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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광장 뒷골목에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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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SC] 커버스토리┃광화문

광화문 광장 동·서 뒷골목 탐방

광장에서 시계 방향 걸어서 한바퀴

청진·수송·내자동 빌딩 숲 사이에

집터·관아터·우물터 선인 발자취 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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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들의 발자취를 찾아 떠나는 광화문 도보 여행. 디자인 홍종길 기자 (※누르면 큰 그림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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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광장의 매력은, 조성 취지에 나타나듯 ‘차량 중심 거리를 인간 중심의 공간으로’ 바꾼 데 있다. 누구든 찾아가 광화문 뒤로 우뚝 솟은 북악의 기운을 느끼며 걷고 쉬기 좋은 볼거리 많은 장소다. 3년 뒤, 지금보다 3.7배나 넓어진 새 광장이 선보이게 되면 말 그대로 우리나라 대표 광장이자 서울의 상징 공간으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비록 지금은 왕복 10차선 도로의 한가운데 섬처럼 놓여 있으나, 건널목·지하통로를 이용해 곳곳에서 다가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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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관아 거리인 ‘육조거리’가 자리했던 광화문 광장과 동·서쪽 거리 뒷골목을 거닐며 선인들의 발자취를 더듬었다. 대개 작은 표석으로 남아 있지만, 빌딩 숲 사이에 들여다볼 만한 옛 흔적들이 적지 않다. 광화문 광장과 동쪽 청진동·수송동 거리를 둘러보고 서쪽 내수동·당주동 일대를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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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광장 세종대왕 동상 지하 공간의 세종 이야기 전시관 일부. 이병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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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9번 출구 해치마당을 통하면 곧바로 광화문 광장으로 나서게 된다. 광화문역 9번 출구는 2011년 미국의 뉴스 채널 <시엔엔>(CNN)이 고른 서울의 지하철역 명소 6곳 중 하나다. 경관도 좋고 볼거리도 많다. 해치마당은 광화문 광장 형성 과정과 주변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지하 자료 전시관이다. 육조거리가 처음 조성된 조선 건국 초부터 최근 촛불 시위 과정까지, 광화문 광장 일대에서 벌어진 굵직한 사건들을 연도 순으로 설명해 놓았다. 촛불 시위 과정 설명과 사진 자료 등도 별도 공간에 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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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광장 북쪽 끝에서 바라본 광화문. 이병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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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치마당에서 광장을 향해 계단을 오르는 동안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널찍한 출입구가 만들어내는 사각형의 액자 안에 담긴 세종대왕상과 그 뒤로 솟은 북악산의 위용이 눈을 사로잡는다. 광장으로 나서면 액자는 사라지고, 빌딩들 사이로 뻗은 광화문 광장이 펼쳐진다.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과 그 뒤로 첩첩이 펼쳐진 궁궐의 기와지붕들, 신록을 걸친 북악산이 그림처럼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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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앞 양쪽에 있는 해치상(해태상). 이병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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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상 앞에 측우기·해시계 등의 모형이, 이순신 장군상 주변엔 바닥분수가 만들어져 있다. 올해는 세종대왕 즉위 600년이 되는 해다. 세종대왕상 뒤쪽에 지하 전시관 입구가 있다. 내려가면 3200m²(약 1000평) 규모의 세종이야기관·충무공이야기관이 기다린다. 두 위인의 업적 자료, 유물 모형이 전시돼 있다. 붓글씨쓰기·탁본·거북선승선 체험 등을 할 수 있다. 이순신 장군상 앞에는 ‘세월호 희생자·미수습자 분향소’가 있다. 시민들도 외국인 관광객도 들러 잠시 묵념을 하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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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즉위 40년 칭경기념비. 이병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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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빌딩 모퉁이에 ‘고종 즉위 40년 칭경기념비’가 든 비각(비전)이 있다. 1902년 고종 즉위 40년과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고치고 황제 칭호를 쓰게 된 것을 기려 세운 비다. 빗돌 앞면의 글씨는 당시 황태자였던 순종이 썼다고 한다. 서울 도로의 기점·종점임을 나타내는 도로원표 표석도 이곳에 있다.

