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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세상읽기] 美-北 신경전과 남북경협의 성공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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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이대로 판이 깨지는 것인가?' 한미 군사훈련을 이유로 북한이 16일 남북 고위급회담을 무기 연기한 가운데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일방적 핵포기만을 강요하려 든다면 우리는 그러한 대화에 더는 흥미를 가지지 않을 것이며 다가오는 조미(북·미) 수뇌회담에 응하겠는가를 재고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성공이라 부르기로 미리 작정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훈풍을 타던 미·북정상회담에 돌연 적신호가 켜진 것이다.

북한의 이런 반응은 일차적으로는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초강경 비핵화 압박을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김계관은 볼턴을 실명으로 거론하며 "리비아 핵포기 방식이니,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니, 핵·미사일·생화학무기의 완전 폐기니 하는 주장들을 거리낌 없이 쏟아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조선반도 비핵화'의 용의를 표명하였고 미국의 대조선 적대 정책과 핵위협을 끝장내는 것이 그 '선결조건'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쯤 되면 미국이 생각하는 비핵화와 북한이 생각하는 비핵화는 개념과 내용이 상당히 다르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다면 미·북 회담은 없던 일이 되고 마는 것일까? 속단은 금물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이날 강경화 외교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미국 측으로서는 이번 북측 조치에 유의하면서 미·북정상회담을 위한 준비를 계속해나가겠다"고 진화에 나섰다.

불과 며칠 전 워싱턴 한미 외교장관회담에서 에너지 그리드(전력망)를 비롯한 농업과 사회간접자본(SOC) 분야의 대규모 경제협력 구상을 밝혔던 폼페이오로서는 당혹스러울 노릇이다. 대북 제재가 풀리기도 전에 북한판 마셜플랜이니 하며 '경협 대박'에 들뜬 분위기도 숨 고르기에 들어간 모습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경협 카드가 무용지물이 되는 것은 아니다. 볼턴의 채찍과 폼페이오의 당근은 트럼프의 지론인 '맥시멈 압박과 관여'라는 동전의 양면이기 때문이다. 중국에 보험을 들었다고는 하지만 북한으로서도 미국과의 빅딜에서 거래의 조건을 최대한 유리하게 가져가려는 속셈이라는 것이 '미·북 신경전'의 내막이라는 게 아직까지는 중론이다.

차제에 경협의 목적과 목표 그리고 전략을 우리 입장에서 냉정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다. 경협의 당면 목적은 북한의 비핵화를 끌어내기 위한 것이고, 궁극적 목표는 '정상국가'로의 체제 변화다. 그런 면에서 비핵화에 대한 한·미·북 3국 공통의 '정의'를 명확히 해야 한다. '선(先)비핵화, 후(後)경협'인지, '단계적 병행'인지에 대해서도 어렵지만 분명히 해야 한다. 거론되는 한반도 전력망 연결과 같은 SOC 사업의 경우 막대한 재원과 더불어 최소한 10년 이상이 걸리는 장기 프로젝트인 만큼 성사를 위해서는 불확실성을 최대한 사전에 제거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워싱턴의 고위 정치 컨설팅 기구인 유라시아그룹의 로버트 존스턴 최고경영자(CEO)는 "남북 경협을 포함해 동북아시아 협력의 가장 큰 변수는 정치적 리스크"라며 " 5년마다 정책이 바뀌는 한국의 리스크도 상당히 크다"고 진단한다. 한반도 경협을 향한 중장기 전략도 사전에 이런 맥락에서 추구돼야 한다.

첫째, 5년 단위의 정권 차원을 넘어 국가적 컨트롤타워를 수립해야 한다. 우선순위와 경중을 가려 목적과 목표에 부합하는 10년 이상의 중장기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둘째, 초당적 협력 체제를 절대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야당 대표를 남북정상회담 만찬에 초청하지 않은 것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지적할 정도로 실책이었다. 안과 밖의 이중전선은 그 어떤 정권도 감당하기 어렵다. 셋째, 미국의 보험을 끝까지 유지하고 스테이크를 키워라. 북한이 중국에 보험을 들었듯 한미 관계도 그래야 한다. 농업(카길), 전력망(GE), 가스(엑손모빌) 등 미국 유력 기업들의 안전판 역할도 유도할 필요가 있다. 넷째, 일본과 러시아는 물론 ADB, AIIB, GCF와 같은 국제기구와 해외 자본을 끌어들여야 한다. 미·북 회담 장소가 될 싱가포르의 리셴룽 총리는 "싱가포르의 안보는 탱크나 전투기가 아니라 세계의 이익이 몰리도록 하는 데 있다"고 역설한다. 한반도 안전도 세계의 이익을 통해 보장될 수 있다. 다섯째, 그 어떤 경우든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잃어서는 안된다.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예단할 수 없지만 우리 내부로서는 미리 다층적 수읽기를 하고 국론을 수렴해둬야 한다.

[김상협 카이스트 초빙교수·우리들의 미래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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