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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4세 경영’ LG에 유독 ‘왕자의 난’이 없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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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대 구자경 회장 취임 때부터

‘장자 승계’ 원칙 확고히 만들어

특수관계인 31명이 지분 46% 보유

‘친족 집단소유’도 잡음 불씨 없애

2003년 지주사…소유구조 단순화

승계 따른 복잡한 변수 줄여

“상속세만 잘 내면 별 이슈 없어”


한겨레

고 구본무 엘지그룹 회장 빈소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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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지(LG)그룹은 22일 구본무 회장의 장례를 마친 뒤 그룹 경영체제를 4세인 구광모(40) 엘지전자 상무 중심으로 본격 전환할 예정이다. 연간 160조원대 매출을 올리는 글로벌 기업의 ‘선장’이 경력 23년 베테랑에서 갓 마흔이 된 초보 선장으로 바뀌지만, 현재까지 엘지그룹 내부의 동요나 별다른 뒷말이 나오지는 않고 있다. 재계에서는 그 배경에 ‘장자 승계’ 전통과 이를 뒷받침하는 ‘친족 집단소유 지분 구조’, 일찌감치 자리잡은 ‘지주사 체제’ 등이 있다고 분석한다.

엘지는 1970년 ‘2대’ 구자경 명예회장이 그룹 회장에 오를 때부터 장자 승계 원칙을 확고히 했다. 20여년 뒤인 1995년 취임한 ‘3대’ 구본무 회장은 물론 올해 ‘4대’ 구광모 상무 역시 집안의 ‘장자’라는 이유로 그룹 경영권을 물려받았다. 1969년 창업자인 구인회 회장이 별세했을 때, 동생이자 동업자인 구철회 당시 락희화학 사장이 장조카인 구자경 금성사 부사장을 그룹 회장으로 추대하고 본인은 스스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것은 널리 알려진 일화다.

엘지가 장자 승계라는 전근대적 방식을 지금까지 고수하는 이유는, 엘지만의 독특한 지분 구조와 밀접히 연관돼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엘지그룹 지주사인 ㈜엘지의 지분 구조를 보면, 구본무 회장을 중심으로 특수관계인 31명이 46.65%를 보유하고 있다. 엘지연암학원과 연암문화재단 등 두 곳을 빼면, 구본무(11.28%) 회장을 중심으로 6촌 이내 혈족과 4촌 이내 인척 등 사주 일가 29명이 지주사 지분 절반을 보유한 구조다. 대주주 구 회장의 아들 구광모 상무(6.24%)는 물론 부인 김영식씨(4.2%), 부친 구자경 명예회장(0.96%), 여동생 구훤미씨(0.79%), 고모 구자영씨(0.35%), 조카 구형모(0.60%)씨, 매제 최병민(0.34%) 깨끗한 나라 회장 등이다. 이들은 엘지 지주사를 통해 그 아래 엘지전자, 엘지화학, 엘지생활건강 등 70개 자회사 및 손자회사 등을 사실상 공동 지배한다.

다른 그룹에서 찾아보기 힘든 친족의 집단적 소유·견제 구조인데, 집안의 장손이 승계하는 정통성을 이어감으로써 ‘형제의 난’ 등 경영권을 둘러싼 친족간 분란을 차단하고 있는 셈이다. 집단 소유 구조 외에 엘에스(LS), 엘아이지(LIG), 희성그룹 등 차남 이하 형제들의 계열분리도 장자승계에 대한 불만을 터주는 역할을 한다.

엘지와 달리 삼성그룹의 지주회사격인 삼성물산 특수관계인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직계 가족과 법인 등 외에 이유정씨(이병철 창업주 딸 이덕희씨 장녀)가 유일하다.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현대모비스는 대주주 기아차 등 법인 외에 특수관계인은 정몽구(6.96%) 회장 딱 한 명이다.

박주근 시이오스코어 대표는 “엘지는 장자 승계 원칙이 있지만, 온 집안이 다같이 그룹을 소유하는 구조도 동시에 갖고 있다. 기업을 개인이 아닌 집안의 것으로 보는 것이다. 엘지는 승자 독식, 즉 ‘모 아니면 도’인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다른 기업과 달리 경영권 다툼과 분쟁이 적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엘지그룹이 2003년 도입한 지주사 체제는 승계에 따르는 복잡한 변수를 확 줄이는 역할을 했다. 복잡한 지분 구조와 순환 출자 등을 가진 삼성과 현대차 그룹 등이 3세 승계 과정에서 격렬한 파열음을 내는 것과 달리 단순한 지배구조를 가진 엘지그룹은 4대째 경영권을 승계하면서도 상속세 납부 외에 특별한 이슈가 없다. 한 재계 관계자는 “엘지는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지주사 주식만 많이 가지면 경영권을 가질 수 있다. 사실상 상속세만 잘 납부하면 문제삼을 게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종학 서울대 경영대 교수는 ‘숫자로 경영하라3’는 책을 통해 “엘지그룹은 아이엠에프(IMF) 위기를 겪으며 기업의 체질 개선 및 경쟁력 제고를 위해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추진했다”고 썼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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