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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단독] 촬영 후 비공개 계약했는데···유출피해 최소 10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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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한 곳서 15명 유출 피해 당해

'비공개 계약서'에 '상업적 이용' 적시하기도

양예원 사례로 본 ‘전라 비공개 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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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구로구 구로동 A스튜디오에 여성 모델 촬영에 쓰이는 소품이 놓여 있다. 오원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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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인 이모(24·여)씨는 지난 2015년 이른바 '비공개 출사'에 참여했다가 지난 2월 자신의 전라 사진이 성인·음란 사이트에 올라온 것을 알게 됐다. 이씨는 "사진을 처음 본 순간 누가 봐도 나라는 것을 알겠더라. 가슴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씨는 촬영 당시 비공개 계약서에 서명한 누군가가 사진을 유포한 것으로 의심하고 당시 촬영 장소였던 서울 구로동의 A스튜디오를 운영하는 김모(39)씨의 도움을 받아 서울 동작경찰서에 고소장을 제출한 상태다.

지난 17일 페이스북에서 자신이 성범죄 피해자라고 주장하며 눈물을 흘린 유튜버 양예원씨도 이씨와 비슷한 사례다. 피해자는 대부분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참여한 일반인들이지만 유명 가수의 뮤직비디오 출연자나 얼굴이 알려진 모델도 포함돼 있다. A스튜디오를 운영 중인 김씨에 따르면 100여 명이 넘는 모델이 비공개 출사 사진 유출 피해를 봤다고 한다. 김씨의 A스튜디오에서만 모델 15명의 사진이 유출됐다.

성인·음란 사이트에 '비공개 출사'라는 제목으로 전라의 여성이 등장하는 사진이 무더기로 등록돼 피해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대부분은 전라의 모습이다. 스튜디오에서는 '사진 유출 금지'를 골자로 한 비공개 계약서를 작성하고 있지만 일부 스튜디오에서는 계약서에 '모델의 사진을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조항까지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17일 중앙일보 기자와 만난 김씨는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비공개 출사를 열게 된 이유와 관련해 "비공개 출사 자체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진 유출이 심각한 상황이라 당황스럽다"고 털어놨다. 김씨는 지난 3월부터 피해 모델들과 함께 당시 비공개 출사에 참여한 사진사 12명과 성인사이트 운영자를 포함해 총 26건의 고소장을 서울 동작경찰서에 접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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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스튜디오에서 '비공개 출사'에 활용해온 계약서. 오원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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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스튜디오에서 '비공개 출사'에 활용해온 계약서. '블랙, 흰 원피스' '침대 화이트, 니트, 핑크T' 등 촬영회의 전반적인 콘셉트도 표기돼 있다. 오원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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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출사는 스튜디오 측에서 모델을 섭외하는 일에서 시작한다. 김씨는 "일반적인 알바 사이트에서 구하는 경우도 있고 인맥을 통해 소개를 받거나 모델들이 아는 사람이나 친구를 소개하는 케이스도 있다"고 말했다.

모델 섭외가 이뤄지면 스튜디오 운영자는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 일정을 공지한다. 사진사들은 공지를 보고 5만~7만원 선의 회비를 내고 참여한다. 회비는 스튜디오 대여료와 모델료로 쓰인다. 김씨에 따르면 이 같은 비공개 촬영회에 참여하는 사진사는 대부분 40~50대 남성이라고 한다.

서울에서 B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조모(42)씨도 자신이 주최한 비공개 촬영회 사진이 유출된 사실을 알고 모델과 함께 유출자를 찾아 서울 마포경찰서에 지난 4월 고소장을 제출했다. 조씨는 "사진사가 욕심을 내고 금전적인 이익을 얻을 목적으로 성인사이트에 사진을 올린 것"이라고 말했다.

조씨는 "예전부터 모델을 섭외하는 '모델 출사' 동호회나 모임은 있었는데 점점 촬영 수위가 포르노처럼 변화한 것은 사실"이라며 "스튜디오 입장에서는 촬영자들의 수요가 있어 대여하는 등 협조했던 것이고 사진 유출은 스튜디오 측에서도 피해를 본 것"이라고 주장했다.

비공개 계약서에 모델 측에 불리한 조항을 추가하는 스튜디오도 있다. 중앙일보가 입수한 서울 C스튜디오의 '비공개 촬영회 모델 초상권 계약서'에 따르면 "모델이 촬영 일정을 지키지 않을 경우 비공개 사진을 주최자는 상업적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고 쓰여 있다.

비공개 계약서는 법적 효력이 있을까. 참여연대 공익법센터장 양홍석 변호사는 "비공개 계약서 자체는 법적 효력이 있지만 모델의 사진을 상업적으로 이용한다는 조항은 말도 안 된다"고 설명했다. 양 변호사는 "모델들은 비공개 계약서가 없어도 사진이 비공개라는 것을 전제로 참여하는 것"이라며 "모델이 촬영 일정을 펑크냈다고 해서 모델의 사진을 상업적으로 이용한다는 조항을 넣는 것은 불공정계약일뿐더러 사회상규에 반하는 계약"이라고 말했다.

양씨는 지난 17일 자신의 페이스북과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에서 "과호흡 증세가 찾아오고 눈물이 흐르며 손이 떨리고 그때의 악몽이 떠올라 괴롭다"고 털어놨다.

양씨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 마포경찰서는 양씨와 또 다른 피해자 이소윤씨에 대한 고소인 조사를 지난 19일 새벽까지 진행했다. 경찰은 조사 과정에서 스튜디오 운영자 외에 사진 촬영 현장에 있던 다른 혐의자 한 명을 더 특정하고, 양씨와 이소윤씨 외에 다른 피해자가 있는 것을 파악했다고 밝혔다. 22일 오전 10시에는 성폭력범죄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촬영)·강제추행·협박 혐의로 스튜디오 운영자와 동호인 모집책을 피의자와 피혐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한다.

오원석 기자 oh.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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