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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뇌가 발달하면 세상을 경험하는 방식도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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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령의 뇌과학 에세이-11] 선비들이 어렸을 때 쓴 한시를 모은 '한시 이야기'라는 책이 있다. 아이들이 쓴 시조라 재치 있고 귀여운 맛이 있었고, 시조가 지어진 상황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읽으면서 몇 가지 사실에 놀랐다. 먼저 조선 시대에도 조기 교육을 시켰다는 사실에 놀랐고, 초등학교 저학년 나이의 아이들도 제법 의젓할 수 있음에 놀랐다. 또 아이가 아이 나이에 맞지 않게 지나치게 원숙한 생각을 하면, 영재라고 좋아하기보다는 단명할 것을 걱정했다. 저마다 자기 나이에 맞는 시각과 경험이 있고, 그것이 중요하다고 존중했던 셈이다.

◆나이에 따른 뇌 발달
실제로 나이에 따라 뇌 발달의 내용과 특성이 다르다. 신경세포에서는 축삭돌기를 따라 전기 신호가 세포체에서 축삭돌기 말단까지 이동한다(아래 그림의 왼쪽). 이 전기 신호가 축삭돌기 말단에 도달하면, 신경세포가 다음 신경세포와 연접해 신호를 주고 받는 부분(시냅스)에서 신경조절물질이 분비돼 다음 신경세포로 신호를 전달한다.

전선의 피복이 전기 신호 전달을 도와주는 것처럼, 축삭돌기에도 피복 역할을 해주는 물질이 있으면 전기 신호가 잘 전달된다. 축삭돌기에서는 지방질로 구성된 수초(아래 그림의 왼쪽)가 이런 역할을 한다. 모든 축삭돌기가 수초를 가진 것은 아니고, 축삭돌기가 길다면 수초에 감싸인 경우가 많다. 이 수초가 하얗기 때문에, 뇌의 한 부위에서 다른 부위로 길게 뻗는 축삭돌기가 모인 부분은 하얗게 보이고, 세포체가 많은 부위는 회색으로 보인다. 그래서 축삭돌기가 모인 부분을 백질, 세포체가 많은 부위를 회색질이라고 부른다(아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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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신경세포의 구조, 오른쪽: 백질과 회색질(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1206_The_Neuron.jpg),(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Gray_matter_axonal_connectivity.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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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후 1년이 될 때까지는 회색질의 부피가 108~149%까지 증가하는 반면 백질의 부피는 11%만 늘어난다. 생후 1년에서 2년이 될 때까지는 회색질의 부피가 14~19% 늘어나고, 백질의 부피가 19% 증가한다. 생후 2년이 지난 시점부터는 회색질은 크게 늘어지 않으며, 청소년기부터는 오히려 부피가 줄어든다. 신경세포의 수상돌기(위 그림)에는 스파인(spine)이라고 하는 부위가 있는데, 사용하지 않는 스파인을 가지치는 과정이 청소년기에 활발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한편 긴 축삭돌기를 수초로 감싸는 과정(수초화)이 서서히 일어나면서, 백색질의 부피는 만 30세 무렵까지 꾸준히 증가한다. 청소년기에는 자신과 타인의 성격 특성에 비추어 타인의 마음을 유추하기, 감정과 사회적 기억 통합하기, 사회적인 상황 이해하기처럼 사회성에 관련된 뇌 부위에서 스파인 가지치기와 수초화 과정이 특히 두드러지게 일어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청소년기에는 사회성이 발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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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시냅스의 구조, 오른쪽: 수상돌기에 난 스파인(노란 부분)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Synapse2.svg),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Cytoskeletal_organization_of_dendritic_spines_(ru).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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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피만 변하는 게 아니라 구성도 변한다. 흥분성 시냅스인 글루타메이트 시냅스의 밀도는 만 5세 무렵에 최고로 높았다가 만 15세까지는 서서히 감소해 이후로는 일정한 밀도로 유지된다. 반면 억제성 신경세포들은 만 10세 이전까지는 낮다가 만 10~18세 사이에 크게 늘어난 뒤 일정한 수치로 안정된다. 중뇌에서 전전두엽으로 도파민을 보내는 회로는 만 25세 이후까지 꾸준히 증가한다.

