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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범의 행복심리학 2]혼자 먹는 초콜릿, 더 맛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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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범 소설가

13세기 시칠리아의 왕이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던 프리드리히 2세는 '최초의 근대인'으로 불린다. 그는 이슬람문명을 수용할 만큼 개방적이었으나 교황과의 잦은 마찰로 세 번이나 파문당했다. 그의 지적 호기심을 보여주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그는 인간이 자연 상태에 있을 때 어떤 언어를 사용할지 궁금했다. 이 의문을 풀기 위해 그는 갓 태어난 아이들을 독방에 유폐한 후 생존에 필요한 것을 제공하되 일체의 언어적 접촉을 금했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아이들은 시름시름 앓다가 하나씩 죽어 나갔다. 훗날 이 사건을 기록한 이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아무도 아이들에게 손뼉을 쳐주지 않았고, 어떤 몸짓이나 표정도 보여주지 않았으며, 어떤 달콤한 말도 들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프리드리히 2세는 인간이 언어를 배우지 않으면, 신의 언어인 히브리어를 사용할 것으로 여겼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끔찍한 실험을 통해 확인한 것은 태초의 언어가 아니라 인간이 뼛속까지 사회적 동물이라는 사실이었다.

■행복의 조건 1순위, 관계
2010년 미국인 70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유년 시절에 이사를 다닌 횟수가 많을수록 삶의 만족도가 낮아진다. 이사를 자주 다닐수록 인간관계가 불안정해지기 때문이다. 특히 외향적인 사람은 삶의 만족도에서 별 차이가 없는 반면, 인간관계를 맺기 어려운 내향적인 사람은 삶의 만족도가 급격히 낮아졌다. 인간관계는 수명에도 영향을 미친다. 런던대학 연구팀이 2004년부터 2012년 3월까지 영국인 6500명을 추적 조사한 결과, 이 기간 동안 14.1%인 918명이 세상을 떠났으나 사회적으로 고립된 사람들의 사망률은 이보다 높은 21.9%에 이르렀다.

심리학자들은 행복한 사람들이 대인관계가 넓고 친구나 가족과의 연대감이 강하다고 말한다. 2002년 마틴 셀리그먼(Martin Seligman)과 에드 디너(Ed Diener)는 222명의 대학생 중에서 행복도가 높은 상위 10%의 생활 패턴을 분석했다. 행복한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의 생활 패턴에서 가장 두드러진 차이를 보인 것은 인간관계였다. 2011년, 7개국 666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사람들이 행복하고 의미 있는 삶을 위해 가장 필요하다고 믿는 것은 가족과 사회적 관계였다.

행복은 관계의 문제다. 좋은 사람과 함께 있으면 행복하고, 불편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괴롭다.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지, 부를 통해 행복을 느끼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나 홀로 볼링(Bowling Alone)'의 저자 로버트 퍼트남은 이렇게 말했다. "좋은 친구를 사귀는 것은 급여가 세 배 오르는 효과가 있고, 동아리에 가입하는 것은 급여가 두 배 오르는 효과가 있다."

■우리는 왜 인간관계에 목말라 하는가?
사회적 뇌 가설(social brain hypothesis)에 따르면, 우리 뇌가 진화한 이유는 타인과 원활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다. 인류학자 로빈 던바(Robin Dunbar)는 1990년대 이후 줄곧 호모사피엔스의 뇌 발달과 사회적 관계에 대해 연구해왔다. 그는 오랜 연구 끝에 대뇌피질의 부피와 집단의 크기가 비례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함께 어울려 사는 집단이 큰 동물일수록 뇌가 더 발달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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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팬지의 사회 집단 크기는 평균 54마리다.

살아가면서 가장 힘든 일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지, 식량이나 냉장고를 구하는 것이 아니다. 집단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려면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이해하고 상대방을 배려하거나 상대방과 경쟁해야 한다. 관계의 폭이 넓어지면 처리해야 할 정보의 양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이것이 뇌가 진화한 이유라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 뇌가 처리할 수 있는 인간관계는 150명 정도이며, 이를 '던바의 수(Dunbar's number)'라 부른다. 우리가 맺을 수 있는 친밀한 인간관계가 150명에 한정된 것은, 뇌의 진화가 집단이 커지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골마을에서는 이웃집 밥상에 올라가는 숟가락 숫자까지 셀 수 있지만, 범위를 도시로 확장하면 타인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 우리 뇌는 전통적인 씨족사회의 삶에 맞추어져 있는 것이다.

