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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북한, ‘슈퍼 매파’ 볼턴 이번에도 찍어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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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03년 볼턴 국무부 차관 때부터 악연

볼턴, 북한의 비토로 6자회담 못 나서

이번엔 ‘리비아 모델’로 북 반발 불러

일부 미 언론도 원조 네오콘 복귀에 반감

트럼프가 ‘걸림돌’ 어찌 다룰지 관심



한겨레

북한은 북-미 정상회담을 재고할 수 있다는 이유의 하나로 내세운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이번에도 찍어낼 수 있을까?

지난 2003년 7월31일 존 볼턴 당시 미국 국무부 군축·국제안보 차관은 동아시아연구원 초청으로 서울을 방문해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구상(PSI)-북한 대량살상무기’를 주제로 강연했다. 그는 ‘갈림길에 선 독재정권’이라는 제목의 연설에서 김정일 당시 북한 국방위원장을 ‘폭군적 독재자’, ‘착취자’, 포악한 불량국가 지도자’ 등으로 비난하는 한편 북한 주민들의 삶을 “지옥 같은 악몽”이라고 묘사했다. 그는 “김정일은 왕족처럼 살면서 인터넷을 즐기는 것으로 소문난 반면 빈곤에 시달리는 주민들은 인터넷 대신에 관제 방송 시청을 강요당한다”고 원색적으로 북한 체제를 비난했다.

다음날인 8월1일 북한은 “미국이 6자회담에서 조-미 간 쌍무회담을 제시했다”며 관계국 사이에서 발표를 조율중이던 6자회담 개최를 일방적으로 공표했다. 대내외 선전을 위한 북한 특유의 못 박기 선제 발표였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이틀 뒤인 3일 <조선중앙통신>은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인용해 볼턴의 발언을 문제 삼으며 “미국이 우리와 회담을 하자는 그 진의가 자체가 의심스러워진다”고 비난했다. 외무성 대변인은 “인간 쓰레기, 피에 주린 흡혈귀”라고 볼턴을 비난하며,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결정한 회담의 중요성이나, 인간 존엄을 고려할 때 참가할 자격이 없다”고 그의 6자회담 배제론을 폈다.

당시 볼턴은 6자회담에서 미국의 대표로 사실상 내정된 상태였다. 북한은 행동으로도 볼턴 배제를 보여줬다. 볼턴이 미국 대표단에 참여하는 한 회담할 수 없다며 베이징에서의 6자회담 예비 접촉을 지연시켰다. 그는 부시 행정부의 최고 실세라는 딕 체니 부통령에 의해 국무부에 파견돼, 비둘기파인 콜린 파월 당시 국무장관을 감시하는 역할을 떠맡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부시 행정부는 그해 3월 감행한 이라크전쟁의 수렁에 서서히 빠져들고 있었다. 이라크전 수렁에 빠지는 부시 행정부는 북핵 문제마저 악화되는 상황을 감수할 수 없어서 6자회담을 수락했다. 그런데 북한이 볼턴을 이유로 회담 보이콧까지 위협하자 그를 배제할 수밖에 없었다.

볼턴의 굴욕이었다. 이는 볼턴이 미국 조야에서도 외교를 망치는 ‘매파 망나니’로 더 선명히 낙인찍히는 계기가 됐다. 열렬히 주창했던 이라크전이 수렁에 빠지고, 6자회담에서 지휘권을 상실한 볼턴은 그 후 국무부에서 영향력이 축소됐다. 2005년 들어 국무부 장관으로 비둘기파이나 부시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들어서자, 그의 입지는 더욱 위축됐다. 그는 결국 그해 3월 유엔대사로 선임됐다. 하지만 의회에서는 공화당 일부 의원들까지 가세해 그의 인준을 거부했다. 부시 대통령은 결국 상원 휴회 기간에 대통령이 주요 공직자를 임명할 수 있다는 권한을 이용해, 의회의 여름휴가 기간인 8월에 그를 유엔대사로 임명해 보냈다.

2006년 들어서도 볼턴은 의회에서 유엔대사 인준을 받지 못하다가, 11월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다수당으로 복귀하는 상황을 맞았다. 인준이 불가능해진 그는 12월 결국 유엔대사에서 사직해야만 했다. 그 후 볼턴은 자신이 속한 네오콘의 완전 몰락과 함께 ‘낭인’으로 떠돌아야만 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발탁된 볼턴은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핵 폐기 방식으로 리비아 모델을 거론하다가, 다시 북한의 ‘찍어내기’에 직면하고 있다.

6자회담에서 볼턴에 대한 공격에 선두에 섰던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다시 등장해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 기간 조-미 대화가 진행될 때마다 볼턴과 같은 자들 때문에 우여곡절을 겪지 않으면 안 되었던 과거사를 망각하고 리비아 핵 포기 방식이요 뭐요 하는 사이비 ‘우국지사’들의 말을 따른다면 앞으로 조-미 수뇌회담을 비롯한 전반적인 조-미 관계 전망이 어떻게 되리라는 것은 불 보듯 명백하다”고 겨냥했다.

이에 대해 볼턴은 김계관이야말로 ‘문제적 인물’이라고 대응하면서도, 리비아 모델에 대한 언급은 더 이상 하지 못하고 있다.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미국이 추구하는 것은 ‘리비아 모델’이 아니라 ‘트럼프 모델’이라고 말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17일 볼턴이 배석한 옌스 스톨텐베르크 나토 사무총장과의 만남에서 볼턴이 주장하는 리비아 모델을 부인하고, 북한에 대한 체제 보장을 약속했다.

미국 언론도 다시 볼턴을 겨냥하고 있다. 볼턴이 취임 뒤 컨설팅 회사 운영자이자 로비스트인 매슈 프리드먼 등 비공식 라인에 의존해 국가안보회의(NSC)의 인적 개편을 했다고 <폴리티코>가 20일 보도했다. 국가의 외교안보 라인 개편에 민간업체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드러난 데다, 프리드먼은 트럼프 정권 인수팀에서 자신 회사 이메일로 공적 업무를 처리해 경질된 문제 인물이다.

애초부터 네오콘을 비난하던 트럼프 대통령이 네오콘의 핵심인 볼턴을 기용한 것은 그를 통해서 그와 상극인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의 인물들을 외교안보 라인에서 청소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이이제이 수법인 셈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지난 18일 오후에 잡혀있던 볼턴 및 니키 헤일리 유엔대사와 약속을 취소하고는 트럼프 대통령을 긴급 면담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폼페이오 장관을 긴급 호출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과의 통화를 앞둔 시점이었다.

이제 북-미 정상회담에서 걸림돌이 된 볼턴을 트럼프 대통령이 어떻게 처리할지 주목된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관련 영상] 한겨레TV | 이구동성 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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