교보빌딩 남동쪽 모퉁이 길가 벤치에서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소설가 염상섭을 만난다. 이 ‘염상섭 상’은 본디 생가 터 부근인 종묘 광장에 세웠던 것인데, 삼청공원으로 옮겼다가 2014년 다시 이곳으로 옮겼다. 곁에서 똑같이 다리를 꼬고 앉아 셀카를 찍는 이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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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염상섭 상. 이병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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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 북동쪽 길 모퉁이에 <목마와 숙녀>의 시인 박인환 집 터 표석도 있다. ‘염상섭상’ 앞 도로변에는 혜정교 터 표석이 있다. 청계천 지류인 중학천에 있던 다리다. 탐관오리를 처형하던 장소라고 한다.

중학천은 북악산에서 흘러내려 청계천에 합류하던 물길이다. 교보빌딩과 케이티(KT)빌딩 뒤쪽에 물길 터를 재현해 놓았다. 조선 중·후기의 중학천 석축 일부도 보존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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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의 지류였던 중학천 물길 흔적. 옛 축대 일부를 발굴해 보존해 놓았다. 이병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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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동 거리를 걷는다. 조선시대 종로 거리 양쪽에는 말 탄 고관대작을 피해 다녔던 피맛길(피맛골)이 있었다. 서민들이 오가며 이용하던 주막·국밥집 즐비하던 피맛길은 재개발로 사라지고, 건물 사이 음식거리를 피맛길처럼 재현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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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사이에 재현해 놓은 청진동 피맛길(피맛골) 일부. 이병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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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도로변은 길을 따라 관설 시장인 시전행랑이 있던 곳이다. 조정에 필요한 물품을 공급하거나 궁궐에서 나온 용품을 팔던 상설시장이다.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이는 곳이라 하여 운종가로 불렸다. 청진동·수송동 거리 곳곳에서, 2011년 발굴조사 뒤 유리바닥 밑에 보존해 놓은 옛 시전행랑터와 집터, 우물터 등을 볼 수 있다. 제일은행 부근엔 관리들과 양반들의 범죄를 다스리던 의금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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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바닥 밑에 보존해 놓은 옛 시전행랑 주변의 집터 모습. 이병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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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랑서울 빌딩 옆길로 들어간다. 그랑서울 두 건물 사이 널찍한 공간 유리바닥 안에 보존해 놓은 옛 건물터 모습이 눈길을 끈다. 길 모퉁이에 모아 놓은, 시전행랑 등에서 발굴된 건물 초석 무리를 살펴본 뒤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뒤의 아담한 소공원 ‘청진공원’으로 간다. 공원 안 옛 주막을 본떠 지은 건물이 ‘종로 홍보관’이다. 종로구의 여행 자료와 지도를 얻을 수 있다.

디(D)타워 뒤 우물터와 집터, 케이티 동관 앞의 집터 흔적을 유리바닥을 통해 들여다보고 종로구청 앞으로 간다. 맞은편 도가니탕집 골목, 대문으로만 남은 오래된 한옥이 안쓰럽다. 구청 민원실 앞에 두 개의 표석이 있다. 조선의 개국공신이자 한양을 설계한 정도전이 살던 집 터 표석과 개화기에 유길준이 수진궁 건물을 빌려 세웠던 수진측량전문학교 터 표석이다. 이 일대는 조선시대 궁의 하나였던 수진궁이 있던 곳이다. 신라스테이 건물 앞에서 수진궁 설명판과 함께 발굴된 일부 건물 터 흔적을 만날 수 있다. 도로 위에도 일부 건물 터 흔적을 그림으로 표시해 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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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만화 발상지 조형물. 이병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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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한국 최초의 만화(삽화)가 탄생한 곳임을 알리는 조형물도 있다. 1909년 <대한민보>가 있던 자리인데, 신문 창간호의 만평을 화가 이도영(1884~1934)이 그렸다고 한다. 조형물 뒤쪽 밑에 당시 만평을 새겨 놓았다.