무리 지어 살아가는 동물에게 추방과 고립은 죽음을 의미한다. 집단에 소속되고 싶은 욕구는 우리 유전자에 '본능'이라는 이름으로 새겨져 있다. 이 때문에 인간은 사회적 관계에서 소외될 때 엄청난 심리적 고통을 느낀다. 매달 만나는 다섯 명의 친구들이 당신만 쏙 빼놓고 여행을 떠났다고 상상해보라. 아마 울분 때문에 며칠 간 잠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죽을 때까지 관계의 끈에 매여 있도록 진화했다. 예컨대 무리에서 따돌림을 당하면 뇌의 배측 전대상피질(dACC)이 활성화된다. 흥미로운 점은 이 부위가 신체적 고통을 느낄 때도 활성화된다는 것이다. 관계에서 소외당했을 때의 고통은 가시에 찔리거나 뺨을 맞을 때 느끼는 고통과 같은 것이다.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람
사회적 고립은 마음뿐 아니라 몸까지 병들게 한다. 1997년 쉘든 코헨(Sheldon Cohen) 연구팀은 18~55세의 건강한 실험참가자 276명을 6일 동안 격리시킨 후, 코 안으로 감기 바이러스를 투입했다. 참가자들은 실험에 참여하기 전에 설문조사를 통해 12가지에 이르는 사회적 관계를 체크했다. 실험 결과 사회적 관계가 거의 없는 사람은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가진 사람에 비해 감기에 걸릴 확률이 세 배나 높았다. 풍부한 사회적 관계는 혈압을 낮추고 치매를 늦추어 줄 뿐 아니라, 모든 연령대에서 사망률을 낮추어준다. 반면 부정적 인간관계는 염증과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특히 50세 이상의 여성은 인간관계에 문제가 생길 때 고혈압의 위험성이 더 높아진다. 불편한 인간관계는 우리 몸에 독을 주입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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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구축하는 사회 집단의 크기는 150명 정도다. '던바의 수'를 고안한 로빈 던바는 "150이라는 숫자는 진정으로 사회적인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최대한의 개인적인 숫자"라면서 "술집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을 때 초대 받지 않은 술자리에 동석해도 당혹스러워하지 않을 정도의 사람 숫자”라고 표현했다. 사진은 19세기 호주 선주민 가족의 초상.


초콜릿을 혼자 먹을 때와 함께 먹을 때 어느 쪽이 더 맛있을까? 2014년 존 바그(John Bargh) 연구팀은 쓴맛과 달콤한 맛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다크 초콜릿(dark chocolate)으로 재미있는 실험을 진행했다. 대개 카카오 함량이 35% 이상이면 다크 초콜릿으로 불리며, 함량이 50%를 넘으면 쌉싸래한 맛이 난다. 연구팀은 쓴 맛이 강한 70% 다크 초콜릿과 90% 다크 초콜릿을 실험참가자들에게 나누어 준 후, 혼자 먹을 때와 다른 사람과 함께 먹을 때 어떤 맛을 느끼는지 조사했다. 실험 결과 혼자 초콜릿을 먹은 사람보다 누군가와 함께 초콜릿을 먹은 사람이 더 맛있다고 답했다. 불쾌감을 유발하는 90% 다크 초콜릿 역시 누군가와 함께 먹었을 때 불쾌감을 덜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불행을 줄이려면 사람들 사이에 있어야 하고, 좋은 관계를 맺으려면 자주 눈에 띄어야 한다. 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Leon Festinger)는 70여 년 전에 MIT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을 통해 이 사실을 입증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MIT는 참전 학생에게 270가구의 기숙사를 제공했다. 페스팅거는 이들을 대상으로 친구가 될 수 있는 조건을 분석했다. 연구 결과 친구를 맺어주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방 사이의 거리였다. 참가자의 60%가 옆집에 사는 동료를 친구로 지목한 반면, 네 가구 이상 떨어진 곳에 사는 동료를 친구로 지목한 학생은 4%에 미치지 못했다. 또 두 가구 사이의 거리가 5.7m를 벗어날 때마다 친구가 될 가능성이 절반씩 감소했다.

우리는 자주 보는 사람에게 호감을 갖는다. 따라서 가까이 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먼저 다가가거나 상대방이 다가올 수 있는 거리를 내어주어야 한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혼자 있는 것보다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행복감을 느낀다. 설령 처음 만난 사람일지라도 누군가와 함께할 때 즐거움이 증가하고 불쾌감은 줄어든다. 결국 행복을 부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무엇을 하든 당신이 가까이 하고 싶은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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