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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스스무의 오 나의 키친]〈34〉바다 빛내던 오징어, 내 입에서 ‘반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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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반디오징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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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구니 스스무 일본 출신·‘오 키친’ 셰프


3월에서 5월 일본 도야마(富山)현의 밤엔 빛의 장관이 펼쳐진다. 빛을 발산해 바다를 물들이는 반디오징어는 수심 200∼700m에서 해안 주변으로 다가와 알을 낳는다. 산란 후 지친 오징어들이 해안가로 몰리는 모습을 보기 위해 해마다 관광 인파가 몰린다. ‘반디오징어의 투신’이라 불리는 이 현상은 봄이 시작됐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때가 되면 손전등과 그물만 있으면 오징어를 쉽게 떠 올릴 수 있다.
미식가들이 ‘살아있는 보석’이라 표현하는 반디오징어의 몸길이는 7cm 정도다. 현재는 해로운 균이 발견돼 생식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용궁소면이라 해서 내장을 제거한 요리는 있다. 대부분은 간장 조림 상태로 시중에서 판매된다.

한 마리가 2kg쯤 되는 흰오징어는 오징어의 왕이라고도 불리는데 회, 초밥, 튀김 용도로도 많이 쓰인다. 부드럽고 탄력이 있으며 달콤한 맛이 오징어 중 가장 좋다. 종이처럼 얇게 떠 동그랗게 만 다음 잘라 국화처럼 아름다운 모습을 연출하기도 한다.

오징엇과에 속하는 갑오징어는 영리해 바다의 카멜레온으로 불린다. 이들은 이동하면서 몸통 가장자리의 지느러미를 이용해 다양한 빛을 발산한다. 오징어와는 달리 몸 안에 장착된 타원형의 보드를 이용해 우아한 자태로 유영할 수 있다. 그래서 몸이 두껍고 더 부드러운 것이다. 몸통 부분은 최고의 식재료로 이용되지만 나는 먹물을 쓰기 위해 구입할 때가 더 많다. 문어 먹물보다 훨씬 진해 모차르트의 악보에도 사용됐는데 이 악보는 현재까지도 잘 보존돼 있다.

20년 전 첫 한국 여행 때 마른오징어와 문어를 가위로 오려 꽃과 닭, 봉황 등을 만든 전시를 처음 보았다. 딸을 시집보낼 때 엄마의 사랑과 정성과 솜씨를 신랑 집에 보여주는 것인데 친정어머니의 자존심이 걸린 작품이라고 했다. 정교한 가위질과 입체감, 균형미까지 표현하는 것에 놀랐다. 잘 보존하고 물려줘야 할 한국 식문화 자산이라 생각한다.

일본 작가 다니자키 준이치로(谷崎潤一郞)는 ‘그림자를 찬양하며’라는 책을 통해 간장을 시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깊이 있는 맛을 끌어올리기 위한 어둠의 시간과 맛의 조화를 말하고 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물에 “만약 그림자가 없다면, 아름다움은 없을 것이다”.

여러 가지 색깔 중 검은색은 통상적으로 병이나 죽음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음식에서도 검은색을 띠는 음식은 예전부터 좀 특이한 것들이 많은데, 캐비아나 블랙 트뤼플, 다크 초콜릿과 오징어 먹물 등이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먹물 스파게티나 스페인의 쌀 요리 파에야도 먹물을 사용한다. 블랙 벨벳케이크, 블랙 아이스크림, 블랙 마카롱, 먹물 빵, 블랙 마티니….

오늘날 검은색은 패션에서뿐 아니라 요리에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나는 패션이나 요리에서도 그런 유행을 따르는 사람은 아니지만 블랙 푸드에 대해서라면 당연히 간장과 먹물을 손꼽아 말한다. 서양 요리를 전공했지만 나도 어쩔 수 없는 동양인인가 보다.
요나구니 스스무 일본 출신·‘오 키친’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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