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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서소문 포럼] 감독 사각지대 놓인 암호화폐 거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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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비트 검찰 수사에 불안 확산

투자자 보호장치 마련 서둘러야

중앙일보

정경민 경제담당 부국장


지난 10일 세계 4위 암호화폐 거래소 업비트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으로 전 세계 시장이 몸살을 앓았다. 회복되던 암호화폐 시세가 곤두박질하며 이틀 동안 50조원의 시가총액이 증발했다. 검찰이 잡은 혐의는 사기죄다. 업비트가 보유하고 있지도 않은 암호화폐를 전산상으로 있는 것처럼 속여 투자자에게 팔았다는 거다.

암호화폐는 달러화나 원화처럼 실물 화폐가 없다. 같은 암호화폐를 쓰는 사람끼리 어떤 지갑에 얼마의 잔고가 있고 얼마가 거래됐는지 암호화된 기록만 공유하고 있을 뿐이다. 각 암호화폐마다 쓰는 암호도 다르다. 이 때문에 지갑도 따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 지갑이 호환되는 암호화폐도 있지만, 이론적으론 10개의 암호화폐가 있다면 그에 맞는 지갑도 10개가 있어야 한다.

현재 업비트엔 137개의 암호화폐가 상장돼있다. 그런데 입출금이 가능한 코인은 96개뿐이다. 나머지 41개는 입출금이 불가능하다. 바꾸어 말하면 41개 코인을 가진 사람에겐 아직 해당 암호화폐를 담을 수 있는 지갑이 제공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시장에서 업비트를 두고 ‘없비트’란 비아냥이 나온 까닭이다.

41개 코인과 관련해 업비트 측은 투자자 개인별로는 지갑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지만 각자가 투자한 수량만큼의 암호화폐는 회사 지갑에 한꺼번에 보관하고 있기 때문에 투자자 자산은 안전하다고 해명한다. 더욱이 연초 외부 회계법인으로부터 이를 확인 받았다는 거다.

이는 검찰이 확인할 일이다. 그러나 업비트 말이 맞는다고 해도 논란의 불씨는 남는다. 현재는 투자자 장부의 수량과 회사가 보관하고 있는 수량을 어떤 주기로 맞춰놔야 하는지에 대한 규정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거래소가 마음만 먹는다면 일시적인 공매도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신규 상장 암호화폐는 값이 뛰기 마련이다. 이때 거래소는 투자자에게 비싼 값으로 새 암호화폐를 판다. 이후 암호화폐 가격이 상투를 치고 곤두박질한 뒤 싸게 사서 고객 장부 수량과 맞춰 놓으면 거래소는 엄청난 차익을 챙길 수 있다.

물론 예상치 못한 호재가 나와 암호화폐 값이 계속 뛰면 거래소가 낭패를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거래소는 어떤 투자자가 어떤 코인에 얼마를 투자하는지 훤히 들여다보고 있다. 깜깜히 투자를 하고 있는 개미와 거래 정보를 쥔 거래소의 게임은 영국 프리미어리그 축구팀과 국내 동네 팀의 경기나 다름없다.

업비트가 검찰의 압수수색을 당한 건 자충수에 가깝다. 외국의 세계적인 거래소는 암호화폐 상장에 극히 보수적이다. 국내 거래소의 상장 코인도 2017년 10월 업비트가 출범하기 전까진 한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그런데 후발주자인 업비트가 ‘국내 최다 상장 코인’을 앞세워 기존 거래소 고객을 빼앗아갔다.

설상가상 정부가 지난해 은행 가상계좌 발급을 막아 거래소로 흘러들던 돈줄이 마르자 거래량이 급감했다. 그러자 선발 거래소 빗썸과 업비트가 신규 암호화폐 상장 경쟁에 나섰다. 거래량 감소를 만회하려는 고육책이었다. 한데 단기간에 많은 코인을 상장하려다 보니 각 코인 별 지갑을 미처 다 제공할 수 없었다.

업비트의 하루 거래금액은 이미 조단위다. 그만큼 투자자가 많다. 한데 정부 감시는 무방비다. 그나마 통신판매업 등록조차 지난달 공정거래위원회의 압력으로 반납해 소관 부처조차 없어졌다. 현재로썬 거래소 고객의 실명확인을 해주는 은행을 통해 금융감독원이 간접 규제를 할 수 있을 뿐이다.

검찰의 압수수색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설사 사기죄를 적발한다 한들 이미 수많은 투자자는 피해를 본 뒤다. 정부는 거래소를 제도권 안으로 넣어 규제하면 암호화폐를 공인해주는 격이 돼 투기 광풍이 재발할까 걱정한다. 그러나 투기는 실명화와 과세로 제어할 수 있다. 거래소를 더 이상 감독 사각지대에 방치하는 건 정부의 직무유기다.

정경민 경제담당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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