주시 회천동의 환경시설관리소. 제주시에서 배출되는 대부분의 쓰레기가 모이는 곳이다. 매립장에 올라가자 흰 비닐로 포장된 1t짜리 쓰레기 뭉치 5만여 개가 쌓여 거대한 산을 이루고 있었다. 오랫동안 방치된 탓인지 코를 찌르는 악취를 풍겼다. 까마귀가 뜯어놓은 압축 쓰레기 속을 보니 대부분 폐비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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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가 뜯어놓은 압축쓰레기 속에 폐비닐 등이 보인다. 천권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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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여 개의 쓰레기 더미가 이곳에 몇 달째 방치된 사연은 이렇다.

제주도에 따르면, 지난해 제주도에서 발생한 생활폐기물은 하루 1332t. 6년 전인 2011년(764t)의 2배 가까이 되는 수치다.

특히 소각장으로 가는 쓰레기양이 2011년 198t에서 지난해 319t으로 급증했다. 도내 소각장에서 처리할 수 있는 한계치인 200t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도에서는 2015년부터 소각장으로 오는 쓰레기 중에서 그나마 연료화가 가능한 폐비닐이나 종이 등을 분류해 압축 쓰레기 형태로 포장했다. 육지의 고형연료(SRF) 제조 시설 등으로 보내기 위해서다. 하지만, 품질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받아주는 곳이 점점 줄어들자 갈 데 없는 쓰레기가 계속 쌓이게 된 것이다.

임용구 제주환경시설관리소 주무관은 "압축쓰레기를 반출하려면 해상 운송비까지 포함해 t당 18만 원의 비용이 들지만 질이 낮아 SRF 품질 인증을 받지도 못해 처리가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1500만 명이 남긴 쓰레기 감당 못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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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동문시장 야시장을 찾은 관광객과 도민들이 쇼핑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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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제주에 플라스틱 등의 쓰레기가 갑자기 많아진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도내 인구가 빠르게 늘고 있다. 2009년 이후부터 해마다 만명 씩 늘어 지금은 68만 3000명을 넘었다. 제주도민이 1인당 배출하는 쓰레기도 하루 1.92㎏(지난해 기준)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다.

더 큰 문제는 제주도를 방문하는 관광객이 예상보다 빠르게 늘고 있다는 것이다. 2009년부터 저가항공이 활성화되면서 비용이 싸진 데다가, 중국인 관광객까지 몰렸기 때문이다. 제주 관광객 수는 2008년 582만 명에서 지난해 1480만 명으로 3배 가까이 늘었다. 해마다 100만 명씩 관광객이 증가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에는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여파로 중국 관광객은 다소 줄었지만, 국내 관광객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다. 관광객의 경우 대부분 일회용품을 사용하다 보니 플라스틱 쓰레기 배출량이 많을 수밖에 없다. 특히, 관광 성수기인 여름철에는 차가운 음료를 담는 플라스틱 컵의 사용량이 급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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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를 찾은 중국인 관광객.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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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BBC는 최근 ‘너무 많은 관광객 때문에 씨름하고 있는 관광지 5곳’ 중 하나로 이탈리아 친퀘테레, 페루 마추픽추 등과 함께 제주를 꼽기도 했다. 그러면서 "제주에 신공항이 건설되면 2035년에는 연 방문객 수가 지금의 3배인 4500만 명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성일 제주대 관광학 박사는 "관광객 수도 중요하지만, 더 큰 문제는 증가 속도"라며 "준비가 안 된 상태로 관광객이 갑자기 늘면서 쓰레기 문제 같은 오버투어리즘(과잉관광)의 전조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회용품 퇴출 등 쓰레기 감축 정책 펼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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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의 한 쓰레기수거함 앞에서 공무원들이 요일별 배출제를 홍보하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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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도 쓰레기 대란을 막기 위한 대책을 고민하고 있다. 지난해 전국에서 처음으로 재활용품 요일별 배출제를 시행해 재활용 비율을 높이는 등 일부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생활 쓰레기 배출량이 계속 늘고 있는 상황에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김정도 제주환경운동연합 팀장은 "재활용 확대 정책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원천적으로 쓰레기를 만들어내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며 "일회용 플라스틱의 도내 반입과 유통을 제한하고, 모든 일회용 제품에 대해서 환경세를 부과하는 등 강력한 대책이 마련돼야 청정 제주를 되살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강성일 박사는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는 크루즈 관광객이 급증하자 입항을 하루 세 척으로 제한했고, 페루 정부도 마추픽추를 보호하기 위해 방문객 수를 통제하고 있다"며 "제주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관광객 관리 방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주=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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