종로구청 옆길 따라 서울지방국세청 쪽으로 걷는다. 국세청 옆길로 오르면 고려 말의 대학자 목은 이색 초상을 모신 ‘목은 선생 영당’이 있다. 그 뒤 조계사 담장 쪽으로 아담한 공원이 나온다. 작지만 숲은 울창한 도심 속 쉼터다. 빌딩들 사이에서 살아남은 이 공원에 독립운동가 이종일 선생 동상과 각종 표석들이 모여 있다. 항일 민족지 <대한매일신보> 사옥, 숙명학교·중동학교·신흥대학 교정, 그리고 독립선언서 등을 인쇄했던 보성사가 있었음을 알리는 표석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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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전시실. 이병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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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에서 나와 광화문 광장 옆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으로 향한다. 1876년 개항 이후 한국 근·현대사 자료와 사진, 유물 등을 보여주는 박물관이다. 3층 기획전시실에선 ‘제주 4·3 이젠 우리의 역사’ 전시회(6월10일까지)가 열리고 있다. 3층 카페 야외 공간에서 발굴 작업 중인 의정부터 현장을 내려다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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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김구 선생 서명 태극기. 이병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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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는 육조거리에서도 광화문 앞 동쪽 첫 번째 터에 자리 잡았던 관청이다. 조선시대 최고 관료인 영의정, 좌·우의정 등 재상들이 삼군부와 문·무를 관장하던 국정의 핵심 기관이다. 발굴 뒤 옛 건물들을 복원해, 새로 조성될 역사광장 일부로 포함될 예정이다.

조선시대 한성부에는 동·서·남·중부 네 곳에 중등교육기관인 학당이 있었다. ‘더케이트윈타워’ 자리가 그 중 하나인 중부학당 터다. 중학천·중학동 등의 지명이 여기서 비롯했다. 타워 건물 남쪽 입구에 발굴된 건물터가 보존돼 있다. 타워 북쪽 길 모퉁이에 낡은 한옥 한 채가 보인다. 빌딩 숲에 어색하게 살아남은 한옥과 긴 담장이 이 거리의 옛 풍경을 떠올려보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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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딩 숲에 낡은 한옥 한 채가 살아 남았다. 사진 왼쪽 뒤로 동십자각이 보인다. 이병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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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길로 나서면 경복궁 네거리다. 길 한가운데 섬처럼 떠 있는 옛 건물 하나, 동십자각이다. 서십자각과 함께 경복궁 담장 양쪽 끝에 있던 망루 건물이다. 일제강점기 궁궐 담을 허물고 길을 내면서 외따로 떨어지게 됐다.

광화문 광장 서쪽 거리로 간다. 사직로 서울지방검찰청에서 새문안로에 이르는 거리엔 ‘한글가온길’이란 이름이 붙어 있다. ‘가온’은 가운데를 뜻하는 옛말이다. 이 길을 따라 한글 문화 탐방을 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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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회관 정문 옆에 있는 한힌샘 주시경 선생 흉상. 이병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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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가온길 주변에 우리말과 글의 문법을 체계화한 국어학자이자 독립운동가 주시경 선생이 살던 집터(오피스텔 ‘용비어천가’ 입구)가 있고, 최초의 순한글 교과서를 출간하는 등 조선과 한글을 사랑했던 미국인 호머 헐버트 선생과 한힌샘 주시경 선생을 업적을 기리는 소공원(주시경 마당)과 조형물이 있다. 오피스텔 ‘용비어천가’ 문 옆에 집터 표석과 한힌샘의 뜻을 표현한 조각 작품이 설치돼 있다.

한글을 지키고 연구해온 한글학회의 둥지 한글회관도 이 길에 있다. 현대식 건물 틈에 초라하게 서 있는 붉은 벽돌 건물이 한글회관이다. 한글가온길은 세종문화회관, 조선어학회 한말글 수호 기념탑, 광장 안의 세종대왕상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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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시즌스 서울 호텔 앞에는 터치 스크린 영상을 통해, 광화문 광장 주변의 옛 지도와 문화재들을 살펴볼 수 있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김정호가 그린 한양 지도 ‘수선전도’를 새긴 조형물도 옆에 있다.

글·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광화문 광장

서울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 앞 세종대로 한가운데 길게 조성한 광장. 광화문에서 세종대로 사거리까지, 길이 550m·너비 34m 규모. 시민 휴식처, 집회 장소로 이용됨. 조선 건국 뒤 경복궁을 지으며 앞에 조성한 관가, 육조거리(육조대로)가 시초임. 2021년까지 광장 확장 공사가 이뤄질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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