◆뇌 발달에 따른 질병
이처럼 연령대마다 뇌 발달 특색이 다르기 때문에 신경정신 질환의 발생 시기도 뇌 발달 시기와 연관될 때가 많다. 흥분성 시냅스의 밀도가 높고, 억제성 신경세포가 많은 아동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신경세포가 동시에 활성화되면서 발작이 일어날 확률이 다른 연령대에 비해 높다. 어떤 뇌 발달 특성과 관계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ADHD)는 주로 아동기에 나타나며 자라면서 대체로 사라진다.

청소년기에는 사회적인 배척과 보상, 감정에 민감해지며 사회성과 감정에 대한 뇌 부위의 발달이 두드러진다. 이러한 특성은 사회성을 발달시키기에 유용하지만, 청소년들을 정서적으로 불안하게 만들기도 쉽다. 그래서인지 사회 불안 장애의 90%가 만 23세 이전에 발병한다고 한다.

전전두엽 도파민의 이상과 관련된다고 여겨지는 조현병은 대개 20세 전후에 시작된다. 전전두엽은 만 40세까지도 발달한다고 하는데, 만 40세를 넘어서 시작되는 조현병은 비교적 드물다고 한다.

뇌 발달 시기와 발병 시기가 맞물린 질병이 적지 않음을 보면, 성장이 정말이지 만만찮은 과업임을 알 수 있다. 나이가 들면서 신체가 변하면, 신체 변화에 적응하면서 뇌도 변해간다. 이에 따라 걸릴 위험이 높아지는 질병의 종류도 뇌졸중,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등으로 변해간다.

◆세상을 보고 경험하는 유일한 방식
뇌가 평생토록 변해가기에 우리는 우리가 아기였을 때, 아이였을 때, 청소년이었을 때, 청년이었을 때 세상을 경험하던 방식으로는 다시는 세상을 볼 수 없다. 내가 지금 세상을 보고 경험하는 방식도 몇 년 뒤에는 되돌아 오지 않을 것이다. 각기 다른 나이별로 그 나이 때에만 주어지는 독특한 시각과 기회가 있는 셈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지금은, 지금에만 받을 수 있는 선물(present)이다.

세상을 보고 경험하는 새로운 시각에 익숙해지면, 내가 이전에 어떤 눈으로 세상을 경험했는지 잊어버리기 쉽다. 그러면 나보다 어린 세대의 사람들을 이해하기도 어렵고, 과거의 나를 이해하기도 어렵다. "지금 아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이라고 후회할 수는 있다. 하지만 아마도 과거의 당신은, 그때 당신의 시각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뇌는 평생 변해가기에 세상을 경험하는 방식은 지금까지처럼 앞으로도 계속 변해갈 것이다. 10년 전과는 어딘지 다른 음악을 듣고, 어딘지 다른 TV 프로를 보고, 친구들과 모였을 때도 어딘지 다른 소재를 이야기하며 그렇게 변해갈 것이다. 지금 내 시각에는 장래의 내가 걱정스러울 수 있지만, 장래의 나는 또 장래의 내 시각에 따라 그럭저럭 살아갈지도 모른다.

참고문헌

[1] Johnson MB & Stevens B (2018) Pruning hypothesis comes of age. Nature 554: 438-9.

[2] Gilmore JH et al. (2018) Imaging structural and functional brain development in early childhood. Nat Rev Neurosci. 19(3):123-137.

[3] Birnbaum R & Weinberger DR (2017) Genetic insights into the neurodevelopmental origins of schizophrenia. Nat Rev Neurosci. 18(12):727-740.

[송민령 작가(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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