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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북한 자극하는 ‘리비아 모델’ 대신 ‘북 맞춤형’ 비핵화 모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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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북 비핵화 ‘트럼프 모델’로 불끄는 미국

백악관 “리비아식 아니다” 선그어

트럼프, 북미회담 묻자 “지켜보자”



북한이 북-미 정상회담 무산 가능성을 언급한 것과 관련해 백악관이 ‘리비아 모델은 우리 방식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으면서 ‘트럼프 모델’의 내용이 주목되고 있다.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16일(현지시각) 기자들에게 ‘선 핵포기, 후 보상’ 비핵화 방식으로 알려진 ‘리비아 모델’에 대해 “그런 견해가 나왔다는 건 알지만, 나는 우리가 (리비아식 해법을) 따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그것(리비아 모델)이 논의의 일부인 것을 본 적이 없다”, “이것(비핵화 해법)이 작동되는 방식에 정해진 틀은 없다”고 했다. 그는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모델”을 추구한다며, “대통령은 이것을 그가 적합하다고 보는 방식으로 운영할 것이고, 우리는 100% 자신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발언은 북-미 사전 협상이 교착 국면으로 빠져들 수 있는 현재 위기 상황을 돌파하는 데 중요한 함의를 지닌다. 백악관 대변인의 발언은 “리비아 모델을 고려하고 있다”는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13일 발언보다 무게를 실을 수 있는 미국 정부의 공식 견해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북한이 리비아의 카다피 정권이 ‘핵을 포기한 뒤 정권이 붕괴했다’는 우려를 지닌 상황에서, 북한을 자극할 의도가 없으며 정권 교체를 추구하는 것도 아님을 확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트럼프 모델’은 북핵 협상 국면이 시작된 이후 처음 등장한 용어라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1999년 ‘페리 프로세스’처럼 구체적 비핵화 로드맵은 아닌 듯 보인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두차례 평양을 방문했을 때도 비핵화에 대해 구체적인 ‘주고받기’가 논의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트럼프 모델’을 북한의 반발을 모면하기 위한 레토릭(수사적 표현)으로만 치부할 수도 없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일관되게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고 ‘과감하고 신속한’ 해법을 찾겠다고 강조해왔다.

미국 정부가 리비아식 해법에서 일정 부분 아이디어를 차용한 측면은 있다. 리비아는 2003년 12월 핵 개발 포기를 발표하고 이듬해 1월 핵물질을 미국으로 반출하는 등 철저한 비핵화를 시작했다. 미국은 검증이 끝난 뒤인 2006년 5월 리비아와 국교를 정상화했지만, 이행 과정에서부터 경제 제재를 해제하는 등 ‘과감한 단계적 해법’을 취했다. 리비아 모델을 ‘선 핵폐기, 후 보상’으로만 규정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샌더스 “트럼프 방식으로 할 것”
북 정권교체 의도 없다는 뜻 밝혀
볼턴도 “회담 성공위해 모든 일 할 것”


‘트럼프 모델’ 아직은 구체화 안돼
‘완전 비핵화?단계적 보상’ 가능성
“북 선행동 땐 안전보장 조처” 전망


하지만 볼턴 보좌관이 <에이비시>(ABC) 방송에 설명한 ‘리비아 모델’은 모든 핵무기를 해체해 미국으로 보낼 때까지 보상은 없다는 취지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모든 핵무기의 해체와 이송은 최종 단계에서 할 일로 꼽지만, 그는 양보만을 고집한 꼴이다.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대국들에게 나라를 통째로 맡기고 붕괴된 리비아나 이라크의 운명”을 강요한다며 반발한 대목이다.

따라서 백악관의 입장은 ‘볼턴식 리비아 모델’은 쓰지 않겠다는 얘기다. ‘트럼프 모델’ 역시 신속하고 철저한 비핵화가 핵심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포기한 뒤에야 미국이 상응 조처를 한다는 구상은 북한이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 만큼, ‘트럼프 모델’은 완전한 비핵화가 합의된 상태에서 중요한 실행 단계마다 제재의 부분적 해제나 안보 우려를 덜어주는 정책을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

정부 소식통은 “북한은 2020년까지 미국이 원하는 수준으로 비핵화를 하고 약속은 확실히 이행하겠다고 할 것”이라며 “미국은 리비아식이 아니라면, 북한의 선행동을 뒷받침하는 안전보장 조처를 취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혜정 중앙대 교수도 “미국은 본토를 위협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핵무기를 들어낼 것을 요구할 것이고, 북한은 ‘안보 대 안보’의 교환을 먼저 요구할 것”이라고 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트럼프 모델’이란 미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되 북한의 얘기를 조금 들어주는 ‘리비아 모델’의 ‘마이너스 알파’가 될 것”이라며 “‘리비아 모델’을 그대로 할 수 없으니 단계적으로 한다든가 비핵화에 대한 보상을 앞당기는 형태가 되리라 본다”고 말했다.

한편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16일 담화에서 ‘사이비 우국지사’로 지목한 볼턴 보좌관도 한풀 누그러진 반응을 내놨다. 그는 <폭스 뉴스 라디오> 인터뷰에서 “성공적 회담이 되도록,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겠다”고 했다. 또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폐기’(CVID)라는 회담의 목적에서 후퇴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데서 그치고 ‘리비아’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북-미 정상회담이 여전히 유효한가’ 등의 질문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지켜보자”며 신중한 기조를 유지했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김지은 기자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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