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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목 조르고 깨면 또…" 공 대신 여친 때리고 MLB 간 고교유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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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국가대표 출신 고소 당해

“남친 집착 심해” 메신저 엿보고 폭행

현재 미국서 선수생활 … 수사 난항

올 들어 데이트폭력 신고 26% 늘어

“사랑싸움 아닌 폭압·구조적 범죄”

정부 “엄정한 처벌 기준 마련할 것”

메이저리그까지 진출한 현직 야구선수가 사귀던 여자친구를 폭행해 경찰에 고소됐다. 대구 중부경찰서에 따르면 야구선수 A씨(19)는 지난해 12월 31일 대구시 동성로 부근에서 전 여자친구 B씨(19)를 발로 차고 목을 조르는 등 폭력을 휘두른 혐의를 받고 있다. A씨는 대구의 한 고등학교 야구부 유격수 출신으로 지난해에는 청소년 국가대표팀으로도 선발돼 국내에서 손꼽히는 야구 유망주였다. 현재는 미국 메이저리그 팀에 입단해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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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31일 A씨가 B씨를 폭행하던 도중 자신의 주먹으로 복도 벽을 쳐 A씨 손에 생긴 상처. [인터넷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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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A씨가 B씨의 목을 조르고 어깨를 주먹으로 때려 B씨 어깨에는 멍이 들었다. [인터넷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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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과 B씨 진술에 따르면 2016년 11월부터 사귀기 시작한 두 사람은 사건 당일 동성로에서 데이트하고 있었다. 밥을 먹다 A씨가 B씨의 스마트폰 메신저 대화 내용을 엿본 게 화근이었다. ‘요즘 남자 친구의 집착과 욕설이 심해 사귀기 힘들다’며 B씨가 동성 친구에게 하소연한 내용이었다.

B씨는 최근 중앙일보 기자와 만나 “화가 난 A씨가 길거리에서 등을 발로 차고 소리를 질렀다. 사람들의 시선이 부끄러워 일단 ‘조용한 데 가서 이야기하자’고 달랬다”고 털어놨다. 인적이 드문 건물 복도에서 A씨의 폭행은 더욱 심해졌다. B씨는 “이미 이성을 잃은 A씨가 내 머리채를 잡고 계단 쪽으로 밀어뜨렸다. 주먹으로 어깨를 때리고 목까지 졸라 잠깐 기절했었는데, 깨어나자마자 또 목을 졸랐다”고 했다. 폭력은 A씨의 화가 누그러들 때까지 계속됐다. 두 사람 모두 성인이 되기 딱 하루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연인 간에 벌어지는 데이트폭력 사고는 매년 증가 추세다. 여성가족부가 17일 발표한 올해 1분기 데이트폭력 관련 신고·상담 건수를 보면 여성긴급전화 1366 상담 건수는 3903건으로 전년 동기(1886건) 대비 두 배 이상 급증했다. 경찰청 신고 건수 역시 같은 기간 총 4848건으로 지난해(3575건)와 비교했을 때 26% 상승했다.

하지만 그동안 데이트폭력 피해자 보호를 위한 제도는 걸음마 수준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정부는 여가부를 중심으로 지난 2월 발표한 ‘스토킹·데이트폭력 피해 방지 종합대책’의 실행을 추진하고 있다. 법무부는 올해 상반기 내 ‘데이트폭력 등 사회적 약자 대상 폭력범죄 사건 처리 기준’을 마련해 사건 처리 단계에서부터 엄정한 처벌 기준을 정립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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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행 이후 A씨와 B씨가 주고받은 스마트폰 메신저 대화 내용. [인터넷 캡처]


B씨는 “당시 남자친구가 메이저리그 진출을 앞두고 일이 잘 풀리지 않아 힘든 시기였다. ‘스트레스 받아서 그런 걸거야’ ‘날 정말 좋아하면 고치겠지’ 하며 그의 행동을 이해하려 했고, 수차례 다시 만났다”고 말했다. 몸에 생긴 멍 자국을 본 친구들이 “이게 무슨 상처냐”고 물었을 때도 그냥 벽에 부딪친 거라고 둘러댔다는 것이다.

하지만 물건을 던지거나 욕하는 등 크고 작은 폭력들은 다시 만난 뒤에도 계속됐다고 한다. ‘단체 카카오톡 대화방에 남자가 끼여 있다’ ‘비가 온다고 자꾸 불평한다’는 등의 아주 사소한 이유들 때문이었다. B씨는 “전 남자친구의 얼굴이 붉어지다 못해 보라색이 되면 ‘정말 화났다’는 신호였다. 그게 너무 두려웠다”고 했다. 이어 “그만 만나자고 하면 자꾸 ‘자살한다’고 말해 헤어지지도 못했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그때는 ‘나 때문에 정말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될까 봐’ 무서웠다”고 덧붙였다.

결국 A씨가 미국으로 간 이후인 지난달 초 두 사람은 헤어졌고, B씨는 인스타그램에 ‘교제 내내 데이트폭력에 시달렸다’는 장문의 글을 올렸다. 이 글은 지금도 A씨의 이름을 포털사이트에 검색하면 연관검색어로 ‘데이트폭력’이 나올 정도로 야구 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B씨는 “‘여자가 바람을 피워서 맞았다’ ‘꽃뱀이라더라’ 등 일부 야구 팬들의 허위사실 유포와 인신공격에 시달려 공황장애가 올 정도로 너무 힘들었다. 이제라도 진실이 밝혀져 가해자가 꼭 벌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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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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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경찰 수사는 A씨가 미국에서 선수생활을 하고 있어 큰 진척은 없다. 경찰 관계자는 “A씨의 부모와 에이전시 등을 통해 입국을 설득하고 있다. 조만간 피고소인 조사가 이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초엔 경찰청에서 근무 중인 경찰대 출신 경위 C씨(28)가 올해 1월 데이트 중 전 여자친구 D씨(32)의 얼굴을 머리로 강하게 들이받아 다치게 한 혐의로 검찰에 고소를 당했다. 이 일로 D씨는 앞니가 파손·변색돼 임플란트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D씨는 검찰에 제출한 고소장을 통해 “그날 같이 밥을 먹다가 휴대전화 화면을 안 보이게 뒤집어 놨더니 C씨가 ‘어떤 새끼야?’라며 화냈다”며 “평소에도 화나면 길에서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을 던지고 몸을 밀치는 등의 일이 많았다”고 주장했다. D씨는 고소장에 병원 진단서와 ‘다치게 해서 미안하다’고 C씨가 사과하는 카카오톡 메시지 캡처본 등을 첨부했다. 이에 C씨는 “D씨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 좋은 마음으로 장난치고 잘 사귀었던 사이인데 이렇게 돼 마음이 불편하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워킹홀리데이(취업) 비자’로 한국에 들어온 프랑스 여성 E씨(25)가 지난 12일 오전 4시쯤 강남의 술집에서 한국인 남자친구에게 데이트 폭행을 당하는 사건도 발생해 서울 수서경찰서가 수사 중이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데이트폭력’이라는 용어 자체가 ‘폭력’보다는 ‘데이트’에 방점이 찍혀 사안의 심각성을 옅게 만들곤 한다”며 “연인 사이에서 벌어지는 폭력이 단순히 ‘사랑싸움’이 아니라 굉장히 폭압적이고 구조적인 범죄라는 인식이 확산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숙진 여가부 차관은 “데이트폭력이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심각한 범죄라는 인식 전환에 따라 피해자들의 신고와 상담이 증가하고 있다”며 “향후 범정부 차원의 대책들을 더욱 강력히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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