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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비환 칼럼] 폭력과 문명 그리고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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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정치공동체에서 사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금까지 이 질문에 수많은 답변이 제시됐다. 인간의 도덕적 완성을 위해 정치공동체가 필요하다는 주장에서부터, 민족의 공동선을 증진하기 위해서, 또는 자본가 계급이 임금노동자 계급을 지배하기 위해서 만들었다는 주장 등 다양한 답변이 존재한다.

하지만 근대 초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가장 영향력 있는 답변들 중 하나는 17세기 영국 철학자 홉스(T. Hobbes)가 제시했다. 그는 타인의 폭력에 의해 죽임을 당할 수 있는 인간의 실존적 공포를 해소하기 위해 국가가 필요하다고 봤다. 그의 견해는 인간에 대한 지나친 비관론과 국가에 대한 낙관론이 결합되어 있어서 다소 극단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견해는 가공할만한 파괴적 잠재력을 지닌 첨단테크놀로지와 나날이 과격해지고 있는 집단적 증오 및 광기가 결합하여 새로운 공포의 세기를 열고 있는 이 시대에 놀라우리만치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종교전쟁과 내란이 휩쓴 불안의 시대를 살았던 홉스는 타인의 폭력에 의해 죽음을 당하는 것처럼 인간을 공포로 몰아넣는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희소한 자원과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을 두고 볼 때, 강력한 외부적 힘에 의해 억제되지 않은 인간의 욕망은 결국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공포가 만연한 상황에서는 타인으로부터 살해와 강탈의 위협에 대처하는 것이 인간행위의 주요 동기가 되는바 고등한 문명을 건설할 여유가 없다. 개인들의 삶 또한 “고독하고, 가난하며, 불쾌하고, 잔인하며, 짧을” 수밖에 없다.

무정부상태의 딜레마를 벗어나기 위해 개인들은 상호 동의 하에 절대적인 권한과 폭력을 독점한 국가를 수립하여 개인들의 폭력행사를 억제한다. 개인들은 타인을 살해할 수 있는 자유를 상실하는 대신 타인들에게 살해될 수 있는 위험을 피할 수 있다. 제한적이나마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영위할 수도 있고 산업과 문명을 세울 수도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임무는 위임 받은 권한과 권력을 가지고 개인과 집단들이 서로를 해하지 않도록 통제함으로써 문명이 번창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지금 한국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국가의 이런 역할이 너무 당연하게 느껴질 지도 모른다. 국가의 기본기능이 그런대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폭력과 테러가 일상화된 중동이나 아프리카 일부 지역을 보면, 홉스가 제시한 국가의 기본적인 역할이 문명화된 삶에 얼마나 필요한지를 절감하게 된다. 더구나 전 세계를 무대로 테러를 자행하며 인류의 생존과 문명을 위협하는 무장단체들을 보노라면, 폭력을 제어하고 평화와 질서를 창출하는 정치와 외교의 능력이 문명생활의 필수적 토대임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정치와 외교가 항상 평화와 질서를 가져다 주지는 않는다. 평창동계올림픽이 열리기 전 미국과 북한 사이에 고조된 전쟁위기와, 최근에 미국의 이란핵 합의 탈퇴를 계기로 발생한 이란과 이스라엘 사이의 무력충돌은 그 명백한 증거다. 그런 사례들은 국제질서의 무정부적 상황과 민족국가의 비이성적 선택이 결합했을 경우 인류에게 미증유의 참상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해준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역설적으로 인류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정치와 외교의 합리성과 능력을 더욱 제고시킬 필요성을 뒷받침해준다.

시야를 국내로 돌려보면 우리의 국가가 가장 기본적인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지 걱정스럽다. 가정과 학교는 물론 직장에서도 폭력이 빈발하고 있다. 심지어 벌건 대낮에 길거리에서 집단 폭력에 의한 살인 사건이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하고 있다. 이것은 국가의 권위가 개인들의 폭력충동을 충분히 제어할 정도로 잘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증거다. 국가는 공정하고 엄격하며 일관된 법 집행을 통해 국가와 법의 권위를 바로 세워야 한다. 그래야만 시민사회에 내재하는 폭력성을 효과적으로 억제할 수 있다.

하지만 국가의 폭력도 철저히 경계할 필요가 있다. 엄청난 권력기구와 자원을 독점하고 있는 국가가 자의적으로 개인에게 폭력을 행사할 경우 개인은 자신을 어떻게 방어해야 하는가? 이것이 근대의 시민들이 혁명을 일으켜 법의 지배와 헌정주의를 도입하고 마침내 민주주의를 쟁취한 이유이다. 개인들에게 불가침의 기본권을 보장해주고, 국가권력을 여러 부서로 나눠 서로 견제하게 하며, 국민들 스스로 권력을 통제할 수 있다면 국가의 권력남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개인의 생명이 국가 안팎의 폭력에 끊임없이 위협당하고 있는 이 시대에 국민에게 안전과 평화를 보장해줄 수 있는 유능한 민주공화국에 산다는 것은 커다란 축복이 아닐 수 없다. 2년 전 가을과 겨울의 광화문을 밝혔던 촛불혁명은 국민들의 그런 염원이 세차게 분출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촛불정신을 계승했다고 자부하며 여전히 높은 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는 문재인 정부가 남은 임기 동안 국민이 원하는 그런 국가를 건설하는 데 최선을 다해주기를 바란다.

김비환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